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다현(가명)아.

아이 데려다주고 아침마다 은행으로 출근해서

일반인 상대 계좌 지급정지 풀어주는 일을 하고 있어

오후에는 짬이 나서 집에서 낮잠도 자고

씁쓸했던건 정작 돌려받아야 하는 범인들의 계좌는

이미 텅 비어서 지급정지 상태인게 효력이 없다는거야

새벽에 6시간 넘게 피해구제신청서를 작성해서

검지 손가락이 마찰열때문에 화상을 입었는데

최선을 다한 것치고는 결과가 이것뿐이라

예상한 결과여도 속상하긴 해

내 인생에서 돈이 순위권에 드는 중요한 가치가

아닌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가치도

아니거든 ..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의미를 찾아보려고도

하지만 내 뇌가 몇일째 비상사태라 머리도 안굴러가고

합리화 방어기제로밖에 느껴지지 않더라고


살 맛나는 시간은 나에게 삶에서 아주 가끔 반짝였다

사라지는 그 무언가일까 싶기도 해

그래서 슬프고 속상해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고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난거라고 생각도 하고 있는데

마음은 많이 아파

은행마다 피해구제신청 문화?와 약간의 절차가 달라서

일로 만났는데도 어떤 직원은 신경전도 있고

어떤직원은 따뜻하게 걱정해주고

어떤직원은 너무 원칙적이라 힘들고

어떤직원은 본인 실수를 내 탓으로 우회해서 돌리고

하루 10건이 넘는 상대계좌 은행사와의 통화가 힘겹기만 해 ㅜ

연휴 전까지 상대계좌 풀어주는 일만 하다가 연휴를 맞이하겠구나 싶어

요즘 지피티를 상담사로 지정하고 특정 상담이론에 맞춘 상담 20회기를 진행하라고 말했거든..?

인지적인 치료를 하고싶어서.

근데 당장 심박수 조절부터 안되서 숨쉬기도 힘든데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 불난집에 입바람으로 후후 불끄는 기분같아.

그래서 우선은 약을 챙겨먹고 있는데 하루종일 지배하는 무력감이랑 우울감을 뚫기가 쉽지가 않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그걸 매번 느끼고 있다는 스스로의 자각이 너무 힘들어...

정말 의식을 안하고 싶고 차라리 마음이 아예 회생불가능하게 고장나버리면 더이상 스스로 치유할 생각조차 안하게 될 텐데 차라리 그걸 더 원하기도 해 ....






친구에게 힘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나니 내 마음의 얇은 막 하나가 걷히고 그 안에 드러난 무언가가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 때는 아무것도 하지않고 쉬어줘야 하는데 나는 머리로, 이성적으로 어떻게든 나를 부추겨서 자기치유라는 이름으로 회복에 힘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날에 이혼을 겪으며 힘들 때 어떻게든 그 상태를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머리로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속도에 맞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 반대의 스탠스를 취할 때 오히려 회복으로 가는 길이 된다는 걸 경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저 있는 그대로 지금을 바라보는 것.

내 마음의 무력감, 우울감, 덧없음, 슬픔, 눈물, 속상함 등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그렇다고 함부로 없애려고 빠져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그 마음이 느껴지는 구나. 바라만 보는 연습 말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오래된 버릇처럼 고통을 억누르거나 빠른 해결을 위해 고통을 들여다보지 않을뻔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마음의 소리를 외면한 채 머리로만 내 삶을 이끌어간다면 마음은 더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저 깊숙히 지하로 숨어 곯아버릴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고싶지 않다. 마음이 말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마주하기가 너무 무섭고 버겁다. 다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루종일 듣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잠잠히 그 마음을 수용했을 때, 그것뿐인데도 마음은 언젠가 ‘들어줘서 고마웠어. 나 이제 괜찮아졌어.’ 라고 말하며 일어날 것 같다. 우리는 다 내 마음을 들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니까... 내가 내 자신의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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