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하루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유독 긴 연휴가 가을 방학 같기도 합니다. 매년 추석 연휴마다 강원도나 제주도를 찾습니다. 올해는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끊지 못해 강원도 여행으로 선택했지요. 평창과 동해를 선택했지만, 금융 사기 피해를 겪고 지출을 조금 줄일 필요가 있어 평창만 갔다오기로 했습니다. 힘들었던 날들에서 합법적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같달까요. 3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시간30분 넘어 도착했어도 기분이 한결 나아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여행 숙소는 평창 휘닉스 호텔입니다. 3박 4일을 머물 예정인데, 처음 예약했을 당시는 촌캉스의 매력을 알아버린 뒤라 ‘호캉스를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자연 속에 있는 에어비앤비 느낌의 숙소가 더 낫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마땅한 숙소가 없어 부대시설이 많은 이곳으로 예약을 했는데요. 결과는 너무 만족입니다. 지금의 제가 힘들고 지친 마음 속에서 한 곳에 머물며 숙박과 음식과 아이 놀이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다행처럼 느껴지거든요.
첫째날 도착하자마자 웨이팅 없이 모바일 체크인을 하고 호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호텔이나 시골숙소나 어디나 가면 “우와~~”하고 좋아합니다. 아이만의 적응력이 부럽습니다. 약간의 보슬비가 내렸지만 아이와 루지를 타고 싶어 숙소 밖을 나섰습니다. 입장권을 끊으러 가니 직원분이 4시에 곧 마감이라는 곤돌라를 먼저 타기를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곤돌라를 타면서 반대쪽으로 지나쳐가는 곤돌라 속 사람들과 자연 풍경들을 구경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와 단둘이 가는 가족여행은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것은 허전한 마음과 외로움입니다.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다는 것, 한 사람이 입을 다물면 다른 한 사람은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마음을 차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마음의 문제일까요, 곤돌라를 타고 가는 다른 가족들을 보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 아이, 청소년, 대학생 자녀, 중년의 부부, 커플 등 가족 형태는 다양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를 하지 않고 반절 이상이 핸드폰만 보고 있었습니다. 함께함으로서 누리는 만족은 겉으로 보이는 가족 형태에만 달린 것은 아닌가 봅니다. 매일 보는 가족이지만 그럴수록 마음에 대한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시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고 의미있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 역시 시시콜콜한 대화를 잘 안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모습이 마치 제 거울같아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생각보다 무용하고 쓸모없는 대화들이 쌓인 시간들은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와 28살 차이가 나는 딸과 대화 주제가 한번에 맞춰지진 않겠지만 사랑하고 관심 있는 마음으로 장난과 일상 대화를 주고 받는 그 15분의 시간이 좋았습니다. 옆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는 것이 가족이고, 둘만 있어도 충만할 수 있는게 가족이구나 싶습니다.
루지가 무서워서 엄마 타는거 구경만 하겠다고 엉덩이를 뒤로 내빼는 딸을 설득하는 과정도 재밌습니다. 엄마 앞에 앉아서 엄마가 운전하는 거 구경하면 된다고 저 역시 포기하지 않고 주장합니다.취향이 다른 모녀가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시간들 속에 누군가에게는 도전이자 모험을, 누군가에게는 동참과 설득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모래놀이를 좋아하는 딸과 모래놀이를 안하고 싶은 저 사이에 ‘5분만’ 이 계속됩니다. 모래놀이 도구는 한정적이고 눈치껏 선점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놀고 있던 도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친구가 가져가버리자, 잠시 시무룩하더니 “그래도 괜찮아!” 하며 자신의 구두를 벗어 구두로 모래를 퍼다 나릅니다. “그거 내가 먼저 썼어” 라고 말하면서 가져올까, 아니면 그 상황을 피할까 궁금했는데 갈등을 싫어하는 딸은 자신의 구두로 대안을 삼았네요.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 어린 아이를 아기띠하고 온 가족, 캐치볼을 하는 외국인 가족들을 관찰하면서 몇일간 내 삶의 문제에만 매여있다가 잠시 시선을 다른 곳에 두기도 했습니다. 여행이 주는 강제적 일상 거리두기가 좋습니다. 불안의 원인을 일상에 두고 온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