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하루
내가 좋아하는 박물관과 아이가 좋아하는 박물관은 차이가 있다. 숙소 근처에(근처라면 고속도로 타고 가는게 기본, 4~50분 거리가 기본)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어렸을 때는 관심이 없었던 류의 박물관이 가고 싶었다. 박물관이 너무 잘 되어있었다. 찬찬히 살피고 구경하기엔 딸 아이 눈엔 알아볼 수 없는 큰 책들의 전시라 아이가 많이 지루해했다. 1층 어린이 박물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빨리 나가자고 해서 후다닥 나왔다. 곧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야하나 고민했는데 박물관 근처에 사람들의 이쁨을 받으며 살고 있는 고양이를 마주쳤다. 꼬마 집사님인 아이는 대번에 고양이한테 갔고, 겁내지 않으며 바로 쓰담쓰담을 했다. 고양이와 이런저런 다소 일방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아이에게는 이 으리으리한 박물관 보다 고양이 한 마리가 더 흥미롭다. 고양이를 따라 가다가 박물관 벽에 거미줄을 친 거미를 만났다. "엄마! 이거봐!" 거미를 만져볼까 고민을 하는 아이를 보며 그저 자연과 동물이면 되는 딸과 내 취향의 짧은 박물관 나들이였다고 생각했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 왜 엄마아빠가 이런 재미없는 곳을 가나 궁금하긴 했었다.)
오후에는 비앤나 인형박물관을 갔는데 완전 딸의 취향저격이었다. 수많은 인형과 피규어의 집합체였던 이곳은 아는 캐릭터가 많이 없었던 아이도 즐겁게 했다. 다행이다. 아이에게 박물관이 어울리지 않는 여행지가 아니라 아이의 취향에 맞는 박물관이 따로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계속 대충보고 빨리 가려는데 아이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했다. 서로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다음날은 치즈 만들기 체험 예약을 해서 아이와 처음으로 치즈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가족 단위 중 가장 소규모였던 우리 둘이라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셀프 동영상으로 틀어놓고 치즈를 만들었다. 후에 숙소에서 영상을 확인하는데 화면을 보며 애교도 부리고 끼를 발산하는 아이의 모습이 담겨있어 사랑스러웠다. 싱글맘으로 가족 체험 같은 곳을 갈 때는 용감하고 의젓한 엄마로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더 발현되는 것 같다. 아이에게 재밌는 추억을 쌓아주고 싶은 나의 사랑이다.
바로 이어서 토끼의 숲을 갔다. 산을 타고 구불구불 운전하다가 중턱 어딘가에 있던 곳이었는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물들도 볼 수 있었고, 비가 오지 않았다면 숲놀이로 설치해놓은 밧줄놀이도 있어서 더 오래 놀았겠다 싶은 곳이었다. 월라비도 바로 가까이서 보고 거북이와 토끼, 돼지가 사람 바로 옆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다. 직원분들이 수시로 동물들의 똥을 치우고 먹이 욕심 때문에 혹여라도 사람들에게 달려들지 않도록 상시 예의주시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안전하게 동물들과 교감의 시간을 가졌다.
아직 하루가 다 가지 않았다. 긴 이동시간 동안 낮잠 한번 자지 않은 딸은 평창 휘닉스파크 내부에 있는 상상놀이터에서도 날라다녔다. 대형 풍선들로 만들어진 놀이터에서 꺄르르 웃으며 노는 딸을 보며 여행오길 잘했다, 오늘은 일찍 자겠지? 생각을 했다. 다 놀고 난 후 한식을 먹으러 왔는데 딸만 혼자 샤워 후 모습이다. 머리카락 끝까지 땀으로 젖은 모습 참 인상적이다.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고 집까지 돌아오는 길은 5시간이 넘었다. 휴게소 한 번 들릴 때 빼고 계속 앉아있으니 꼬리뼈랑 허리가 아팠다. 딸은 몇번 지루해하고 언제 도착하냐고 말하고 꽤 잘 참고 앉아있어줘서 고마웠다. 멀리 여행을 가면 운전도 말동무도 간식 챙겨주는 것도 엄마인 내가 혼자 다 해야하지만 사랑스런 딸과 함께하니까 외롭긴 해도 즐겁고 또 나름대로 행복했다. 딸은 다시 여행 집으로 가자고 떼를 쓴다. 나만 좋았던 것이 아니라 너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구나. 감사하다. 정말 정말 언젠가 먼훗날에는 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셋이 여행오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 속에 계속 품고만 있었던 꿈도 슬며시 적어본다. 강원도 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