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환대로 나아가자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미혼모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이들을 돕는건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미혼모를 돕는 기관이 있는지 찾아봤다. 찾아보니 40분 거리에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관이 있었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관 번호와 자원봉사가 가능한 부분을 살펴봤다. 물질후원도 있고 영유아 돌봄후원도 있고 미혼모가 사회에 자립할 수 있도록 학습지원하는 부분도 있었다. 내일 직장에 가면 여유시간에 연락해야지. 메모해뒀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해서 머뭇거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실제로 미혼모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나는 아이랑 같이 자원봉사 하러 가야하는데 기관에서 혼자만 와야한다고 하면 어쩌지? 작은 금액부터 물질후원으로 먼저 시작해볼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웠던 건 미혼모를 대할 때 혹여나 실수할까봐, 자립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립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인 부분이 비교 될까봐 였다. 돕고 싶은데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서 큰 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미혼모를 돕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지인이 놀러왔다. 2살 된 아들도 함께와서 같이 밥을 먹고 놀이터에 갔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인이 "지금도 아이아빠한테 연락 와? 아니, 내가 SNS를 보니까 아이아빠가 돈을 엄청 벌고 있는 것 같더라구. 사업을 크게 확장했는지, 다른 지역에도 2호점을 내고 새로운 사업도 시작했던데? 골프도 치고 잘 사는 모습을 엄청 올려." 물어보지도 않은 그 사람 소식을 전해주는 지인을 볼 때면 마음속으로는 제발 그만 말해달라고.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겉으로는 쓴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본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거지? 헤어졌는데 여전히 나와 그 사람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이유가 뭐지? 아니 생각이 나더라도 그게 말로 꺼낼 이야기인가?' 마음이 어렵기도 했다. 한두번이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데 여러번 말하길래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도로 말씀하시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고 또 알고 싶지 않다, 아이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말씀 안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정중하고 침착하게 카톡으로 보냈다. 미안하다고 답장이 오는 지인을 보며 털털하고 무던한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 때 알게 모르게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무던하기에 자주 연락이 와서 고맙기도 하다.


얼마 후에는 다른 지인의 가족이 놀러왔다. 연년생 남매를 둔 언니와 형부는 정신없는 육아를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가 나를 대할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많이 힘들지는 않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배려하고 싶어서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는 느낌. 이전에 왔던 지인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부부가 함께 육아하는 것과 한부모가 육아하는 일상은 섣불리 공감하기도 어렵고 위로하기도 어렵다.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 가족들과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때 종종 나와 아이를 대하는 지인들의 다양한 태도를 보게 된다. 어떨 때는 관심에 고맙고 때로는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부담되고, 그럼에도 어울려 살아가려고 한다. 나에게 없는 것이 타인에게 있을 때, 타인에게 없지만 나에게 있을 때 우리는 마음이 하나되기가 그렇게나 어렵다.




3년 째 독서모임을 하는 멤버가 있다. 여자 넷인데 나 포함 둘은 아이가 있고 둘은 임신을 준비중이다. 그 중 한명은 임신 중기에 유산을 했으며 출산과 진통을 똑같이 겪어서 아이를 꺼냈다. 지금은 시험관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다른 한명은 6주에 계류 유산을 했었는데 최근에 다시 임신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이제 막 임신한 사람은 부럽고 질투가 난다. 왜 나는 안 가져 지는지 속상하기도 하다. 이 간절함을 다 알 수 있을까. 먼저 임신한 지인이 시험관을 시도하는 언니가 어서 임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 멀지 않는 시간 안에 차라리 함께 임신을 했으면 좋겠다고. 시험관 시도하는 언니와 둘이 만났을 때 우스갯소리로 "언니는 다정한 남편이 있는데 사랑스런 아이는 없고, 나는 다정한 남편이 없는데 사랑스런 아이는 있네? 우리 서로 섞였음 좋겠다."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끝없이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고뇌한다. 이것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내 인생은 왜 이런 결핍이 있는 건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어렵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공생은 비단 물질에서 뿐만이 아니다. 격차는 어떤 형태로도 우리에게 찾아온다. 가족의 형태가 그렇고 자녀의 유무가 그렇다. 이것 뿐이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속상한 마음을 가슴 한 켠에 묻고 서로 연락한다. 그리고 연결된다. 공감을 배우기를 시도하고 환대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한 마음이 되려고 하고 사회를 이루려고 한다. 끼리끼리의 삶을 지양하고 연결되고 환대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아이에게 공존하는 삶을 물려주고 싶다. 왜 나는 이 삶의 가치가 더 낫다고 여기는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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