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하루
아이와 단오축제를 갔다. 평소 축제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서 잘 가지 않는데 휴일은 우리 집 에너지걸을 집에 둘 수 없어 나왔다. 먹을거리도 있다고 하니 겸사겸사 저녁도 해결하려 마지막 남은 체력 끌어다가 집을 나서본다. 아이는 숲놀이터를 보자마자 흥분했고 치마 입고 온 것을 잊었는지 선글라스를 끼고 성큼성큼 그물 위를 오른다. 가만히 누워 두 손을 머리 뒤에 댄 채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웃기는 짬뽕이다. 그렇게 하면 뭐, 내가 사진을 찍어줄 줄 알았나? 당연히 찍어주지. 한참을 놀다가 신명 난 판소리와 연주 소리에 이끌려 무대 앞 객석으로 이동했다. 빈자리 눈치게임을 하며 먹을거리들을 재빨리 스캔했다. 그때 자리를 정리하고 이동하는 무리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갔다. 아이에게 엄마가 먹을 것을 사 올 테니 여기에 잘 앉아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아이와 둘이 외출할 때면 함께 있을 어른이 나 혼자여서 이럴 때 난감하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아이와 잠시 동안 떨어지는 찰나의 시간이 여전히 떨린다. 점점 커가는 아이를 믿고 민첩하게 움직일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초조함과 뒤돌아봄을 반복하며 음식을 사서 재빠르게 아이 옆으로 온다. 아이는 벌써 흥에 겨워있다. 꽹과리 소리에 맞춰 온몸을 절도 있게 흔드는 모습이 귀엽다. 문제는 나만 귀여워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아이를 쳐다봐서 부끄러웠다. 엄마는 주목받기 싫어... 의자 위에 서서 모두 자기를 보라는 듯이 즐겁게 손뼉 치는 아이를 한참을 바라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이 가는 대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축제를 즐기는 너를 본다. 세상을 호기심과 탐구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아이를 보며 삶을 누린다는 것을 생각한다.
혼자였으면 못 갔을 축제였다. 늘 가던 곳, 익숙한 곳에만 머물러 있을 내가 너로 인해 삶을 꽤나 풍성하게 즐기는 중이다. 너로 인해 나의 삶이 확장된다. 너는 나의 세상이다. 삶을 누리는 법을 알려주는 너는 나의 선생님이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 다시 희망을 걸어본다. 슬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시 웃을 수 있다고. 삶은 때때로 아프고 또 즐거울 수 있다고. 삶은 그렇게나 복잡해서 좀 더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해 보니 언제 음악을 찾아 들어봤나 싶다. 삶이 의무감과 효율성으로 채워진 내게 음악 같은 유희는 시간 낭비에 가까웠다. 성장과 배움을 중시하는 나에게 음악의 세계란 낯설기 그지없다. 그저 머물러 음악에 몸을 맡겨보는 것. 그 낭비로운 삶을 조금씩 삶으로 초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단오축제에 가기 전 지인을 집에 초대했다. 만나는 내내 낯을 가리더니 가려고 하니까 늦정이 들어 우는 아이를 보며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둘째를 간절히 낳고 싶었던 시기는 전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후였다. 그의 때때로 가해지는 폭력과 외도가 있었음에도 나는 무슨 마음으로 그와 다시 몸을 섞으려는 생각을 했을까. 임신이 잘 되지 않아 첫째 때도 하지 않았던 산전 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다낭성이라 둘째 가지기 힘들다는 말과 첫째를 낳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을 했다. 기적같이 낳은 딸이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아니 나의 하나뿐인 이상적인 가정이, 나의 이상이 깨지지 않기를 바랐다. 아니 나의 지난날의 무수한 인내와 인고의 시간들이 자녀를 통해 결실을 맺기를 원했다. 아니 둘째를 낳으면 전남편이 가정에 집중하고 본격적인 아빠 육아가 시작될 줄 알았다. 아니 나는 내 존재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울면서 전남편과 몸을 섞었다. 이런 쪽으로 직업을 가진 처음 본 여자와 몸을 섞었을 그를 상상하면서. 한편으로는 무너져 내리고 한편으로는 발버둥 치면서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났다.
여전히 아이에게 미안하다. 나에게 더 미안하다.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지 못한 것 같아서. 터널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아서. ’ 00 씨는 맹수가 있는 동굴 속에 살고 싶나요 아님 어떤 위험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동굴 밖으로 나가 살고 싶나요?‘ 물었던 상담사에게 ’ 동굴 속에 맹수랑 함께 사는 것이 차라리 나아요. 동굴 밖으로 나가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위험을 만나는 것보다. 차라리 그 맹수는 제가 자주 봐서 예상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라고 했던 내가. 불과 일 년도 안돼서 그 맹수를 떠나 동굴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시간들이 나를 건져내고 구하고 살렸던 시간들이라 믿는다. 엄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법을 몰랐지만 있는 힘껏 배우고 연습하는 중이라고. 그 어떤 백 마디 말보다 삶으로 살아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