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하루
대세와 유행을 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을 싫어한다. 애니어그램 5번 유형(사색가)의 특징이라던데 내가 딱 그렇다. 특히 엄마가 되고 육아를 하면서 '이 시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육아' 등은 제일 싫어하는 문장이 되었다. 키즈 카페 역시 그랬다. 주말마다 키즈 카페를 가야만 할 것 같은 현실이 싫었다. 대부분의 키즈카페들이 복사+붙여 넣기처럼 비슷하게 운영되는 것도 싫었고... 부정적인 생각이 좀 더 많았던 지난날에 비해 요즘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놀이터에 가면 딸아이 또래를 많이 만나지 못한다. 키즈 카페에 다 가있다. 어린 시절 흙먼지 먹어가며 뛰어놀던 집 밖 놀이터에서 이제는 실내형 키즈 카페로 놀이 공간이 이동한 시대적인 특징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은 잘 모르겠으나 지방에 사는 입장에서 아이들의 놀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에 맞춰서 다양한 체험시설 등을 꾸준히 만드는 노력도 함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외동인 딸아이의 경우 집에서 투닥일 형제가 없다.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서는 성에 안 차는 환경적인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키즈 카페에 가면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들이 무수히 생기고 공유된 놀잇감으로 놀면서 같이 놀까 말까를 수없이 망설이게 된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얘가 내 장난감을 뺏어가면 어떡하지?' 등 수없는 질문들이 떠다니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좀 더 어려서 보호자가 끊임없이 따라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르겠지만. 5살 즈음되니 딸은 나와의 놀이보다 또래놀이를 더 선호한다. 그렇게 나의 개입이 끊어지는 지점들을 보며 보호자의 사정거리 안에서 마음껏 나의 선호도에 따라 탐험하듯 놀 수 있는 공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특히 어떤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싫어한다면 어느 부분이 싫은지 경험을 통해 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좋은 건 갈등상황을 가능한 많이 마주하고 스스로 상황을 해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인데 정말 친한 지인들이 아니고서야 키즈 카페 같은 공간에서는 서로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 때문에 엄마들이 나서서 중재하고 사과하고 후다닥 갈등의 현장을 빠져나가곤 한다. 아무튼 아이가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기초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키즈 카페라는 장소가 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매번 비싼 돈을 들여가며 키즈 카페를 갈 수 있겠나. 평일에는 보통 하원하면 집에서 밥 먹고 청소와 집안일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데 그때는 아이의 '심심해에~~~'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그런데 이 심심하다는 것 또한 꽤나 의미가 있다. 아이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지 않고 '지금, 여기'를 살고 있다는 것이고 집안 구석구석을 보며 놀 거리들이 없나 탐색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뭐 하면 재밌을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욕구 지연과 만족 지연은 덤이다. 삶에 여백이 많을수록 뜻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기회가 많이 생기니, 어른들이 알아서 아이의 하원 후 시간표를 짜지 않아도 아이에게 주체성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이의 떼부림과 신경질적인 소리를 들어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 <부모는 관객이다>를 쓴 박혜윤 작가님이 자녀를 육아하는 모습처럼 '심심하면 왜 심심한지 어떤 활동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끊임없이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며, 해결해 주기보다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아이를 관찰하는 시간으로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직업병이다. 아이와 어떤 시간을 보내든 시간들의 의미와 교육적 효과를 고민하는 것이 틀림없이 직업병이 맞다. 하지만 모든 시간들의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가 괜찮다면, 나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을 잘 살려 아이를 관찰하고 나를 관찰하는 시간, 내 편견과 선입견의 뿌리를 따라가 보는 시간으로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표와 의미 없이 즐겁게 하루하루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온전히 삶의 주인이 되어 나 다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 것도 나름의 멋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성공을 따르는 삶도 그렇고 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나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꿈꿀 수 있다. 그 사실을 잊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