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 지연시키기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딸은 기분이 나쁘거나 몹시 흥분했을 때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리는 행동을 보인다.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일부러 발을 쿵쿵하며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내 머리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발로 차는 시늉도 보인다. 물론 ‘엄마 내 마음 좀 알아주세요.’ 외치는 몸의 언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이 반복될수록 '이 나이 대 아이는 다 이렇게 난폭한가?' 생각이 들었다. 비교 대상이 없어서 고민이 되었는데, 지금은 모든 아이들이 다 이렇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아니고 딸처럼 표현하는 아이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 공감하고 어디까지 문제 행동을 지도할 것 인가.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어서 훈육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만의 배경과 스토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일찍이 가정에서 부모끼리의 폭력에 대해 경험한 터라 아이가 은연중에 몸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습득했을 텐데 아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만을 혼내기에는 나 스스로가 찔렸다. 아이의 선택과 상관없는 현재의 가정환경이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반응하기도 했다.(실제로 한부모 가정의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녀에 대한 지나친 헌신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문제 행동이 사라질 수 있도록 과하지 않게 훈육을 해보자고 생각하며, 부드럽게 "그런 행동은 좋지 않아. 엄마가 아프잖아. 엄마한테 차분하게 설명해 보자. 뭐가 가장 기분이 나빴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난폭함은 더 빈번하게 일어났고, 나의 인내심은 한계가 왔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이제 텔레비전 그만 보자는 말에 세상이 떠나가라 뒤집어지며 발로 바닥을 치며 울고 나를 때리려고 달려드는 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훈계와 수용의 중간점, 균형을 찾고 싶은 마음과, 잘못한 부분을 명확하게 지도하지 않는 것은 아이를 버릇없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훈육의 정도를 다소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아이에게 엄히 꾸짖고 한쪽 벽에 두 손을 들고 서있는 벌을 줬다. 팔이 아파서 서럽게 울 때마다 이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벌이든 훈육이든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말이 많다. 교육의 현장에 있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여전히 모르겠다. 정답이 없으니 그때그때 나의 마음에 솔직하고 아이를 속이지 않으며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피곤하다고 조금이라도 나를 찾지 말라는 의미로 텔레비전을 보여줬던 나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를 떠올리며, 뉘우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즉각적인 만족을 지연시켜 보자 강하게 마음을 먹었다. 사실 겉으로는 아이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훈육하지만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한 데에는 부모의 행동이 만들어 낸 환경으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인정한다. 내가 더 아이에게 텔레비전 없이는 못 살게 많이 보여줬으면서 아이가 절제하는 마음을 자연스레 갖기를 바랐다. 쉬운 길 넓은 길로 육아하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가족일원이 우리 둘 뿐이지만, 내가 무조건 헌신적으로 아이와 놀아줄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집에서 쉬는 모습도 있고 그러다가 또 아이와 살짝 놀기도 하고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이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뭐든 극단적인 것은 좋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텔레비전 없는 하루가 펼쳐졌다. 아이는 전날 혼나서인지 티비보고 싶다고 딱 한번 찾았다. 욕구를 지연시키려는 노력은 아이한테만 해당되는 훈련이 아니다. 나 역시 피로감에 핸드폰과 SNS, 영상을 찾으려는 도파민을 지연시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이 없는 하루는 심심하면서도 널널했다. 유유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 '지금, 여기'를 살기에 충분했다. 시소처럼 균형을 부단히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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