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 지연시키기(2)(feat. 훈육의 변화)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아이가 화가 날 때 엄마인 나를 향해 때리는 시늉, 혹은 때리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여준 지 몇 개월이 지났다. 지난번에는 손을 들고 서 있는 것으로 벌을 주기도 했었지만 이후에도 아이의 행동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모는 관객이다> 책을 읽고 훈육의 방법을 조금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화를 내거나 벌을 주는 행위를 통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날 저녁도 아이는 나에게 화가 난 상태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아이는 울면서 나를 때렸다. 나는 침착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화가 날 수는 있어. 엄마도 이해해. 하지만 화가 났다고 엄마를 때리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야. 엄마는 네가 지금은 엄마를 때리는 행동으로 멈추지만 나중에 이 행동이 습관이 돼서 다른 친구들한테 화가 났을 때도 친구를 때릴까 봐 걱정이 돼. 그래서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아. 5살 언니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해. 엄마는 화내거나 너를 벌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선택지를 주지 않으면 아이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모를 것 같아 아이의 자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선택지를 제시했다. “오늘 밤 자기 전에 TV를 보는 시간을 가지지 않을 거야. 00 생각은 어때?” 그토록 원했던 TV 보는 시간이 없어진다니 생각했는지 아이는 억장이 무너지듯 울면서 갑자기 속사포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엄마. 내가 내일 진짜로 엄마를 때리지 않을게. 내일 만약에 또 때리면 그때 TV를 안 볼게. 오늘은 보게 해 주면 안 될까? 내가 진짜로 약속 지킬게. 내일 안 지키면 내일 안 보게 해 줘. 응? “ 나는 가차 없이 안된다고 했다. ”안돼. 저번에도 다시는 엄마 때리지 않겠다고 해놓고 이번에 또 때렸잖아. 엄마가 어떻게 너의 말을 믿을 수 있겠어? “ ”아니야, 엄마 이번에는 내 말 믿어줘. 진짜 약속할게. 응? “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나를 안고 내 볼에 뽀뽀하고 자신이 어떤 것을 해야 엄마가 뜻을 돌이킬까 온몸으로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울긴 울지만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자신만의 논리와 의견으로 나를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기도 했다. ”그래 알겠어. 엄마도 갑자기 제시한 거니까 그럼 오늘 TV 보기로 한 것은 보고 대신 다른 선택지 두 개를 제시할게. 지금 바닥 먼지 돌돌이 청소랑 빨래 빨래통에 넣고 오는 청소를 하고 올래, 아니면 오늘 밤 책 안 읽고 잠자는 것을 선택할래? “ 새로운 선택지 앞에서 아이는 ”책 안 읽고 자는 걸로 할래.”라고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나는 거듭 아이에게 이 독서의 즐거움의 박탈이 어떤 곳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말했다. 내일부터는 엄마를 때릴 때마다 TV를 볼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에게 훈육을 하되 아이의 말도 듣고 나의 말도 하는 대화(라고 말하고 협상이라고 읽는다.)의 시간이 의미 있었다.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만 책임을 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본인의 의견을 주장해 보려는 아이의 시도도 참 좋았다.


그리고.. 아이는 다음날에도 나한테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나를 때렸다. 심하게 때린 건 아니었지만 안 좋은 행동이 습관화된 것을 인정하기에 나는 아이에게 곧바로 TV시청 금지를 말했고 아이는 이번에 순순히 수긍했다. 신기했다. 아이는 엄마가 ‘네가 나를 기분 나쁘게 했으니 너의 자유를 뺏는 것으로 너를 보복하마.’라고 보복심리로 이 상황을 읽지 않았다. 자신의 좋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으로 읽었다. 전날, 우리의 협상과 대화의 시간이 있었기에, 한마디로 아이가 자유를 제한하는 부분에 대해 주체적으로 합의한 부분이 있었기에 수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인 내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의 때리는 행동이 고쳐지길 원하는지도 알게 돼서 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TV시청 금지가 주는 또 하나의 큰 수확이 있다. 집이 더더욱이 심심해졌는데 아이가 그 시간을 버틴다는 것이다. ‘어차피 엄마는 절대 TV를 틀어주지 않을 거고 그럼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를 궁리하는 모습이 읽혔다. 그리고 주말에 미용실을 가서 커트를 하러 갔는데 예전 같으면 자신을 위한 일정이 아니면 견딜 수 없어하고 당장 엄마 핸드폰으로 TV를 보여달라고 할 아이가 이 날은 거울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했다가, 신발을 벗고 미용실 의자에 쭉 뻗어 누워있다가, 탁자 위에 있는 ‘부재중 000-000-0000’이라 적힌 종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유리창문에 붙이고, 포도맛 사탕을 골라 먹었다가, 잠잘 거라고 입 모양으로 거울을 통해 나에게 전달한 후 잠자는 연기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지루하고 심심한데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고 그 나름대로 보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사는 게 이런 거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아이가 가상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살고 있구나가 느껴졌다. 영상을 보지 않고 멀뚱멀뚱 주변을 관찰하고 둘러보는 아이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전에 잠깐의 심심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티브이티브이 티브이 보여줘어!!” 하며 떼를 썼던 아이의 모습은 대략 중독이 맞는구나... 생각도 들었다. 그런 아이가 요즘은 그런 떼도 쓰지 않고 TV를 안 보는 시간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심심함을 경험하고 있다는 게 선물같이 느껴졌다. 전자제품을 사러 갔을 때도 아이는 내 옆에서 심심해하며 엄마가 계약서를 쓰고 직원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지켜본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전자제품 사는 곳을 가서 엄마 아빠가 중요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선풍기, 에어컨 등 둘러보며 가격보고 흐익-! 하고 어떤 게 더 이쁜지 나름 순위도 매겨보며 따분한 시간들을 기다렸던 때가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가 일상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지루하지만 간접적으로 보고 듣는다. 나 역시 아이에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만을 위해 키즈 카페 등 나들이로 주말 일정을 잡지 않은 것을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빨리 고모랑 놀고 싶다고 고모 어서 오라고 연락해 보라는 아이를 보며 즐거운 약속을 기다리는 마음도 덤으로 느끼니 참 좋았다.


나는 어떤가. 얼마 전 직장에서 일찍 조퇴를 쓰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전신 마사지를 받는 100분 동안 나는 약간의 중독 증상을 느꼈다. 살면서 100분 동안 핸드폰이나 전자 기기를 안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금단 현상처럼 도파민이 급했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며 100분을 버티지? 생각했다. 그런 나를 보며 아이의 영상 중독 문제도 고민거리였겠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걱정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없는 시간을 틈타 드라마를 본다고 틈날 때면 영상을 틀던 것이 내 모습 아니었던가.. 심심할 여유가 없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며 어차피 꾸준히 연락할 사람도 없는 마당에 핸드폰과 적절히 멀어지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기기를 보지 않을 때면 얼마나 많은 새로운 생각들이 퐁퐁 솟아나는지 모른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중간중간에 핸드폰을 보는 시간, 샛길로 새는 시간들이 자주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보지 않을 때면 내 뇌가 여러 가지 창의적인 삶의 성찰거리들을 던져주며 말을 걸어온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럴 때 활기가 있음이 느껴진다. 우리, 그렇게 스스로의 미디어 사용 습관을 점검해 보자. 다음 세대를 걱정하기 이전에 나의 욕구를 먼저 돌아보자. 그리고 욕구를 지연시켰을 때 얻게 되는 것들을 발견해 보자. 심심함 속에서 삶이 더욱 풍성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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