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하루
아이와 나의 일상에 서로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가령 목요일마다 아이가 미술학원에 갔을 때 온몸으로 하는 체험 미술이라 50분 수업이 끝나면 학원 내에 있는 개수대로 가서 손과 발을 씻고 간다. 보통은 아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로비 의자에서 부모 혹은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를 데리고 개수대에 가서 직접 손 발을 씻겨주고 필요하다면 환복을 시키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말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아이 스스로 손 씻고 오게 했다. 이 광경이 얼마나 웃겼냐면 5~6개의 개수대에 아이마다 어른 한 명씩 붙어서 청결과 위생에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시에, 중간에 키가 작은 한 아이가 혼자서 손에 비누를 바르고 꼼꼼하게 씻어서 물로 헹구고 손을 탈탈 털고 있는 모습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청결이 먼저냐, 서투르더라도 아이의 손 씻기 실력을 믿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먼저냐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주도성’이 이 사소한 찰나에도 드러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씻어주는데 아이는 혼자 씻어서 서운할까? 궁금해서 그날 저녁에 물어봤다. “00아, 오늘 미술학원에서 수업 끝나고 손을 씻었잖아. (응.) 그때 다른 친구들은 엄마 아빠가 손 씻어줬던 거 알지? (응!) 근데 00 이는 혼자서 씻었잖아. 기분이 어땠어?” “좋았어!” 오호라...? “왜 좋았어?” “음... 잘 모르겠어!” “00 이가 스스로 손 씻어서 기분이 좋았던 거야?” “응!” 많은 엄마아빠들이 아이가 미래에 자립할 수 있도록 고민하며 돕는다. 나의 경우는 사실 혼자 키우느라 벅차기도 하고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가져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데서 자립을 돕는 나만의 역할이 주어진 것처럼 느낀다. 아이가 다니는 체험미술학원에서는 교사가 이끌어 가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주도하며 활동을 이끌어 가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설계한다. 그 점이 나도 지향하는 바라 학원을 계속 보내는 중인데 정작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부모가 사소한 것부터 아이가 자신의 주도성을 펼치지 못하도록 기회를 박탈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인내심을 가지고 더디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부모입장에서는) 나중에 편해지느냐, 지금 고되지만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스스로 연습하는 시기는 천천히 주느냐의 부모마다의 차이도 존재하는 듯하다. 이 역시 시기의 정답은 없고 아이도 스스로 하고 싶고 부모도 인내심을 가지기로 생각할 때, 아이와 부모의 적절한 맞춤 시기에 이루어가면 되는 것 같다. 내가 느낀 성장이란 바로, 이런 합일점을 찾아갈 때 성장을 느끼고 양육의 보람을 느낀다. 아이는 내가 손을 씻겨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 않았고 스스로 손을 씻고 오는 것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기왕 뿌듯함을 느끼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집에서 집안일을 할 때도 자립심을 확장시켜 보기로 한다. 세탁기에서 빨래 종료 알림음이 들린다. “00아, 빨래가 다 됐대. 너 옷을 스스로 널었으면 좋겠는데.” “싫어! 나 이거 할 거야!” 자, 이제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나는 온갖 이유를 들어 아이에게 빨래 널기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다. “지금까지 엄마는 엄마 옷, 너의 옷 구분하지 않고 항상 빨래를 널어왔어. 매번 그렇게 하는 게 쉽지는 않아. 하지만 엄마는 우리 가족의 옷이니까 피곤하더라도 널어왔지. 가끔은 너도 엄마와 너의 옷을 널어봤으면 좋겠어. 우리는 가족이잖아.” “알겠어, 할게.” 그렇게 아이와 빨래를 건조하는데 나름 이전에 몇 번 배워서인지 빨래를 탈탈 터는 시늉을 하며 ( 그 사이 이미 걸려있는 다른 옷이랑 부딪혀서 그 옷이 떨어진다.) 꾸깃꾸깃 빨래걸이에 매달아 놓는다. 아이는 집안일이 귀찮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매일, 꾸준하게,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머리가 커지기 전에 가족은 귀찮은 일도 함께하고 집안일은 그냥 하는 거라는 것을 머릿속에 심어주고 싶다. “엄마! 저기 가있어. 내가 다 할래!” 호기롭게 외치는 아이를 보며 그래 나도 좀 쉬자, 생각으로 소파에 앉았다. 예전에는 빨래를 빨래걸이에 옷의 중간에 맞춰 걸지 못해서 스르륵 떨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옷을 펴서 널진 못하더라도 옷의 중간을 잘 맞춰서 걸어놓는다. 떨어지는 옷이 거의 없다! 조금씩 진전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그새 집중력이 떨어졌나 보다. “엄마, 나 안 할래. 엄마가 해!” 같이 하자고 설득하고 빨랫감으로 장난도 치며 어지저찌 마무리를 한다.
한 번은 집에서 tv를 보지 않는 시간에는 아이가 기상천외한 장난을 치곤 하는데 색연필을 끝까지 돌려서 다 나오게 한 후 끝에서부터 가위로 싹둑싹둑 오려서 책상 위에 색연필 조각들과 가루들이 펼쳐진다거나, 천장을 페인트칠한다고 바닥에 쓰는 돌돌이(찍찍이)를 천장에 대고 한다거나, 고양이 캣타워를 올라가고 싶어서 기둥을 올라타서 캣타워가 휘어있거나, 책장 위를 클라이밍을 해서 올라가 책장 위에 서서 나를 바라보며 씩 웃고 있는 경우 등이 있다. 와... 이토록 창의적인 아이를 그동안 tv로 손발 묶어놨었구나 생각할 정도로. 넘치는 에너지와 장꾸 기질을 보여준다. 정수기에서 물을 먹고 컵을 싱크대에 던져서 퐁당하느라 물이 바닥에 다 튀었을 때 등, 아이가 지나가는 모든 흔적마다 청소거리들이 넘쳐날 때 나는 이때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몸이 하나고, 워킹맘이자 싱글맘이니... 집안일의 일부는 아이의 몫으로 두어야 할 여러 가지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본인이 한 것은 더더욱! 물이 흘려져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내 눈치를 살살 보는 아이를 향해 ”엄마 화 안 났어. 다만 네가 흘렸으니까 네가 스스로 치워야 해. 할 수 있지? (응!) 수건을 가져와. 저기 식탁 위에 있지? 그리고 물이 있는 곳곳을 닦는 거야. 대충 닦으면 안 돼. 저기 홈 있는 곳에 물이 있어서 계속 흐르고 있잖아. 그때는 손가락으로 수건을 넣어서 닦아야 하는 거야. 해봐.” 색연필 조각들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을 때도 아이에게 말했다. “재밌게 놀았어? 이제 치우자. 네가 스스로 치워야 해. 물티슈가 좋겠어 티슈가 좋겠어?” 그런 다음 쓰레기봉투를 옆에 갖다주고 다 담으라고 말한다. 엉성한 청소 결과만 납득할 수 있다면 아이가 놀고 난 (사고 친) 흔적은 스스로 하게 두니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해도 (벽에 색칠하는 것만 빼고...)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내 할 일이 아닌걸.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자라난다. 잠깐 한눈 팔고 보면 훅 자라 있다. 아이의 잠재력과 한계를 나는 미처 다 알지 못한다. 성인이란 고착화되는 데에 익숙한 자들이라 매번 성장하는 아이를 향해 적절한 과제를 제시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전에 하던 대로 하고 해 왔던 대로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자라나는 아이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조금은 버거울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녀가 사회로 나아가기 전에, 아니 곧 또래 관계로 중심지가 이동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정에서 많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계속 고민하고 궁리한다. 서로의 성장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