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밀도 있게 쓰기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학교에서 아이들이 유독 자주 싸우고 집에서도 육아가 쉽지 않을 땐 몸이 두 개 정도는 되었으면 한다. 그때는 잠깐씩 허용되는 쉼의 시간을 밀도 있게 쓸 수밖에 없다. 체력의 한계를 깨닫고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조절하는 것의 반복이다. 그런데 이 조절이 스트레스로 느껴지지 않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 그런가 꽤나 재밌다.


우선, 육아시간을 꼬박꼬박 쓴다. 그리고 아이 어린이집 근처 천변 길가에 주차를 한 뒤 푸릇푸릇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린다. 이 시간에는 유튜브를 볼 수도 있고 OTT를 볼 수도 있지만 영상을 잠시 내려놓고 내게 진짜 쉼을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한다. 당장의 쾌락을 지연시키고 알람을 맞춰 명상을 한다. 15분에서 20분 사이로 하고 나면 명상의 끝에는 살짝 졸음이 오면서 직장에서 긴장했던 온몸과 마음이 최대한으로 이완이 된다. 그러면 다시 두 번째 하루를 사는 마음으로 아이를 하원하러 데리러 간다. 간혹 아침에 일찍 눈을 뜨게 되면 누워서 할 수 있는 고관절 스트레칭이나 앞벅지 스트레칭을 하며 서서히 요가 수련의 자리로 나아간다. 밤새 눌려있었던 허리와 옆구리, 어깨들을 깨우는 마음으로 짧게 10분이라도 내 몸을 환대하는 시간을 가진다.


주말에는 아이와 최대한 뒹굴거리다 배가 고파질 때쯤 아이 스스로 아침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싱글맘은 설거지, 음식 준비, 집안 청소를 혼자 다 감당한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들을 통해 아이에게 일찍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 아이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빨래 널기를 한다. 요즘은 돌돌이를 밀어가며 고양이 털을 제거하는 일에 부쩍 관심이 생겼는데 간혹 천장을 페인트칠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자꾸만 돌돌이를 위로 세우기도 한다. 이래저래 뒤죽박죽인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보는 센스 또한 필요하다. 목표가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청소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면 더더욱.


평일 저녁 준비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쓴다. 생선은 손질된 냉동식품으로 구입해서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기에서 뚝딱 데울 수 있는 식품을 산다. 밥을 안치고 소분할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햇반 작은 용기로 몇 묶음을 사서 저녁 준비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이러다 보면 분리배출 할 용기가 많아져서 환경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며 살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지점과 내려놓은 지점을 적절히 찾아가게 된다.


학교 일이 바쁜 학기말 같은 경우는 짬을 내어 독서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출근할 때 가지고 간 책을 고스란히 그대로 집으로 가져오는 날에는 아이와 함께 잠자기 전 식탁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단 TV 시청은 빼고 말이다. 아이는 지금 TV 외에 다른 활동은 TV만큼 재밌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점점 함께하는 시간들을 즐기며 클레이 놀이를 하거나 그림 그리기를 한다. 나는 이 시간에 책을 읽는데 아이는 "엄마 무슨 책 읽어?" 라며 책의 표지를 보곤 한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읽어봐!" 말에 읽고 있는 책을 큰 소리로 읽는다. 아이는 "재미없어. 나도 엄마처럼 책 읽고 시퍼. 근데 혼자 읽는 건 재미없어. 엄마가 읽어주는 게 좋아."라고 말한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것이 재밌기도 하다. 결국 "나도 엄마처럼 책 읽을래." 하고 자신의 책을 가져온 아이는 언젠가 읽었던 내용을 기억 삼아 비슷하게 제목을 만들고 내용을 만든다. 글자를 모르는 시기에 상상력과 창의성이 더 생긴다고 했던가.



반복적인 일상이 힘에 겨울 때, 그러나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이루어 가고 싶을 때, 아이와 나의 역할을, 우리의 시간을 틈이 나게 보낸다. 뻑뻑하지 않게.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이되지 않는 정도로 쉼에 집중한다. 잘 쉬고 잘 보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느긋하게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아주 작은 것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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