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컸다고 느낄 때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는 분이 계셔서 회식을 했다. 사회생활의 연장시간 중에 하필 마법의 날이 함께 와서 몸이 아주아주 힘들었다. 지치고 무겁고 몸살 기가 오고 어지러워서 죽을 맛이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아직 어린이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딸을 생각했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이럴 때 참 유난히 서러웠다. 내가 늦게 퇴근할 때 나 대신 아이를 픽업해 주고 저녁을 차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 (어쩌면 나는 연애의 대상보다 함께 가정을 이끌어갈 동업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싱글맘으로서 가장 버겁다고 느낄 때다. 보통은 1차 식사자리에서 2차 카페로 옮기면서 슬쩍 빠지곤 하는데 이날은 예상보다 오래 식사가 지속됐다. 그렇다면 난 모성애를 발휘해 용기를 내야 한다. 부장님이 먼저 일어나시길래 나도 같이 일어나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휴, 어서 달려가야겠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 눈이 피곤해 보여.”라고 했다. 내 눈이 감기고 있었나 보다. 피곤하다고 나를 어필하지 않아도 아이가 알아서 내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쉽게 체력이 회복되지 않을 때, 나이가 들었다고 느낀다. 한 달에 한번 마법의 날은 공식 몸살의 날이 된 지 오래다. 체력을 비축하면서 몸 컨디션에 맞게 하루 일과를 과감히 덜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중간중간 대학원 준비도 해야 했어서 마음과 몸에 여유가 없다. 주말은 지인들과 약속이 있었다. 서로 점심거리를 챙겨 와서 함께 밥 먹고 보드게임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딸과 딸보다 2살 어린 남동생을 지인들과 서로 돌아가며 아이들을 봐주고 나머지 어른들은 보드게임을 했다. 내가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 3살 동생을 먼저 챙기는

나를 보고 딸이 투정을 부렸다. 표정이 마치 ‘엄마는 내 엄마인데 왜 나한테 안 오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때 그 순간을 견디고 기다리는 연습을 한다. 딸에게는 귀한 성장의 시간인 셈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딸이 질문을 한다. “엄마, 엄마가 00이 엄마였으면 어땠을까?” 내 엄마가 아까 같이 놀았던 동생의 엄마라면 어땠을지 상상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도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했을 거라고 대답을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주말마다 키즈카페를 가는데, 가는 길에 또 내 눈이 감겼나 보다. 아이가 나를 보고 “엄마 운전 안 할 때는 어서 자!”라고 한다. “엄마 내가 지켜줄 테니까 어서 자 지금!” 키즈카페 가는 길에 낮잠을 잘 줄 알았던 딸은 정작 똘망똘망하고 내가 낮잠을 자야 하는 상태였다. 차 속에서 잠깐 잘까 하다가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참고 주차하고 바로 키즈카페로 올라갔다. 결국 몸이 못 버텨서 키즈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엎드려서 잤다. 육아와 일, 집안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구나. 싶었다.


피곤한 와중에도 불면증은 그대로다. 작년에 이혼 준비할 때부터 지속된 불면증은 약이 없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상태다. 현재 먹고 있는 약은 잠의 시작을 도와주지만, 잠을 지속시켜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자다가 3-4시간 후에는 항상 일어난다. 그때부터는 몸이 피곤해도 쉽게 잠들지를 못한다. 한번 깬 후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난다. 조각잠을 여러 번 자려고 노력하는 시간이랄까... 그렇게 한 주를 살아오니 일요일 아침은 도무지 몸이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내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자던 딸이 갑자기 부스럭하면서 조용히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실눈을 뜨고 보니 좋아하는 인형 2개를 양손에 들고 거실에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거실에서 뭔가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서 엄마를 깨우지도 않고 혼자 무슨 시간은 보내는 거지? 궁금했다. 몰래 거실을 살펴봤다. 혼자 책을 꺼내서 조용히 읽고 있었다. 한글을 몰라서 엄마가 책 읽어달라고 떼쓰는 딸이 오늘은 혼자 그림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웃기고 사랑스러웠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엄마 나 공부할래! 엄마는 소파에 누워서 나 하는 거 봐!”라고 말했다. 일어나서 고양이 밥 주고 아이 아침 차려주려는

나를 막고 소파에만 누워있으란다.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자기만 보길 원하는 딸을 보며 웃음이 났다. 그래 좀 더 쉬자. 자라나는 너를 보며 몸을 소중히 여길 나를 보며 음미하듯 천천히 이 시간을 보내보자. 부쩍 큰 너를 보며 오늘도 뱃속이 꿈틀거리는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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