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난 안좋아한다
세상에서는 과정보다 그저 결과를 중요시한다.
맞다, 결과가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일까, 난 과정이 좋다. 과정이야말로 결과보다 중요한 아웃풋이라고 난 생각한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과정이 좋으면 결과도 언제나 좋았다. 물론 결과가 좋았다는 것이 항상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좌절을, 때로는 아픔을, 또 때로는 슬픔을 자아냈다.
그것이 어떻게 좋은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겠냐만, 혼자가 아닌 그리고 독재적으로 움직인 과정이 아닌, 때론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어낸 과정 속에 모든 결과는 그 끝이 어떻든 언제나 나에게 소중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스스로 모르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과값이 아닌, 그 과정 중에 누구와 함께했는가일지도 모른다.
다시 어느 카페에 앉은 나와 그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던 나는 그녀에게 내가 짜온 각본 겸 기획안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이렇게 해서 저렇게 퓽 하고 하는 거야!”
그리고 그녀도 자신이 영상에서 간단하게 출 수 있는 안무 등을 생각해왔다. 그렇게 일 얘기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얼어붙어 있던 우리 사이는 다시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짜온 춤을 보기 위해 우린 코인노래방까지 갔다. 덕분에 그때 노래방에서 춤췄던 그녀의 흑역사가 아직도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
나도 그 영상을 가끔 보려 했지만, 내가 더 부끄러워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안 볼 예정이다.
그렇게 회의를 마친 우리는 노래방에서의 뭔가 아쉬운 마음을 품은 채 집에 가려는 순간,
“그냥 가기 아쉽다.”
그녀의 한마디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포차로 데려갔다. 나도 그녀와 노는 게 재밌었는지 아쉬움이 남았었나 보다.
우리가 간 곳은 옛날 분위기의 레트로 감성이 느껴지는 포차였다. 원래 술을 먹지 않는 그녀가 술을 찾았다. 물론 그녀는 별빛청하만 먹을 수 있다. 다른 술은 먹지도 못한다. 술도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술을 찾는다는 건 그녀도 오늘 하루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나도 술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만큼도 결코 먹지 않았다. 왜냐면 약을 먹고 있었으니까. 난 의사 선생님의 말을 참 잘 듣는 환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홀로 마시는 그녀가 외롭지 않게 나는 물을 담은 소주잔을 그녀의 가득 차 있는 술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쨍그랑.”
깨진 소리가 아니다.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유리잔의 향연이자 공명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깊어만 갈수록 오히려 취한 쪽은 나였다. 정확히는 취한 척 연기였지만, 꽤나 실감 나게 연기하는 나의 연기력은 청룡영화제 대상 수상감이었다. 아마 그녀도 꿈뻑 속았을 것이다. (아님 말고)
술 기운은 없었다. 하지만 둘 다 너무 멀쩡한 상태에서 우리는 술에 취한 것처럼 놀았다. 그러다 약간의 정적 속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야… 영화 쉽지 않던데…”
이런 내 말에 그녀도 기다렸다는 듯 변명 아닌 변명들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길래 본 거였다, 이런 내용인 줄 정말 몰랐다, 아까는 오빠에게 예술적으로 봤다고 했지만 이걸 같이 보자고 했던 내가 좀 부끄러웠다… 등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그때 난 느꼈다. 서로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 과거 불편하게 느껴졌던 함께 영화를 본 그 순간들이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아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소중하고도 웃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 일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회자되어 그녀를 놀릴 때 가끔 꺼내는 이야기 중 하나다. 지금 그녀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다면,
“그때 나에게 그 영화를 함께 보러 가자고 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