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호랑이 Jan 10. 2021

4.20대, 정말 가장 예쁜 시절이었을까

4)연애


연애       

   

  연애라는 말처럼 설레는 말이 있을까.     

선배는 키가 컸다. 그리고 눈이 참 착했다.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건넨 말들이 진담이 된 경우였다. 나에게 잘해 줬다. 

그리고 영리하고 솔직했다. 내가 하는 말은 귀 기울여 들어줬고, 내가 하는 일들은 다 옳았다. 남자에게 꽃을 선물 받은 것도 처음이었고, 집에 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처음이었다. 손을 잡은 것도 처음이었다.


  선배와 나는 IMF를 같이 겪었다. 나는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고, 선배는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먼저 취업을 했고, 선배는 조금 더 지나 취업을 했다. 선배는 내게 떡볶이를 해 주며 청혼을 했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던 연인이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부부가 되기로 했다.

  시내 액세서리 가게에서 2만 원짜리 결혼반지를 샀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면서 싸구려 콘도에 묵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다. 결혼식에서 받은 절값을 잃어버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도 난다. 화장실에 갔다가 가방을 놔두고 온 것이다. 가방은 그대로인데, 절값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때 나 다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가, 내 가방 속 절값을 훔친 거였다. 그 여자는 우리에게 돈 간수 똑바로 하라며 훈계까지 하곤, 우리 앞에 그 돈을 던졌다. 그 돈을 주워 들며 또 그렇게 울었다. 왜 우냐는 이제 남편이 된 선배의 물음에, 고마워서라는 웃지 못 할 답을 했다. 돌려줘서 고마웠다 그저. 


  나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봄날의 곰처럼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고 싶었다. 물론 남편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단 봄날의 아기 곰이 아니라, 막 겨울잠에서 깨어 나 배고픔에 흉포해진 시베리아 회색 곰처럼 좋아한다. 

이전 03화 4. 20대, 정말 가장 예쁜 시절이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