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냉이를 씹으며
강냉이를 씹으며
나의 10대가 비자발적이며 허영에 물든 고전문학의 시기였다면, 나의 20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대였다. 영어로 먼저 쓴 후 다시 번역하며 자신의 문장을 갈고 닦았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분위기도 배경도 그 책 속에 깔린 음악과 맥주도 좋았다. 남자 주인공이 항상 뚝딱 하고 금세 만들어 내는 요리도, 특이하고 독특한 소재들도 좋았다. 왜색이 없어서 좋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남자 슈트 같은 문장도 좋았다.
20대의 하루키는 ‘좋아, 좋아!’투성이였다.
그 당시 하루키의 책은 모두 다 사 모았는데, 결혼을 하고 친정에 책을 정리하러 갔더니, 엄마는 책 대신 강냉이를 한 보따리 주셨다.
“네 꺼다.”
내가 책을 갖고 가지 않는 줄 아시고, 고물장수 아저씨에게 강냉이를 받고 넘기신 거다. 미안해하시며 주신 강냉이 한 보따리, 그렇게 20대의 내 책들은 30대를 맞이하는 내게 강냉이로 남았다.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는 건 20대를 읽는 것.
맥주와 껍질 깐 땅콩들의 수북함,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방에서 이젠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투르게네프를 읽다가 맥주 한 잔을 더 따르며 윌리엄 포크너를 안주 삼는 밤.(주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의 밤은 이런 모양새다.)
그의 책은 어느 무더운 여름 날, 매번 지기만 하는 야구팀의 응원석에 앉아, 그렇게 한 낮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셔 보고 싶게 만든다. 막연히 불안하고 무서웠던 20대, 그 시절 하루키 소설의 청춘들을 친구삼아 세우던 밤들.
내 20대를 위로해 주고, 내 청춘을 쓰다듬어 주던 그의 책들, 이젠 그리움의 책들이다. 무심코 꺼낸 책에서 발견한, 예쁘게 말려진 은행잎을 보는 반가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