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랑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처럼 설레는 게 있을까.
나스메 소세키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썼다.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좀 더 격렬하다. “죽어도 좋아”라니.
언젠가 아이들 사이에선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해”가 유행한 적도 있다. 알렝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 하는가>의 구절임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일 포스티노의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계속 아프고 싶어요.”
황지우의 『늙어가는 아내에게』중에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나는 너를 봄날의 곰만큼 좋아 한다”는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다른 말로 치환해도 설레는 건 마찬가지다. 20대의 나는 봄날의 곰만큼 좋아한다는 말이 설레서, 다이어리에 써놓곤 했다. 봄날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잠이 덜 깬 듯한 털 복숭이 아기 곰을 끌어안고 뒹굴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순간의 행복만큼 사랑한다니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이 봄날의 곰만큼 보송보송하고, 마시멜로처럼 달콤했다면, 치료되고 싶지 않을 만큼 죽어도 좋을 만큼이었다면, 중년의 사랑은 이제
“달이 아름답네요”로 시작해서
“임자, 우리 괜찮았지?”의 단계로 걸어가는 사랑이 아닐까.
햇살 좋던 그 날, 남편의 새치를 골라서 뽑는다는 게 그만 검은 머리카락을 뽑고 말았다. 웃음이 났다. 새치가 난 남편과 노안이 온 아내가 평온한 주말 오전, 햇살 나리는 곳에서 다정히 앉아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큰 것 바라지 않으니 남편과 이렇게 조용히 늙어가고 싶다. (주말마다 남편이 사는 로또가 되면 더 금상첨화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