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방 찾기의 여정
어릴 적부터, 한참 커서까지도 나에게는 방이 없었다. 큰 방에 끼여 자면서 언젠가 내 방이 생겼으면 하고, 방이 생긴다면 어떻게 꾸밀까 상상했다.
가끔은 소공녀나 소공자처럼 부자 아빠가 나타나 “사실, 내가 네 진짜 부모다.”란 상상을 하곤 했다. 정말 부모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 나는 누군가가 나타나 마법의 지팡이를 휘둘러 호박이 마차로, 내 삶이 공주로 바뀌길 바랐다.
조금 더 커서는 슬펐다. 내가 잠든 줄 알고, 소근 소근 엄마아빠의 이야기들이 나를 울렸고, 무섭게 했다. 김장 걱정과 등록금, 그리고 어린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우리 집의 힘듦과 어려운 이야기들.
조금 더 커선 거실 모퉁이에 내 책상이 생겼다. 책상에 앉아 일기도 쓰고, 내 맘대로 글도 쓰고 싶었지만, 매번 화장실이며 주방에 가야하는 언니들과 오빠가 머리를 쥐어박거나 내 일기와 글들을 맘대로 읽곤 면박을 주곤 했다. 그 때 난 너무나 네 면의 벽이 필요했다.
우리 집엔 다락방이 있다. 온갖 것들이 가득 찬 다락방을, 막내언니와 돈을 모아 벽지를 사고 그럴 듯하게 꾸미려 했지만, 그 곳은 낭만적인 외국 소설책의 다락방과는 달랐다. 바퀴벌레가 툭 하고 떨어지던 그 날 밤 이후로, 언니와 나는 짐을 챙겨 다시 내려왔다.
언니들이 모두 시집을 가고 나서야 온전한 내 방이 생겼지만, 그 것도 잠시 언니들은 산후조리를 한다면 조카들까지 세트로 찾아왔고, 난 다시 유랑민 같은 생활을 했다.
내가 바란 것은 네 개의 벽과 자물쇠가 달린 책상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커서도 결혼해서도 내 방은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삶이란 내 방 하나 찾기의 여정이 아닐까. 정말 물리적인 내 방, 그것만은 아니다. 내 마음 속 온전하게 만들어, 나를 나로 만드는 방 하나.
그 속엔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내가 잃은 것들과, 내게 잊힌 것들, 그리고 소중하고 부끄러운 것들이 있다. 내 마음의 방, 그 속 네 벽을 조금씩 허물며 혹은 자리를 내어주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