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내 글이 국정원에 신고되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사내 아침 회의시간에 내 다이어리에 적힌 한 문장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란다. "김정은 김정일뿐이다.." 누가 나 몰래 내 다이어리에 장난을 친 것일까?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완벽하게 내 글씨체로 쓰인 문장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나는 내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공황증세가 심해질 때면 이러다가 정말 미쳐버리는 게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 두려운 마음은 다시 불안을 야기해 증세를 증폭시킨다. 그렇게 두려웠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도 기억 못 하는 내가 우리나라의 주적, 북한 독재자 父子를 옹호하는 문장을 쓴 것이다.
불안장애 증상이 심할 때는 작은 현상에서도 재앙적 사고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이번에도 그 이해할 수 없는 한 문장을 보며, "내가 이렇게 미쳐버리면 부모님은 많이 슬퍼하시겠지." "회사도 오래 못 다닐 거야." "요즘 약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희망이 있는 걸까?" 별생각을 다하며 불안한 아침 회의시간을 보냈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다이어리에 적힌 문제의 문장을 다시 유심히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북한 독재자 부자 성씨 옆에 "-"의 흔적이 보였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며칠 전 불안증세가 심해져 스스로를 다독거리고자 내 다이어리에 적었던 문장이었다. 급하게 휘갈기듯 쓰다 보니 "감"자가 "김"자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 놓고는 그 문장을 잘못 읽고 엉뚱한 걱정을 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도 못 할 이 일이 스스로 부끄럽고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불안증세가 몰려올 때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라는 문장을 자주 적었다. 이 문장을 쓰는 건 악몽 중에 "이건 꿈이야"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꿈이 꿈인 줄 알게 되면 곧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불안한 마음과 감정이 단지 스쳐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불안의 굴레에서 탈출하기 위한 첫 시도가 된다.
대 강당에 설치된 마이크와 스피커에서 "삐~" 하는 귀를 찌르는 듯한 굉음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는 마이크에서 증폭된 소리가 스피커로 출력되고, 그렇게 출력된 스피커의 증폭된 소리가 다시 마이크로 들어가면서 증폭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가 우리가 듣는 "소음"인 것이다. 불안은 부정적인 생각을 증폭시키고, 증폭된 부정적 생각은 불안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 불안은 다시 부정적인 생각을 증폭기 키기 시작한다. 이러한 불안 증폭의 악순환이 시작되면 어느새 굉음과 같은 공황발작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앞의 글에서 내 삶은 불안할 때 수학문제가 된다고 했다. 이 불안의 악순환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수학 문제에는 "상수"와 "변수"가 존재하듯, 인생의 문제 풀이에도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것"과 "통제 가능한 것"이 존재한다.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초기 불안 증폭의 씨앗이 되는 감정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을까? 나는 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이 느끼는 감정도 자연의 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쾌한 날씨에 예쁜 꽃밭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통제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심하게 비난받았을 때의 불쾌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을까? 그렇게 일어나는 감정, 그 자체는 해바라기 꽃이 태양의 동선을 쫒는 것과 같은 외부자극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즉 나는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감정에 대한 해석과 반응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불안 감정에 집중하고 연쇄적인 부정적 사고를 허락하는 건 "소음"을 "마이크"에 입력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자극에 대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 불안이라는 숨 막히는 "소음"을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 두려움의 대상으로 받아들일지, 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질 허상으로 받아들일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변수인 것이다.
부처는 '화살경'에서 인간의 고통을 두 개의 화살로 비유했다고 한다. 첫 번째 화살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화살로 질병, 사고, 늙음 등을 의미한다. 이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는 화살로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인간은 첫 번째 화살을 맞고 이어서 두 번째 화살을 맞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정신적 고통인 것이다. 실체가 없는 이 두 번째 화살은 인간이 피할 수 있는 고통이다. 운명이 선택한 첫 번째 화살을 맞고 연달아 내 정신이 만든 두 번째 화살이 날아올 때 적어보는 것이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라고. 매섭게 날아오는 불안의 화살이 꽃으로 변해 내 앞에 힘없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