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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순간 마음이 풀린다” 꼭 한 번은 걸어야 할 길

by 트립젠드

산과 바다 품은 계단식 논
척박한 땅 위에 핀 풍경의 예술
남해에서 만나는 계절의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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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다랭이마을)


남해의 푸른 바다가 끝나는 지점, 그 언덕진 비탈에 계단처럼 촘촘히 이어진 논이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산과 바다, 논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층층이 쌓인 땅과 그 위에 세워진 삶이 보인다.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가천리에 자리한 ‘가천 다랭이마을’은 단순한 농촌이 아니다.


바다와 산, 계단식 논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낸 이 마을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장면이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인상 깊게 기억될 만큼, 이곳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예술의 공간이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최근 들어 힐링 여행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쁜 도시를 벗어나 걷고 싶은 사람들, 자연 속에서 쉼을 찾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로, 산책하듯 머물다 가기에 적당한 속도와 고요함을 품고 있다.


척박한 비탈에 새긴 삶의 흔적, 다랭이논

이 마을을 대표하는 풍경은 누가 뭐라 해도 ‘다랭이논(계단식 논)’이다. 비탈진 산을 깎고 석축을 쌓아 흙을 올려 만든 이 논은, 경사가 급한 지형에서도 농사를 짓기 위한 선조들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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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해군 (다랭이마을)


특히 이 논들은 논배미(작고 층층이 나뉜 논)로 구성돼 있어 층마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총 108개 층으로 이어진 논배미들은 바다에서 시작해 설흘산과 응봉산 자락까지 펼쳐지며 장대한 경관을 이룬다.


이 풍경을 따라 걷는 길도 잘 조성돼 있다. 논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와 전망대를 따라 걷다 보면, 바람 따라 흔들리는 논과 그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끈다. 암수바위, 밥무덤, 몽돌해변 등 다랭이마을 곳곳의 명소들도 함께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마을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봄에는 유채꽃이 논배미를 물들이고, 모내기철에는 물을 머금은 논이 하늘을 담아낸다. 여름엔 연둣빛 모가 일렁이며, 가을이면 황금빛 벼가 마을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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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해군 (다랭이마을)


이 계절의 흐름 속에서 논은 단지 경작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풍경으로 존재한다. 논배미마다 삶의 시간이 내려앉고, 바람결 따라 변화하는 색은 그 자체로 자연이 빚은 수채화다.


마을은 ‘다랭이지겟길’과 ‘앵강다숲길’ 같은 트레킹 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가벼운 운동화만 있으면 누구나 천천히 걸으며 이 풍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문화를 품은 자연, 쉼이 되는 여행지

가천 다랭이마을은 단순한 경관지가 아니다. 2005년 국가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이곳은 현재까지도 전통 농경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마을이다. 소와 쟁기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곳의 일상은 관광객에게 생생한 농촌 문화를 체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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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콘텐츠랩 (다랭이마을)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는 ‘어쿠스틱 달빛걷기’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인공 조명 하나 없이 어두운 마을길을 랜턴 불빛에 의지해 걷는 밤마실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와 감성을 선물하는 시간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안내소나 ‘두레방’을 방문하면 해맞이 축제, 밤무덤 동신제 같은 지역 고유 행사의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여행에 깊이를 더해준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단순히 예쁜 풍경을 넘어, 삶과 자연이 맞닿은 공간이다.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천천히 머물고 기억하는 여행을 원한다면 이곳이 정답이 될 수 있다. 발걸음을 늦출수록 오래 기억에 남는, 그런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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