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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산책한 길이라니” 걷기만 해도 힐링되는 숲

by 트립젠드

왕의 치유를 따라 걷는 길
숲과 계곡이 품은 명상 같은 산책
세속을 내려놓고 천년 숲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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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은군 (세조길)


“세조가 병을 고치고 마음을 씻은 길.”


무더위 속에도 그늘과 바람이 가득한 길이 있다. 나무 아래를 걷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느려지고 숨이 고요해진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자락에 펼쳐진 ‘세조길’은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병을 치유하고자 직접 걸었다는 역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법주사 일주문에서 시작해 세심정에 이르기까지, 왕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니다.


천 년 숲의 숨결과 맑은 물소리, 그리고 발 아래의 흙이 건네는 위로가 있는 시간이다. 도심의 무게를 내려놓고 나를 마주하는 산책. 그래서 이 길은 ‘왕의 요양길’이자,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2016년 9월 정식 개통된 이 길은 속리산의 깊은 품속을 누구에게나 열어주며, 오르막 없는 완만한 길이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세조의 전설이 깃든 숲길

세조길은 총 3.2km 구간으로, 법주사 주차장에서 시작해 조각공원을 지나 자연관찰로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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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은군 (세조길)


법주사를 지나 태평쉼터 방면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목욕소’라 불리는 곳이 나온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던 중 월광태자를 만나 피부병을 깨끗이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길의 끝에는 세심정이 있다. ‘세심(洗心)’이란 말 그대로, 마음을 씻고 번뇌를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정자에 앉아 산과 바람을 바라보면 절로 숨이 깊어진다. 현재는 이 구간을 넘어 복천암까지 연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궁극적인 종착점은 세조가 머물렀던 복천암이다.


길의 초입부터 복천암까지 왕복 8km 정도이며, 천천히 걸으면 2시간 반에서 3시간가량 소요된다. 하지만 길 전체에 오르막이 없어 체력에 부담이 적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무장애 힐링길

세조길의 또 다른 특별함은 ‘무장애 탐방로’다. 약 1.2km에 이르는 구간은 휠체어나 유모차도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어르신이나 장애인, 아이를 동반한 가족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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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은군 (세조길)


숲과 저수지, 계곡이 이어지는 이 구간은 특히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풍부해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계절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들꽃과 나무들, 그리고 계곡물의 청량한 소리는 걷는 이의 감각을 하나씩 깨운다. 잠깐의 고요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아무 계획 없이도 이 길은 충분하다.


세조길은 단지 자연만 품고 있는 게 아니다. 길 중간을 지나게 되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국보와 보물이 다수 존재한다.


쌍사자 석등, 5층 목조탑인 팔상전, 석련지 등은 세조길과 더불어 함께 들를 수 있는 고요한 문화기행지다.


속리산은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지만, 속세는 산을 떠난다’는 고운 최치원의 시가 전해지는 명산이자, 백두대간의 줄기 한남금북정맥이 흐르는 분수령이다. 이런 산세 속에 유순하게 펼쳐진 길이 바로 세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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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세조길, 저작권자명 여행노트 정기영)


법주사 소형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출발하면, 길의 입구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다.


세속을 내려놓고 숲속을 걷고 싶은 이들에게, 세조길은 좋은 답이 되어준다. 걷는 동안 무거웠던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말없이 함께 걷는 숲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왕이 몸을 치유했고, 수도자들이 마음을 다스렸던 길. 지금은 우리 모두가 쉬어갈 수 있는 ‘천년의 숲길’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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