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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빚어낸 시간의 조각, 부안 채석강을 걷다

by 트립젠드

수만 권 책장 같은 절경
파도가 새긴 7천만 년 기록
신비로운 해식동굴의 붉은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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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부안군 채석강)


바다 앞 절벽이 책장을 닮았다는 말이 괜한 수사가 아니다. 전북 부안 변산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채석강은 파도가 깎아낸 암석층이 수천 권의 책처럼 겹겹이 쌓인 모습으로 여행객을 압도한다.


파도가 새겨온 흔적은 단순한 경관을 넘어, 7천만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지질학의 교과서와도 같다.


그렇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지구의 오랜 역사를 직접 펼쳐보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한다.


채석강의 퇴적암은 중생대 백악기 시절부터 형성됐다. 당시 이곳은 깊은 호수였으며, 화산 분출물이 바닥에 쌓이면서 암석이 켜켜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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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부안군 채석강)


격포리층으로 불리는 절벽에는 역암, 사암, 이암, 셰일, 화산재가 차례로 겹쳐져 있다. 단층과 습곡, 관입구조 같은 지질 현상도 쉽게 눈에 띄어 학생들의 현장 학습지로도 자주 활용된다.


해식애와 파식대, 해식동굴까지 두루 발달해 있어 파도의 끊임없는 조각이 만들어낸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절벽 아래에는 돌개구멍과 조수 웅덩이가 발달해 바닷물이 빠지면 신비로운 바다 생물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유명 명소와 닮았다는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이곳의 매력은 한국적 풍경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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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부안군 채석강)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닭이봉 일대를 따라 펼쳐진 절벽은 마치 늙은 코끼리 발바닥 같은 기묘한 형상을 보여준다.


수만 권의 책을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모습은 오랜 세월 파도가 빚은 작품이다. 선캄브리아대 화강암과 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루고, 그 위를 덮은 백악기 퇴적암이 바닷물의 침식을 받아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이 독특한 지질은 과거 화산 활동을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채석강을 제대로 보려면 시간 선택이 중요하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바위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어 퇴적암층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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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부안군 채석강)


격포항에서 격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진 2km 길을 걸으면 해식동굴과 암석층이 이어지는 절경이 펼쳐진다.


특히 간조 시 동굴 속에서 바라보는 붉은 노을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다 담기지 않을 만큼 황홀하다.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쓰였던 만큼, 여행객들에게는 또 다른 설렘을 주는 장소다.


채석강은 전북 부안군 변산면 변산해변로 1에 위치하며, 연중무휴로 개방된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도 마련돼 있다. 바로 앞에서 절경을 감상할 수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여름에는 해수욕과 수상레저, 사계절 내내 사진 촬영 명소로 사랑받는 채석강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지질과 풍경, 그리고 시간의 신비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한국 대표 해안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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