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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마저 투명해지는 곳, 인제 자작나무숲의 겨울 풍경

by 트립젠드

찬 공기 속 깊어지는 겨울 숲길
빛을 머금은 하얀 자작나무
걸을수록 맑아지는 인제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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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강원 인제 자작나무숲 겨울 눈 내린 풍경)


겨울의 찬 기운이 서서히 번지면 사람들은 문득 고요한 숲을 떠올린다.


도심의 소란을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하얀 숨결이 번지는 공간을 찾고 싶을 때, 인제의 산자락에서 들려오는 낮은 속삭임이 마음을 붙든다.

하늘을 가르는 희디흰 나무줄기가 바람에 흔들릴 때면 어딘가로 이끌리는 듯한 기묘한 편안함이 깃든다. 그곳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는 숲길에 발을 디딘 뒤에야 천천히 드러난다.


하얀 숲이 품은 겨울 풍경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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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강원 인제 자작나무숲 겨울 눈 내린 풍경)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에 자리한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은 사계절 중에서도 겨울에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이다.


숲길의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은 걷는 속도에 따라 약 한 시간 남짓 걸리며, 길을 따라 들어서면 20년 넘게 자라온 자작나무가 촘촘하게 이어진다.


줄기는 마치 눈이 내려앉은 듯 새하얗게 빛나고, 높게 치솟은 모습이 자연이 만든 기둥처럼 서 있다.


겨울철에는 실제 적설과 어우러져 더 강렬한 백색 풍경을 보여주어 사진을 즐기는 이들에게 매혹적인 공간이 된다.


숲 안에는 다양한 난이도의 탐방로가 구성돼 있어 체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약 1km가량 이어지는 짧은 자작나무 코스가 특히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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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강원 인제 자작나무숲)


이 구간은 빽빽한 자작나무 순군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어 겨울 방문객이 꾸준히 몰린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유아 숲 체험원에서 숲속교실이나 인디언집 조형물 등 자연을 주제로 한 체험 활동도 경험할 수 있다.


겨울철 탐방은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지대가 높은 만큼 적설과 결빙이 잦아 아이젠이나 등산스틱 같은 기본 장비가 필수다.


이 계절에는 일부 코스가 통제되기도 하므로 탐방 전 안내소를 통해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입산 가능 시간 역시 계절에 따라 다르며, 겨울에는 오후 이른 시간에 제한되므로 여유 있게 도착해야 한다.


숲이 들려주는 자연의 역사와 회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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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강원 인제 자작나무숲)


현재의 자작나무 숲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소나무 숲이었지만 병충해로 큰 피해를 입어 벌채가 진행되었고, 이후 대규모로 자작나무를 심으면서 지금의 풍경이 자리 잡았다.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흐르며 나무들은 높게 성장했고, 30년 이상 자라온 자작나무가 넓은 면적을 이루면서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완성되었다.


숲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상처를 입기도 했다. 겨울 폭설과 강추위가 이어졌던 시기에는 일부 나무가 쓰러지거나 휘어지며 자연의 거센 힘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현장을 관리하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가 숲의 모습을 크게 뒤흔들었다”고 전하며, 자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겸허함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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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강원 인제 자작나무숲)


이러한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이는 자연이 스스로 회복해 가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는 의미 있는 장면이 된다.


숲에는 달맞이숲과 별바라기숲 등 두 개의 권역이 나뉘어 있으며, 각각의 공간에는 쓰러진 나무를 활용한 조형물과 전망 공간이 마련돼 있다.


첨성대를 연상시키는 관측 구조물과 달빛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숲을 걷는 동안 소소한 즐거움을 더한다.


조형물 사이사이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온기를 더하는 풍경이다.


맑은 공기를 품은 겨울 걷기, 12월의 최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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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강원 인제 자작나무숲 겨울 눈 내린 풍경)


자작나무는 오래전부터 껍질이 불을 잘 머금어 촛불 대신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은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맑은 공기와 상쾌한 향이 폐 깊숙이 스며드는 듯해 ‘걸어서 마시는 산소’라는 표현이 빈말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고르게 자라 만든 그늘은 한겨울에도 은은하게 빛을 머금고, 걷는 이의 발걸음에 맞춰 조용히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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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강원 인제 자작나무숲)


이곳은 주차장에서부터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어 출발 전 장비 점검이 필요하다. 겨울 주말에는 방문객이 많은 편이므로 가능한 서둘러 오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숲의 길목마다 설치된 안내 시설과 휴식 공간은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음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진입로와 출입구 주변은 턱이 없어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도록 조성되어 있어 이용 편의성이 높다.


12월, 맑은 겨울 공기 속에서 백색의 숲이 만드는 고요한 풍경은 어떤 여행지보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일상의 무게도 어느새 가벼워진다. 한 해의 끝자락에 고요한 쉼을 찾는 이들에게 인제의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은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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