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집 부엌 싱크대 배관을 고치러 온 수리공이
연장을 챙기며 툭 말했다.
“사실 제 진짜 직업은 작가입니다.”
기름때 묻은 손으로
자신이 온라인에 연재 중인 소설 제목까지 말해주는 그의 당당함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곳 글렌데일에서는 이런 일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
드림웍스 같은 대형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고
수시로 영화 촬영 때문에 길이 막히는 일이 일상인 이 도시에서는
옆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웃도
산책길에서 마주친 사람도
자신을 Writer라고 소개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처음에는
‘어디에 등단했을까?’
라는 한국식 궁금증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이렇게 생각한다.
“아,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구나.”
한국에서 작가는 오랫동안
어떤 성취의 결과처럼 여겨져 왔다.
신춘문예나 권위 있는 문학지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이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작가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 **‘되는 것(Become)’**에 가까웠다.
반면 미국에서 Writer는
지금 하고 있는 행위에 가깝다.
출판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 글을 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Writer다.
작가는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있는 것(Do)**이다.
한국적 정서를 가진 나에게
작가라는 이름은 여전히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다 최근
브런치 스토리에서 작가 승인 메시지를 받았다.
“작가님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그 한 줄의 문장을 읽는 순간
문득 오래전 우리 아이가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My mom is a writer. She writes poems.”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웃었다.
어느 날 내가 아이에게 말했다.
“언젠가 책을 한 권 써 보고 싶어"
그러자 아이는 아주 단순하게 말했다.
“Mom, publish a book. Anyone can publish a book.”
그때는 웃으며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나에게 작은 용기를 준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은 writer이고
그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면
그 사람은 author가 된다.
그래서 지금 나는
writer로서 문장을 쓰며
언젠가 나의 책을 세상에 내놓을
author가 되는 길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할 것 같다.
“I’m a writer.”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