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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작 Jul 11. 2024

03화. 반지하 단칸방의 아픈 기억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은 딸이었다.

두 아이들을 키우며 나의 어린 시절 생각이 종종 난다.


그리고 나의 아픔이나 괴로움의 근원인 엄마.

엄마와 나는 딱 30살 차이가 난다. 나에겐 두 살 많은 언니가 한 명 있으니 20대 엄만 20대 후반 결혼을 했고 내가 31살 가을에 결혼을 했으니 대략 나보다 서너 살 어린 나이에 이미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워오며 한 번씩 나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로 살았을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생각해 보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도 해보지만 이해를 한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지금부터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자존감과 자격지심의 결정체인 내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가끔 남편한테 두루뭉술하게 한 번씩 이야기하다 말았던 이야기를 자세하고 솔직하게 써보려 하는데.. 과연 난 솔직해질 수 있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몇 년 전 드라마를 통해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이야기를 들킨 것처럼 창피했다. 누가 나를 겨냥해서 말을 하는 것 같아 심장이 쿵! 내려앉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이다. 열심히 해온 거짓말을 또는 침묵했던 나의 과거를 들킨 것만 같았다.


나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할 정도인 내가 이곳에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 마음먹은 이유는 숨구멍을 찾기 위해서이다. 즉 살기 위해서다.


흠.. 대나무숲이라고 할까? 나의 숨통이라고 할까? 나이 42살에 처음으로 나의 어린 시절을 솔직하게 직면해 본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 기억은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7살이 되기 훨씬 전이다.

단칸방 반지하에 살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아빠는 바람을 피웠고 엄마는 어린 언니와 나에게 아빠 욕을 하고 푸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장대비가 퍼붓던 장마철이었을까?

아무튼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었고 날씨는 참으로 더웠던 건 맞다.

반지하 계단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비를 바가지로 혼자 퍼내며 엄마는 화를 내며 나에게 또 아빠 욕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섭고 기분이 안 좋고 엄마가 도망가버릴까 봐 두려웠던 기억은 확실하다.

엄마는 항상 화가 나면 끝내 화살이 언니와 나한테 돌아왔고 그 시절 우리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엄마 콱 죽어버리면 시골 가서 할아버지랑 시골 할머니랑 네 아비랑 살아"라든지


" 네 엄마 죽으면 너희들은 천덕꾸러기야. 알기나 해? 나나 되니 이놈의 집구석에서 입히고 먹이고 하지."


이런 말들을 딸들에게 퍼부어댔고 그러면 나는


" 안돼. 엄마 가지 마. 난 엄마랑만 살 거야. 절대 안 떨어질 거야."


라고 말하며 눈물을 쥐어짜 냈고 반복되는 폭언에 언니는 그냥 조용히 눈물만 흘렸던 것 같다.


엄마는 분명 우리의 불안감을 토대로 자신이 이 집에서 중요한 존재임을 입증하려 했고 어린 나이였음에 더 이렇게 말해야만 엄마의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그런 자극적인 협박에 반발심이 들었고 미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혹시나 정말


'엄마가 우릴 두고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도망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근저에 깔린 채 성장해 왔고 내가 자라온 곳은 항상 엄마말처럼 이 놈의 집구석이었다.


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오은영박사님이 이 모습을 본다면 아마 우리 엄마는 크게 혼나지 않을까?


"어머니, 힘들고 속상한 건 백번 이해 합니다만, 지금 가장 무섭고 두려운 건 어머니 옆에 있는 아이였을 겁니다. 이럴 땐 잠깐이라도 아이를 꼭 끌어안고 [괜찮아,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너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다. 엄마가 있잖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엄만 너를 지킬 거란다.]라고 말씀하시며 아이를 안심시켜 주는 게 우선입니다."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고 티브이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어린아이인 나를 보면 엄청 불쌍해하고 우리 엄마를 엄청 욕했겠지. 비난의 댓글에 엄청 시달렸을 것이다. 아, 어쩌면 아동학대죄로 경찰조사와 각종 기관에서 진행하는 아동학대 프로그램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후훗.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시절에는 오은영박사님도 없었고 아동학대라는 개념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김창옥교수님이 있었고 오은영박사님이 있었다면 우리 엄마아빠는 좀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

나도 지금보다 더 괜찮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같았을 것 같다.

지금 70이 넘은 나이에도 외통수에 고집불통에 아빠와 시댁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는 엄마는 아마 오은영박사님 10 트럭을 갔다 놔도 변하지 않을 사람이니까. 20년째 연락이 끊긴 아빠도 남의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니 아마 똑같았을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온 과거와 역사를 나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나의 부모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나도 결혼생활을 해오면서, 두 아이를 키워오면서 유튜브와 방송에서 나오는 육아프로그램과 치유 토크쇼를 보며 의식적으로 나의 정신을 다잡으려 부단히 도 노력해 왔다. 한 번씩 당시 나보다 어렸던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다.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럴 때는 같은 여자로서, 같은 부인으로서, 엄마로서 이해되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20대 후반 내가 첫 아이를 낳던 나이보다 서너 살 어린 여자가 남편과 시댁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단칸방 지하실에서 살며 항상 여자문제가 끊이지 않고 직업도 없고 부인이 아이를 낳는 그 순간에도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이라는 작자와 살았던 젊은 여자의 삶은 얼마나 처절하고 비참했을까.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이 젊은 여자가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는?

나는 딸이니, 누구보다도 엄마가 살아온 세월을 잘 알고 있는 딸이니 그만큼 엄마를 불쌍히 여기고 잘해드려야 하는 건가?


엄마는  지금도 나에게


"지 엄마 불쌍한 줄 모르고 지랄하는 못된 년. 힘든 환경에서 이만큼 키워줬으면 됐지. 뭐 얼마나 더해? 나쁜 년. 남편 복 없는데 자식복이라고 있겠어!"


라고 한다.


마흔 넘어 이젠 두 딸의 학부모가 된 딸자식한테 년이라니!

엄마와  딸은 아들과는 다르게 가까우니 이럴 수 있다고? 아니다.

 그건 죽고 못 사는 모녀사이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이고. 독립해 가정 이루고 살아가는 딸한테는 예의를 지키셔야지.


나도 참는 딸은 아니기에 엄마 말에 되받아친다.


" 엄마. 엄마 딸 40이 넘어서 가정 이루고 살고 두 아이 엄마야. 말조심해."


" 나쁜 년. 네 딸이 커서 꼭 너같이 돼라. 너도 너 같은 걸 한번 키워봐."


" 엄마도 엄마 같은 엄마 밑에서 다시 한번 살아봐. 평생의 삶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


서로를 송곳 같은 말로 쉴 새 없이 찌르고 할퀴다가 끝나는 승자 없는 무의미한 서로의 감정쓰레기통이 된 후 서로 지쳐 나자빠져야 싸움이 멈춘다.


내가 못된 년이면? 어쩔...


" 난 그 집구석에서 20년 이상을 네 아비한테 당하기만 했어."


엄마의 저편에 깔려있는 피해의식이고 억울함이다.


"그럼 그 사이에서 키워진 언니랑 난 어떨것 같아? 그래서 내가 매일 죽고 싶고 마음이 힘든 거야."


나는 억울한걸? 내가 가정생활을 유지해 나갈수록 잘살고 노력하며 살지 못했던 우리 부모가 밉고 원망스러운걸. 당시 엄마는 좋은 엄마였나? 본인이 불쌍한 엄마였으면 사이에서 자란 자식들은 얼마나 불쌍했겠나.


나 역시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있다면 엄마 아빠 딸로 안 태어났을 거다.

본인들은 선택을 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난 내가 선택한게 아니지 않나?!


엄마와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나면 기진맥진한 채 나도 한 번씩 생각을 해본다.


'나의 두 딸들은 다음생에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를 선택해 줄까? 나라면? 나를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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