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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작 Jul 16. 2024

04화. 갖지 못한 아이템엔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가져보지 못한 풍선과 솜사탕.

맞벌이를 하고 내가 필사적으로 알바도 하니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 ,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웬만하면 사줄 수 있는 정도로는 산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지만 요즘 물가며 교육비가 너무 올라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


물론 생활이 여유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고 아파트에 살고 있지도 않고 항상 쪼들리는 삶이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원하는 것은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정말 딱 그 정도 수준을 유지하며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도 공감한 이야기지만 어른이나 아이나 원하는 것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게 되면 계속 미련이 남게 되는 법.


난 지금도 풍선과 솜사탕에 대한 미련이 있다.


다른 이쁜 쓰레기들도 그렇지만 솜사탕과 풍선은 유독 어른 입장에서 보면 별것도 아닌 게 엄청 비싼 쓸모없는 아이템이다. 풍선은 비싸기만 하고 몇 시간 유지되지도 않고 터져버리면 그만인 아이템이고 솜사탕은 가격도 비싸고 건강과 치아에도 좋지 않다. 백해무익한 이런 걸 돈 주고 사줘야 한다니. 당연히 어른 입장에서는 세상 비싼 쓰레기인셈이다. 게다가 두 가지 다 쓰임에 비해서는 가격도 만만치 않다.


가성비 꽝!

솜사탕 자판기.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눈을 못 뗀다.

요즘엔 솜사탕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만들어주는데 가격이 개당 5천 원 이상이다.

놀이동산에서 파는 인기캐릭터 풍선은 말할 것도 없이 1만 5천 원쯤 하니 두 아이들에게 하나씩만 사줘도 이미 나에게는 큰돈이다.


국민알바 배달알바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는 고물가 시대에 아이 둘을 키우며 산다는 건 정말 삶이 아니라 이젠 정말 생존에 가깝다.


당연히 내가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이 세상 쓸모없는 두 가지 아이템을 사줬던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

흠.. 솜사탕은 한두 번 먹어봤을까?


하지만 단언컨대 헬륨풍선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래서 마흔이 넘은 지금도 난 헬륨풍선과 솜사탕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 아이들과 외출했을 때 솜사탕과 풍선이 보이면 왠지 모를 오기스런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아이들이 사달라고 하기 전 내가 먼저 사준다.


" 우리 풍선하나 살까? 솜사탕도 먹을까? 원래 이런데 오면 풍선 하나씩 들고 다녀야 즐거워~"


라고 말하며 한 번도 나에게 풍선을 사준 적이 없던 엄마에게 시위라도 하듯 보란 듯이 (물론 엄마는 옆에 없다.) 호탕하게 사준다.

이쁜 풍선을 너무나 갖고 싶고 달콤한 솜사탕이 너무 먹고 싶었던 그 어린 나이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유치한 내 모습이다. 생활이 너무 어려웠겠지만 풍선 하나, 솜사탕 하나 사준다고 우리 집이 밥을 굶는 것도 아니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엄마는 비싸기만 하고 금방 터져버리는 것, 맛도 없고 달기만 한 것 이라며 한 번도 안 사줬을까.


" 저런 거 다 쓸데없어. 금방 날아가 버리거나 터지는 걸 뭐 하러 돈을 주고 사니?"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어른한테 세상 쓸모없는 이 이쁘고 비싼 쓰레기들은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정서로 연결되는 감성의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만한  나이 때는 그 감성과 정서가 엄청 중요하다. 즉 굶는 정도가 아니라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인 것이다. 지식이 아닌 정서와 감성을 갖고 자라야만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한 달에 약 백만 원을 받으며 가까운 곳에 살며 아침저녁으로 두 외손주를 케어해주고 있는 엄마는 다행히도 손녀딸들에게는 그러는 편이다. 키링도 여러 번 사주고 스티커도 많이 사주고 때때로 비싸지 않은 장난감도 사준다. 내가 그만 사주라고 잔소리와 타박을 할 때면 이것도 다 한때라고 그냥 두라고 한다.


지금 그 마음을 본인의 딸들 키울 때도 갖았더라면 난 좀 더 단단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도 자주 있다. 자식이든 손녀딸이든 90년대든 2000년대든 아이들은 언제나 같다. 당시 본인이 처해있는 상황만 다를 뿐.


" 왜 이래? 본인들 딸들한테는 쓸모없다고 생전 한번 사준적도 없으면서."


그러면 엄마는 나의 얼굴을 외면하며 말한다.


" 시끄러워. 얘는~그 시절이랑 같니? 아휴 너도 참. 언제까지 그럴래? 기억도 안나는 옛날 일 갖고. 아이 짜증 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네 집에나 가!"


나도 더 이상 한마디 지는 딸은 아니다.


"내가 없는 얘기해? 왜? 본인 돈으로 사주는 게 아까웠고 이젠 자식이 주는 돈으로 사주려니 인심이 생겨? 우리한테 실컷 먹여주길 했어? 그렇다고 가르치길 했어? 꽁꽁 싸매고 있다가 다 날리기나 했으면서."


나중에 이야기가 나오지만 엄만 돈을 아낀 정도가 아니라 그냥 거의 쓰질 않았고 항상 입버릇 처럼 해오던 말이


"지금은 좀 아껴도 돼. 나중에 너희들 20살에 대학 갈 때 쓸 거야."


였다.


...............


그러나 그 돈은 아빠가 가출하며 다 가지고 도망쳤고 엄마와 언니, 나는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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