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발행한다. 4년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주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항상 깨닫게 되는 점이 있다.
사람마다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대게 사람들은 단편적인 대화를 근거로 그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평가한다. 그리고 평가는 이내 곧 나와잘 맞는 사람과 잘 맞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는 기준이된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 분류된 사람들은 나에게서 다른 대접을 받게된다.
잘 맞는사람과는 공유하는 일상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관계를 깊이하게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늘 가면을 쓰고서 그사람을 대하게 된다.
세상에는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각자 다른경험을 해왔으며 또한 같은 경험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없는 개개인만의 분류의 기준이 생기게 되는것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때에는 이러한 분류의 기준은 불변하고 그러한 기준에 의해 분류된사람들이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일탈행위, 나아가 믿음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러한 일탈자들에 의해 상처를 받게되고 일탈자를 없애기위해 점점 기준을 나누는 선들이 빽빽해져 갔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늘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때로는 '역'의 경우도 존재한다.
내가 나눈 기준의 반댓편에 서있던 사람이 어느새 나의 기준선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대게 호의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둘로 갈린다.
그 첫번째는 본인의 장점을 잘 알고있는 경우이다.
이들은 대게 자신들의 장점을 크게 보기때문에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변하는데에는 자신의 장점의 영향이 크다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반대의 기준선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객관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무언가 목적성을 찾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번째 사람들은 일단 경계적이다.
사람이 갑자기 호의적으로 변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목적성의 파악을위해 여러 방법을 취한다. 누군가는 가면을 쓰게되고 또 누군가는 그저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며 또다른 누군가는 목적성의 파악을 굳이 하지 않으며 그냥 무시하는 경우도 더러 존재한다.
사람들이 대게 두가지유형으로 나뉜다는 것에 한가지를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분류하면 나머지 한가지는 자연스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데,
나는 세상에 사람들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과 경계심이 많은 사람들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의 장점을 잘모르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저 그들은 경계심이 많을 뿐이다.
기준에 따라 이렇게 나눠지는 사람들과 그런 기준을 만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때면 매번 한없이 생각하게 된다.애초에 인간이 인간에 대해 답을 내리려한다는 사실 자체가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람이기에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최근들어 그러한 생각에 하나의 공통된 공식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키는 바로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하여 생각하고 사람간의 관계에 대하여 고민하는데에 시간을 주로 쓰는데,
사람마다 시기에 따라 우선에 두는 가치가 점점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 가치에는 물론 여러 종류가 존재하지만, 크게 몇개의 가치가 서로 반복되고 회전하며 인간의 삶을 결정하게 된다.
그 몇개의 가치로는 1.보여지는 것들 2.주변에 있는 사람들 3.본인의 능력을 증명하는 자료들(학벌,직업 등) 4.금전 이렇게 4가지가 있다.
한때는 나도 외모에 미치도록 집착했고, 또 한때 나는 주변에 친구들이나 나를 예뻐해주고,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또 한때는 학벌이나 직업에 따라 사람이 나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고, 또 한때는 돈이 많아야 행복할수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돈을 벌기위한 여러 수단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가치들이 더이상 나에게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살아가며 깨달은 점은 이러한 가치들을 중심으로 시기마다 선호하는 우선순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사람들은 이러한 가치들이 너무 소중한 나머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인간'은 모두가 알다시피 사회적동물이다. 동물의 대표적인 본능은 물론 생존이지만 홀로 생존한 동물들은 홀로 살아남기 위해서 먹이를 찾아헤메고, 사냥을 일삼고 결국 도태되고 외로운 최후를 맞이한다.
인간이 동물과 너무나 닮아있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홀로 살아간다면 결국 도태될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가치는 물론 다르지만, 과연 자신의 우선순위가 모두 채워지게 되는 그 순간에 아무도 없다면 행복할수있을까?
그렇다면 가치의 충족이 모두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노력으로 사람을 얻을수 있을까?
끊임없이 되묻지만 내가 내린 답은 '아니다'였다.
물론 여러가치들 각각 얻기 쉬운것은 아니다. 많은 노력을 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가 인정받는 것이다.
또 이러한 가치들에 도달하기위한 요구사항은 시간이 많이 흘러 나이가 든 후에 채우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가치라도, 사람을 얻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누군가와 행복을 꾀한다는 점은 어쩌면 굉장히 이상적이다.
단순히 연인간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라던지, 친구들끼리의 우정, 적과 나눈 동질감도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관계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어려운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습관'과 '고집'이라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인간이 생존하기위한 하나의 방법인데 '습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내가 삶을 지속해나가기 위한 스킬과 같은 것이고, '고집'은 나의 실전경험이 만들어낸 누적데이터이다.
누적된 데이터는 내가 몸소 배우고 느낀것이기 때문에 나이가 든다고 해서 쉽게 바꿀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데이터들이 만들어낸 주변과의 관계는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는 것이고, 이에 인간은 점점 외로움을 겪게되는 것이다.
늘 언제나 고민하게 되는 이 끊임없는 질문들에 대하여 우리는 과연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옳은것인가.
누구나대답은 같다.
이러한 문제는 본인의 선택에 의해 답이 정해지고 그에 따른 책임역시 본인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게 대답을 바라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말했듯이 주위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사람에게 '나'라는 인간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위한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그 작은 '단서'를 아무에게나 준다면 물론 그 '아무'는 당신이 제공한 단서를 가지고 당신에게 협상을 하려들지도 모른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를 너무 탓하려 들지말자.
사람을 가르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귀한 단서를 제공한 나의 책임또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기억하자, 누군가는 내가 제공한 단서를 나를 옥죄는 약점으로 이용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제공한 나에대한 단서로 나조차 모르고 있던 나를 풀어낼것이다.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시간에 따라 사람은 매번 변하고 나에대한 완벽한 해답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라는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며 사는것이 인생인 것 같다.
그러니 오늘의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지고, 설령 그것이 약점이 될지라도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남들에게 조금은 나라는 사람을 알려주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나에대해 나보다 더 많이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2021.9.23 나무껍질 작성
이 글을 이제야 발행하다니...
뭐든지 생각에 대해 기록하는건 중요한 것 같다.
4년전의 나는 저런 생각을 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