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하나 지낼 수 있는 자그마한 집하나 마련하였다. 8평 원룸에 담아내지 못한 내 취향을 하나씩 담아냈다. 침실에는 묵직한 원목의 프레임의 퀸사이즈의 침대가 들어갔다. 창문을 스쳐 들어오는 햇살이 싫지는 않았다. 암막커튼을 추천하는 사장님의 말을 뒤로하며 우드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제법 편한 잠옷도 몇 벌 옷걸이에 걸어 놓았다. 동그란 러그도 침대 옆에 살포시 자리 잡았다.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러그의 털들은 지난겨울에는 제법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제법 넓게 빠진 침실이었으나 붙박이장이라던가 침대 이외의 가구를 두지는 않았다.
원룸 살 적 분리되지 않는 침실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었다. 눈을 뜨면 옷더미가 보였고 고개를 돌리면 냉장고와 싱크대가 보였다. 게으른 천성으로 인해 쌓인 설거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옆에 식탁에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쌓여만 갔다. 가끔 날을 잡아 몰아치듯 치울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까지도 눈에 비치는 내 생활의 흔적과 모습들은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침실에는 침대만, 오직 잠만 잘 수 있게 하는 것이 원룸 살 때 바라던 것 중의 하나였다.
침실과 가까운 방은 옷방이 되었다. 그렇게도 정리가 안되던 옷들이었는데, 방하나를 정해놓고 옷을 하나둘씩 걸기 시작하니 한눈에 보기 좋게 나열되었다. 버리지 못하고 이고 지고 왔던 것들까지도 한 번에 처분이 되었다. 원룸 살 때 선물 받았던 거울도 보기 좋게 제 자리를 잡았다. 그전에는 이리저리 항상 치이고 매번 옮겨졌던 거울이었다.
매번 설거지가 쌓여 몸살을 앓았던 예전의 싱크대와는 달리, 지금의 싱크대는 든든하게 자리 잡은 식기세척기 덕분에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새언니와 친구가 나눠 준 그릇을 쓰며, 접시라는 게 음식을 담는
도구로써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왠지 예쁜 접시에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걸 사고 싶은데 그릇을 사본 적이 없어 무얼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화려하지는 않은데 부담스럽지 않게 곡선과 무늬가 있는 접시가 눈에 들어온다. 집 근처 백화점에 마침 그 접시가 있는 걸 알게 되어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해본다. 차로 가면 주차하는 데까지만 족히 2시간가량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백화점에 다녀왔다. 날씨가 좋고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백화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접시 한두 개만 사서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8층으로 향하였다.
매장에 들어서니 욕심이 생겨 이것저것 들어보다가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4개를 골랐다. 깨지지 않게 이중삼중으로 꼼꼼하게 포장해주시는 친절한 직원 덕분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집을 장만하고 제일 처음 샀던 가구가 침대였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한 물량 확보의 어려움으로 제일 먼저 구매했지만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연이 있다. 기다리는 동안 맨바닥에 두껍게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다. 그래도 좋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수선한 마음이 침실 문을 닫으면 차분해진다. 나를 둘러싸고 나를 향한 일상들은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는다.
다시 침실 문을 열고 일상에 향해 나갈 때 고요했던 내 마음이 이리저리 부유해진다.
그런 나에게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 그대로 하면 된다고 다독이고 싶었다.
정리된 옷방과 깔끔한 싱크대는 보기에는 좋았으나, 나에게 그런 힘을 주진 않았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으면 내 마음이 다복스럽게 차오를 듯했다.
꼼꼼하게 포장되어온 접시 중 하나를 꺼내어 곧바로 씻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샀던 휘낭시에를 올려보았다. 이유 모를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