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생계와는 무관한 '취미농'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국가가 공인한 농부인 탓인지, 개뿔도 모르는 문외한인 돌쇠아재는 농업에 관한 시시콜콜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귀농을 할까 말까 진로상담에서, 농업정책, 작물 재배 등등, 백배 천배는 더 똑똑한 네이버 선생이나 유튜브에만 접속해도 자료가 우수수 쏟아지는데, 굳이 반푼수인 돌쇠아재에게 묻는다. 가능한 본인들이 기대하고, 듣고 싶어 하는 쪽으로 얼버무리지만 게운치 못한 것은 피차일반인 셈이다.
농촌 텃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제 하기 나름'이란 게 무난한 답이지만, 행여 무람없다고 여길까 봐 사족으로 농촌 어르신들의 오지랖에 대해 살을 입혔다.
사실, 돌쇠아재네 밭 중에 가장 반듯한 밭 280평은 몇 년째 도꼬마리랑 명아주, 바랭이가 완전히 장악을 해버려 농지대장 상으로만 '전'으로 남아버렸다.
시내버스 정거장과 맞닿아있는 반듯한 밭뙤기가 더 이상 밭이 아니게 된 이유도 변명 같지만, 마을 노인네들의 '오지랖' 때문이다.
마을 초입의 정류장 옆.
오가며 누구나 방귀 흘리듯 한 마디씩 입을 댄다. 풀 키우냐, 깨 다 쏟아지는데 머하노, 물을 그리 오줌 짤기는거 맹키로 주면 우짜노...관심의 표현이겠지만, 관심과 오지랖의 애매한 경계는 돌쇠아재에게는 무지 성가신 일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를 하거나, 나름 은둔 고수라고 여기는 어르신들의 한 수 가르침에 정색이라도 하는 순간, 동네에서는 졸지에 천하에 버르장머리 없는 처죽일놈의 후레자식으로 낙인이 찍힐 판이니 조용히 밭에서 꼬랑지를 마는 편을 택하고 말았다.
일단, 남는 게 시간이다.
무료한 시간의 연속. 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작은 동네에 입방아꺼리가 될만한 자질구레한 사건도 거의 없는 지겨운 날들이, 돌담집 할매집에 도둑괭이가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고 토껴버려 골치 아파 죽겠다는 징징거림 조차 몇 날 며칠의 수다거리가 되는 이유다.
마치 제 집 마냥 불쑥불쑥 들어오고, 미주알고주알 콩이니 팥이니 간섭을 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작은 틈새가 생겼기 때문이다.
명절에 고모, 삼촌 친인척이 모여 앉아 소위, 꼰대질 하는 거랑 비슷하다. 쓰잘데기 없는 피곤한 질문 한다고 뭐라 구시렁댈 필요가 없는 까닭은, 어른들이 던지는 말 대부분이 뻘쭘한 분위기 전환 겸 별 의미 없이 툭 던지는 독백이기에 그렇다.
제 집 가정사도 골이 아픈데, 바쁜 세상 남들 사는데 별 관심도 없다. 조카 녀석이 취직은 했는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 등등의 신변잡기는 '그냥 하는' 소리다.
물론, 텃새랑 오지랖은 개념이 다르긴 하다.
맞서 싸우던지, 회피하던지, 그러려니 하면서 타협을 하던지.
타인과의 껄끄러움 대부분은 상대방에 대한 과잉 해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생 때 버스에서 내리다 큰 대자로 자빠진 적이 있었다. 노랑 양은뺀또가 길바닥에 패대기 쳐지고... 볼썽사나운 꼴로 죽은 척 엎어져 누운 채 버스가 떠나기만 기다렸다.
다 큰 놈이 걸음마도 아직 못 땠냐, 엄마 젖 좀 더 빨다 오라며 죄다 놀리는 것 같아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말짱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웃기긴 웃겼다고 하더라만...
작년 추석날, 조카들에게 꼰대 오지랖 소리 듣지 않으려 용을 쓰긴 했는데, 조카 녀석들은 뭐라고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