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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1 호.

by 김석철




부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함양을 거쳐 칠곡으로 왔다. 살을 에는 바람이 팔공산 기슭까지 따라와 보따리를 푼 시간은 해거름이 가까운 즈음이었다.

긴 세월을 조건 없이 함께 해 준 코흘리개들이 어느덧 삼대를 아우르는 할아버지가 되고 마침내 정년퇴직 1호가 나왔다.
호적 나이와 마음의 나이 사이에 끼인 간격은 벗들과의 조우를 위해 달려온 걸음보다 길다.
2회 차 인생길로 들어선 친구를 코 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와는 무관한 딴 세상 얘기로만 느껴진다. 내 마음의 시계는 이미 오십 대 언저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사십 년을 한 자리에서만 지박령으로 버텨낸 고인 물 친구가 마주 한 인생 2회 차의 낯선 세상.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로서는 시종 공기가 무거웠다. 어쩌면, 단물 다 빠진 껌 신세가 되었노라고 사회가 공식적인 선언을 하였고, 우리는 축하라는 명분으로 확인을 해주는 자리였는지 모른다. 봇물 터지 듯 꼬리를 물고 정년퇴임이라는 강제 추방을 당할 입장에 처한 친구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가끔씩 터지는 웃음 속에는 숨기지 못한 짠한 서글픔이 묻어났다. 곧 닥칠 운명의 산 증인이 눈앞에서 잔을 부딪치고 있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누구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내가 부럽다고들 한다. 딱 삼일만 자유인으로 살면 족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들도 잘 안다, 갈 길이 다르고 자유인으로서 느끼는 행복의 한계효용은 삼일에 그칠 거란 사실을.
막연한 동경은, 그동안 많이 지치고 힘겨웠다는 표현을 에둘러한 것뿐이다.

두 번째의 낯선 삶 역시 호락호락하지는 않음이 분명하다. 한 걸음 뒷전으로 밀렸다고는 하지만, 삶의 무게까지 덩달아 물러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혹한 운명의 시험은 동아줄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한물갔다고 공인을 받은 지금부터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 현실이 된 친구와 그 길을 곧 따라갈 친구들이 축 늘어진 녹음테이프처럼 맥없이 반복되는 주제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정과 위로를 받고 있었다.

돈 없이 늙어가는 것보다 서글픈 일은 없다. 돈의 가치는 나이와 비례한다. 늙은이에게는 '나잇값'이라는 가중치가 보태지기

때문이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기대수명이 가리키는 살 날은 한참이다.

정년퇴직 1호 친구는 그나마 사학연금 측으로부터 남은 생애 보호비를 솔챦게 받기라도 한다니 다행이다. 한 일생을 저당 잡혀 충성을 다했으니 그 정도의 대가는 당연함에도 마치 성은을 입은 것만 같아 씁쓸하다.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는 않았지만, 벗들 모두는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뭐해먹고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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