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풍초똥팔삼.
고스톱판에서 손에 쥔 패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순번, 곧 버리는 패의 위상이다.
세상이 바라보는 나란 존재는 똥이나 팔 정도 되려나 모르겠다. 삼팔 따라지급은 아닌 것 같긴 하다만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지 틀림없이 어떤 이는 망통 보다 못한 인간으로 여길수도 있다.
하긴, 어설프게 좋은 패 들어 던지기 아까워 끼고돌다가 정작 쓰리고에 광박 피박 다 두들겨 맞고 개털 되는 수도 있으니 차라리 언제 버려져도 분하지 않을 비풍초똥팔삼이 나을 경우도 있다.
언제부턴가 명절날, 흔들고 쓰리 고를 외치는 소리에 묻어나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그에 걸맞은 아쉬움의 한숨소리가 가물가물해졌다.
가족끼리 밥 한 끼 사는 돈은 금액에 관계없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고스톱판에서 돈을 꼴면 가족이고 나발이고 무지 신경질이 난다. 게다가 누군가 턱 밑에 앉아 깐족깐족 보골이라도 채우면, 담요 홱 뒤집어엎고 깽판 치기 딱 좋다. 사실 그 돈이 그 돈이고, 딴 사람이 판돈을 싸그리 아도(싹쓸이) 쳐봐야 십중팔구 부모님 쌈지로 들어가거나 조카들 용돈으로 다 토하게 된다. 그럼에도 패배는 늘 쓰라리다.
장기판에서 제일 무서운 말은 포, 차가 아니라 하잘것없는 '졸'이라고 한다. 후퇴를 모르는 뚜벅이 졸에게 후달리며 외통수로 몰리게 될 때는 황당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고스톱에서는 피가 그렇다.
청홍초 단, 비풍초 시마 짝 맞추는 민화투가 전문인 엄니 이 여사는 고스톱판에서 피의 무서움을 깜빡깜빡하는 바람에 수북이 쌓인 동전 다 털리고 원통해하기 일쑤다. 그놈의 비광은 또 어찌나 야무지게 움켜쥐고 있는지.
고스톱판에서 비광의 패만큼 위상이 어정쩡한 것도 없다. 명색이 광 패임에도 정작 독자적으로는 광 3점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들러리 신세를 전전한다. 비 열 끗짜리 패는 또 어떻고. 엄연히 제비가 등장하지만 고도리의 다섯 마리에는 속하지 못하는 새 같지 않은 새 신세다. 그나마 라쇼몽이라고 해야 하나, 일종의 사립문을 그린 비 피나 나름 몸값을 할까, 국진 열 끗짜리, 똥 피와 함께 쌍피로서의 이름 대접이나 받고 있으니 체면치레는 피 하나가 다하는 셈이다.
보짱과 의리를 최고의 가치라고 노래한 허세 좋은 아버지는 젊은 날에 진해 속천포구에서 선박수리 철공소를 크게 했었다. 만장기를 휘날리면서 레일을 따라 매끄럽게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새 배에서는 떡이며 돈을 우렁찬 고함과 함께 사방으로 던졌다. 통영지역에서는 떡 속에 돈을 넣어 던진다 해서 '돈떡'이라고 하는데, 눈치 빠른 꼬맹이들은 큰 떡을 든 이를 우르르 쫓아다녔다.
만선의 꿈을 향해 새로운 바다로 거침없이 나아가던 배와 아버지의 수리조선소를 좌초시킨 것은 손바닥 크기에도 못 미치는 마흔여덟 장의 화투패였다. 고, 고를 줄창 외치더니 인생 자체가 새가 되어버린 아버지는 이후로도 도박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막내가 그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말았다.
화투점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가 어린 나를 불러앉혔다. 군용 담요 위에 소복이 쌓인 화투를 휘휘 저어 비광을 찾아내셨다.
우산을 든 사내와 개구리, 그리고 낭창한 버드나무 가지와 물길이 그려져 있는 비광 패가 찰진 소리와 함께 내 무릎 앞에 찰싹 들러붙었다.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님을 몸소 교훈으로 보여준 일본판 한석봉, 중국 양식에서 벗어나 일본 서예의 독자성을 완성한 인물인, '미치카제'라고도 부르는 '오노 도후'에 대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서예 공부에 지치고 낙망한 젊은 날의 오노도후가 글공부를 때려치우려고 맘을 먹고 방황하던 중, 빗물에 불어난 물길에 갇힌 개구리...,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우공이산의 의지로 나아가면 한갓 미물인 개구리조차도 뜻을... 뭐 그렇고 그런 고진감래, 존버정신에 대한 교과서적인 찬사와 교훈을 말씀하셨다.
아,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자식에게 훈계라고 하시면, 오노 도후의 체면이 뭐가 됩니까.
도박으로 재산 홀랑 다 탕진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사흘이 멀다 노름판이나 기웃거렸던 당신. 덕분에 처자식은 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시키고. 적어도 아버지 먼저 화투패에서 깨끗이 손을 씻고 그런 말씀을 하셨어야지.
아버지의 관 속에 평생을 그토록 사랑했던 화투장과 막걸리 한 병을 꼭 넣어드릴거라는 다짐을 깜빡 잊은 것이 못내 죄송스럽다.
보슬비가 치적이는 공원묘지에 삼십 년 이상의 터줏대감이 되신 아버지는 요즘 어떤 이의 혼백이랑 고스톱을 치고 계실까.
'김해 김공 학찬지묘'라고 서각 된 상석 구석진 자리에 보일락말락 설핏 보이는 자와 녀가 하나같이 비풍초똥팔삼의 버려져도 그뿐인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