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내가 세상에서 무서워하는 두 가지를 꼽자면 엄니 이여사의 포기를 모르는 불꽃 잔소리와 암팡진 집사람이다.
팔불출이냐고?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지금 내 집시 같은 삶을 보라, 어딜 봐서 잡혀 살 사람인가.
일 년에 잘해야 두세 번 본가에 들어가는 나는 그야말로 뭇 아짐들의 모범남편 '무식이'다. 자발적 홀애비로 긴긴 겨울밤이면 벽만 벅벅 긁어대는 곰팡내 나는 인간이 나다.
그런 내가 어쩌다 삼대 구 년 만에 본가라는 데를 간 날이었다.
"밥 좀 도."
놀부네 밥 얻으러 간 흥부도 아닌데 고깟 밥 한 끼 내 집에서 먹겠다는 게 그렇게나 몹쓸 짓인가?
"지금이 몇 신줄이나 아나? 시간이 아홉 시다, 아홉 시. 미리 온다고 연락이라도 좀 하던지!"
그때까지만 해도 간 큰 남자였던 나 돌쇠는 순간 꼭지가 홱 돌아버렸다.
"치아라, 마! 내가 껄뱅이가? 지 집구석에서 지가 번 돈으로 밥 한 끼 먹겠다는데, 니미."
예상도 못한 인간이 연락도 않고 야심한 시각에 들이닥쳐 뜬금없이 밥 내놔라고 하니 집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신경질이 났겠지만, 듣는 나로서는 순간 얼마나 서럽고 억울하던지. 처자식 멕여살리느라 쎄가 만발이나 빠지는 명색이 가장인 사람한테 이렇게 야박할 수가 있나 싶어 눈물이 찔끔 났다. 그 길로 곧바로 가출을 해서는 한 달간 얄짤없이 잠수를 타버렸다. 똥줄이 급한 건 마눌 쪽이었다. 까딱하면 밥줄이 끊길 판이니 역시 돈이 깡패는 깡패인 거다.
이때 까지가 봄날이었다. 요즘은 그야말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바짝 엎드려 깨갱한다. 같이 살아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 싶어 애먼 짓 한번 않고 박박 기면서 눈치만 살핀다. 낫살께나 먹은 돌쇠, 신세 처량하게 되었다.
잠시 들여다본 격투기 영상에서 무서운 사람 또는 것에 대한 댓글배틀이 좍 떴다. 무서운 사람으로 꼽는 압도적 1위는 예상대로 내일이 없는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지킬 누군가가 있는 사람, 총 들고 있는 사람, 더 무서운 건 합의금이다. 그중 내가 꼽은 최우수 댓글은, '침 뱉는 사람보다, 침 흘리는 사람이 더 무섭다.'였다. 대단하지 않나.
하지만 나 돌쇠는 실실 웃는 사람이나 머리에 꽃 꼽고 침 흘리는 사람보다는 엄니 이 여사랑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마나님이 훨씬 더 무섭다.
"김 석철 씨, 내 좀 봅시다!"
드디어 풀네임에 극존칭을 붙인 출두명령이 떨어졌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도대체 무슨 껀수가 마눌의 심기를 건드렸나. 알리바이, 얼른 생각해 내야 내가 산다. 머리통 속이 뒤죽박죽 뒤엉켜버렸다.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공손히 손까지 모았다. 고양이 앞의 생쥐 꼴이다. 잠시간의 침묵이 목을 옥죈다. 침조차 삼키면 안 된다.
"내한테 뭐 할 말이 없소?"
여편네가 사람 피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한 게 틀림없다. 대충 무슨 일인지 나마 감을 잡아야 싹싹 빌든 시치미를 잡아떼든 모면을 할 텐데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마눌님은 삼 년 전, 아니 그보다 오래 전의 시시껄렁한 온갖 잡다한 죄까지 모조리 실토를 받아내고 말았다. 물론 마눌은 취조 내내 입을 앙다물고 있었고, 내 스스로가 제 발이 저려 나불나불 다 불고 말았다.
내가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마눌에게 슬슬 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