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의 스캔들
뜻깊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약대 2학년이 시작되었다. 선배들의 말대로 2학년부터 학업 난도가 많이 어려워졌다. 거기에 우리 가족의 유대를 산산조각낼 만한 큰 사건이 하필이면 이때 벌어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빠의 가장 친한 지인이 엄마에게 어느 날 전화를 거셔서 할 얘기가 있다며 보자고 하셨다. 그 지인은 몇십 년 동안 가족끼리 왕래가 잦으며 함께 여행도 다니던 친한 사이였다. 그분이 엄마를 만나자마자 하는 이야기가 아빠가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이 질문에 엄마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사람, 바로 결혼식을 마친 후 웨딩카에 대뜸 신부 대신 아빠 옆 자리에 탔던 그 여자. 엄마의 예상이 맞았다. 이 지인은 엄마에게 알리는 것이 두 사람의 관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엄마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빠에게 바로 따져 물었는데 아빠는 엄마의 이야기에 눈을 감고는 그런 일은 없었으며, 왜 그 지인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총각 시절 아빠에게는 오랫동안 사내연애를 했던 한 여자가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당연히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당시 매우 가난한 집의 기둥이었던 아빠를 그 여자는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고 그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 후 아빠는 엄마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데 웨딩카에 앉는 것은 물론 오빠가 태어난 후 어렸던 오빠에게 "난 너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단다."라는 이상한 말을 했다고 엄마는 소회 했다. 그 외에 그 여자의 결혼식에 회사동료로서 참석한 후에 아빠의 표정이 정말 안 좋았었다고 했다. 게다가 종종 아빠가 골프를 다녀오시면 입고 간 옷이나 양말들이 사라지기도 했다고 한다.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그 이후로 엄마는 아빠의 핸드폰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탐정을 고용했다고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탐정은 아빠를 추적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포기를 했고 엄마의 의심은 심증으로만 남아있었다. 여담이지만 그 여자는 아빠와 헤어지고 같은 회사의 임원에게 재취로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얼마 후 남편이 사망하고 슬하의 아들과 싱글맘으로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차후에 좀 더 풀어볼 일이 있을 것이다.
엄마는 오빠에게 이 이야기들을 전했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오빠는 서울로 급히 올라와 부모님과 대질심문을 했다. 아빠는 눈을 감고 자기는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오빠는 왜 그러면 아빠의 가장 친한 지인이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을까 아빠에게 되물으니 나는 모르겠다고 하셨다. 아빠는 그저 엄마에게도 하셨던 말을 반복하실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신뢰와 존중은 수많은 의심과 행동들 속에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되어 한 지붕 아래 산다는 식구의 의리와 책임감만이 남아있었다. 학기 중이었던 나는 오빠나 엄마로부터 소식들을 전달받기만 했으니 미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그저 답답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두 분의 부부 상담을 권했다. 오해가 있다면 오해를 풀고 용서받을 일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이해받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그리고 두 분이 제발 이쯤에서 그만 서로의 인생에서 독립하셔서 이혼하시기를 기도했다. 부모님이 이혼하기를 기도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싶겠지만 나는 정말 어릴 적부터 나의 부모님이 제발 이혼하셨으면 싶었었다. 만나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서로 싸우고 상처를 주는 이 관계를 유지하느니 이혼을 하셔야 두 분의 인생이 덜 불행할 것 같았다. 또한 부모님의 불화에 불똥이 튀어 상처 입은 나의 인생도 덜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소원대로 두 분은 부부 상담을 받으셨다. 두 분의 부부 상담은 꽤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부부 상담을 여러 번 거절하셨던 아빠도 이번에는 상담을 적극적으로 하기로 마음먹으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의 교감이 정지되어 버린 이 부부에게 찰나의 부부 상담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침내 엄마는 이혼을 결심하셨다고 나에게 전해주셨다. '그래, 진작에 이렇게 되었어야 해!’라고 생각하며 나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2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한국에서는 몇 년 동안 교제한 여자와 결혼을 결심한 오빠가 곧 결혼을 할 테니 이혼은 그 후로 미루라고 엄마에게 부탁했다. 오랫동안 이혼을 생각했었던 엄마였지만 가장의 부재를 겪으면서 자란 엄마에게 막상 홀로 서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다. 그런 엄마에게조차 이번 일은 이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 정도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결혼을 막아가면서까지 본인의 길을 선택할 정도로 엄마는 모질지 못했다. 내 입장에서 오빠의 부탁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려는데 행여나 부모님의 이혼으로 불필요한 반대가 생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이혼을 막으려는 오빠의 마음 역시 괴로웠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부모님의 사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자식으로서 두 분의 불행함을 조금이라도 빨리 멈출 수만 있다면 기꺼이 부모님의 이혼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오빠의 입장이 직접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나의 가족의 어두운 면까지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과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일에 신경을 써서인지 학업이 급격하게 어려워져서인지 나는 불안해서 잠을 잘 못 자며 폭식증이 다시 도졌다. 생리 불순도 심해져서 빈혈도 생겼다. 산부인과에 가니 지름 2cm인 물혹이 난소에 있다고 했다. 의사는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생리 불순이 심하니 호르몬제를 먹어보자고 권유했다. 약을 먹는 것이 너무 싫었던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빈혈약만 처방받았다. 그리고 운동을 조금씩 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속에 번뇌가 가득한데 운동이 될 리가 없었다.
빈혈로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공부도 해야지, 인턴도 해야지, 동아리 활동도 해야지, 그리고 엄마의 하소연도 들어드려야지… 점점 지쳐가고 버거웠던 것 같다. 많은 것들을 너무 잘하려 했고 욕심대로 결과가 잘 이루어지지 않자 또 나는 낙심했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나는 공부하기 싫어서 울면서 공부했던 것 같다. 수많은 난적들과 싸워야 하는 나의 약대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2. 또 한 번의 좌절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며 시험을 하나하나 치러나갔다. 다행히 대부분의 과목에서는 패스할 정도의 학점은 나왔지만 가장 중요한 치료학에서 D학점이 나오고야 말았다. 재수강을 해야 하는 학점이 나온 것이다. 나는 낙심하기보다는 이번이 나 자신을 재정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학과장님과 면담을 잡았다. 학과장님은 내가 이 학교에서 처음 만난 교수님이며 나의 면접관이기도 했다. 교수님은 나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주셨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나는 이번 학기에 몸도 안 좋고 집에 큰 일도 있어서 학업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좀 휴학을 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교수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지금 멈추면 꼭 큰일이 날 것 같겠지만 길게 인생을 보면 지금 이 순간은 아주 작은 점 같은 시간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쉬어도 괜찮다고… 애 많이 썼다고… 교수님의 따뜻한 말씀에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고는 당면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휴학계를 제출했다. 그리고 불행한 시간을 겪고 있던 나의 부모님이 있는 한국으로 다시 갔다. 그분들의 지긋지긋한 불행의 소용돌이를 이제는 끝낼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가지고서.
이렇게 또 저는 휴학을 하게 되었어요. 이 시절 저희 가족 모두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직접 아빠에게 도대체 그 여자와 무슨 사이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때의 저는 그럴 용기가 없었어요. 제가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알아봤자 부모님의 관계에 더 개입하게 될 것 같았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불화로부터 독립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미국으로 오게 된 것이니까요…
아빠는 그 분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정말 어떤 사이였던 걸까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기도 합니다만, 아빠의 지인이 저희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하기까지에는 무언가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혹시 아빠는 전 여자 친구가 남편과 사별 후, 형편이 어려워진 것이 눈에 밟혀 도움을 주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도 의문이 많은 아빠의 그 여자의 이야기… 저의 마음속 깊은 동굴에 있는 이 이야기를 펼쳐내니 독자들과 매우 막역한 사이가 되는 느낌이 듭니다.
저의 휴학 생활은 어땠을지 다음 주 글로 찾아올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