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이야기: 왜 다들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려 하는 걸까?
캐나다 이민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조건이 궁금하다면, 여기에서 내가 얼마나 해당조건에 부합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 한국에서 3년 이상의 경력이 있다
* 캐나다 내에서 1년 이상의 경력이 있다
* 영어 혹은 불어 최소 한 가지 언어를 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 직계 가족이나 형제자매가 캐나다 국민이거나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 최소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해도 버틸 수 있는 현금을 보유 중이다
* 최소 한 개 이상의 학사학위가 있다
* 캐나다에서 고등교육을 2년 이상 다녔다
* 20대
* 싱글
* 전문직 (의사, 엔지니어, 대학교수, 대기업 매니저(한국직급 부장) 등 )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나이가 찼거나, 언어장벽이 있거나, 가정이 있거나, 투자이민을 할 정도의 막대한 자본이 없거나 등의 조건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캐나다 이민은 점수제다. 즉,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도가 있다'라고 쉽게 꼬집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감점된다면, 캐나다 경력을 늘리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이 캐나다에서 일을 하려면 노동 허가증 work permit이 필요한데, 내가 허가증을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캐나다 정부에서 인정받은 학교를 졸업한 뒤에 받는 pgwp 비자를 받거나 35세 미만의 젊은 사람이면 조건 없이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추첨식으로 받을 수 있다. 학교를 다닐 자금이 충분하지 않거나,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당첨되지 않거나 조건이 안 되어 신청할 수 없다면? closed work permit, 특정 직장에서만 일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노동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좋든 싫든, 해당 직장에서 계약기간 동안 계속 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엔, 고용주가 절대갑이다. 허가서를 받고 싶은 사람들은 줄 서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부터 간절하게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유효 한 1년 내에, 1년 풀타임 경력을 쌓을 수 있다고 아주 크나 큰 착각을 했다. 내가 겪고, 본 경우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모 한인 카페에 구인구직란이 있다. 이상하게도 구인구직란에 자주 공고를 올리는 업장들이 있다. 이 업장들을 거르고 거르다 보니, 사실상 이력서조차 낼 곳도 없었다. 이주공사가 소개하는 업장을 가면 안전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직업소개를 받았다. 밴쿠버에 있는 식당에 매니저 자격으로 가게 되었다. 첫날부터 엄숙한 분위기가 날 잡아먹었다. 주인장이 헤드셰프로 일 하는 가게인데, 주인장의 기분에 따라 그날 그날 분위기가 달랐다. 가게 월세를 걷으러 온 백인 남성에게 지나칠정도로 굽신거린 후, 분이 풀리지 않아서 주방 안에서 쌍욕을 달고 다녔다. 그날 퇴근할 때쯤엔 큰 쓰레기통을 미친 듯이 발길질하던 진풍경을 봤다. 직원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괜찮습니다. 본인 일만 잘하시면 됩니다.'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셨다. 또한 테이블에 비해 터무니없는 서버 수를 뽑아놓고, 음식이 빨리 안 나갈 때마다 주방 안 쪽에 들어가서 쌍욕을 거침없이 날렸다. 난 그럴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에, 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번엔 다른 집 이야기다. 밴쿠버에 있는 소매점 이야기다. 주인은 항상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손님들에게 굽신거리는 것이, 첫 번째 이야기 사장과 정말 비슷했다. 첫날, 계산대 앞에서 먼저 일 하기로 했다. 물건 계산하는 건 정말,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계산하면서 손님들과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계산을 받을 참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카드로 하시겠어요? Visa 카드인가요? 물어본다. 카드 회사별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매출 계산을 위해 POS system에 입력하는 업장들이 있다. 이 업장은 트레이닝 첫날에 어떠한 설명도 안 해줬기에, 혹시나 하여 손님에게 어떤 카드인지 물어봤다. 그 뒤로 쏟아지는 주인장의 무서운 눈빛. 그리고 계산을 받는데, "00불입니다"를 이렇게 말했다. "Your total comes to $32.54. Whenever you're ready." 그 손님이 떠나고 주인장이 소리쳤다. Please 붙여! 그래, 주인장 가게니까 주인장이 원하는 대로 해 줘야겠다. 다음 손님에겐 "That'll be $12.34. Would you please tab your debit on the top of the terminal?" 뭐 이런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주인장은 혀를 끌끌 차며 나에게 영어교육(?)을 친히 해 주셨다. "너는 그딴 식으로 영어 하면 밴쿠버에서 절대 못 살아. 왜 Please를 안 붙여?(붙였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일 못해." 아하, 그렇구나. 그럼 주인장 소원대로 일 안 할게요.
전 세계가 다 그렇듯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많은 업장들이 프론트 직원에 매력적인 사람을 고용하여 매출 상승효과와 업장 이미지 개선을 꾀한다. 그래서 이곳에선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서버들이 짧은 치마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구두를 신으며, 예쁜 손톱과 풀어헤친 머리(물론 스프레이로 고정한다)로 서빙하는 집들이 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 이런 집들은 손님을 구워삶아서 비싼 술을 많이 판다. 물론 많이 팔 수록 서버는 팁을 많이 가져가니, 외모와 화술이 경쟁력인 것. 세 번째 집, 고급 식당도 아닌데 서버에게 미적으로 많은 걸 기대했다. 성적으로 착취한다는 소문이 종종 들렸는데, 이주공사에서 일단 보냈으니 가 봤다. 아니나 다를까, 헤드셰프는 회식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특히 젊은 여자애들을 인사불성으로 만드는 걸 어찌나 즐기던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애들을 자기 주위에 앉히고, 2차로 본인 집에도 가고... 나는 뒷 이야기를 잘 모른다. 다만 그 셰프의 총애를 받는 여자애들이 있었는데, 그 어린애들은 4살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이, 헤드셰프에게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발을 동동 구르며 이야기를 하는 걸 보았다. 기분이 묘해서 그만뒀다.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고 그만두니까 괘씸했나 보다.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정보를 다 틀리게 써서 체크를 발급했다. 내 이력서도 있고, 내 이름도 아는데, 내 이름을 창작하다시피 마음대로 스펠링을 적은 것. 체크에 적은 개인정보와 내 개인정보가 불일치하면 입금이 되지 않는 걸 노린 것 같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안 새랴, 몇 년 후, 이 사장내외는 말도 안 되는 customer service로 현지 신문에 나버렸다.
또 다른 가게 이야기다. '헬조선은 지리적 구분이 아니다. 한국인이 있는 곳이 바로 헬조선이다'라는 말을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농담 식으로 한 적이 있었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장이 아닌, 한인 업체 직원들. 젊고 예쁜 직원들이 들어오면 너무 못 살게 구는 직원이 있었다. 옷을 그따위로 입으니 걸레 같다는 인신공격을 하거나, 트레이닝을 고의로 안 시켜서 실적을 못 내게 하고, 가장 힘든 쉬프트만 몰아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젊지도 않고 예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사람은 건수를 잡을 때마다 괴롭혔다. 일례로, 1000개들이 1oz 일회용 컵은 비닐봉지에 딱 맞게 담겨있다. 러시타임에 쓸 컵 몇 개를 소분해서 쓰지 않는 시스템이 이해가 전혀 안 가지만, 그 식당 룰은 필요할 때마다, 매 번, 컵을 하나씩 빼서 써야 한다. 조급해서 손이 바쁘거나 손에 물기가 있으면 안 풀리는 게 당연지사. 그 직원이 컵을 꺼내려는 찰나, 수많은 컵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떤 ...년이 이따구로 묶어놓은 거냐고!"라고 자기 분에 못 이겨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한 성격 한다는 연배 지긋한 라인쿡들도 깜짝 놀라서, 왜 신입한테 매번 그렇게 못 살게 굴어서 내보내냐고 소리쳤다. 그날 바로 사직했지만, 같은 처지의 직원들끼리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란 걸 깨달아버렸다.
다른 가게에서는, 식당 매니저가 영어를 못 하고 한국어도(!) 못 했다. 새벽시간에도 카톡 단톡방에 집합을 걸고, 괴상망측한 압존법으로 장문의 공지를 올렸다. (참고로 미필이다.) 모든 직원의 "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답변을 받지 않으면, 답변을 빨리 안 하는 자를 카톡방에 공개처형했다. 이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실수의 범인을 당장 찾는데 혈안이었으며, 손님 앞에서 공개적 망신을 줘야 속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업무 중 실수가 나오면, 책임자로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필요시 실무자와 따로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모든 직원들이 실수를 숨겼고, 고질적인 실수 문제나 큰 문제는 얼렁뚱땅 감춰지곤 했다. 나는 식당 관리자가 되기 위해 와인과 커피를 따로 공부해 갔고, 경력을 쌓고 왔으며, 모두가 싫어하는 서류 작업을 사랑하는 괴팍한 인간이다. 다른 직원들은 거의 10년 이상의 실무 경력이 있고, 유명한 로스터리에서 관리자로 일했으며, 일본에서 다도법을 배워온, 최소 최저임금 이상의 능력은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럼 이 매니저는? 사장 부인의 교회 지인이다. 약 3개월 동안 타 지점에서 파트타임 캐셔를 했던 게 전부. 가장 얄미웠던 순간은, 영주권 조언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는 것. 누가 보면 본인이 일 한 경험으로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결혼으로 영주권을 받았고 일생 단 한 번도 풀타임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만둬서 정말 다행이다.
그 외에도, "너 하는 것 보고 비자 줄 지 결정해 줄게"라고 해놓고, 통상적인 probation 기간 이상동안 계속 간 보는 사장, "섹스를 알려주겠다"라며 밤 10시에 연락한 사장, 어떻게 한인 사회에서 잘 보여야 하는지, 그러려면 어떻게 그 사장에게 "잘 보여야"하는지 설교하던 사장, 25살 차이 나는 전여자 친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떻게 치장시켜 줬는지 자랑하던 사장 등. 말도 안 되는 말을 처음 보는 자리에서부터 하는 미친놈들도 많았다. 업장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적어놓고, '요즘 것들'이 얼마나 싹수없이 최저임금 미지급 신고를 하고 퇴사하는지 일장 연설하고, 카톡 사진엔 자기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딸내미 사진을 걸어놓고, 젊은이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으며, 이웃들에게 근면성실한 이민자 겸 작은 비즈니스 소유자로 칭찬받지만, 12시간 이상 일 하는 직원들에게 overtime pay는 커녕 최저임금조차 안 주는 사람들. 세상엔 절대 악이란 건 없다는 걸 깨달은 좋은 순간이었다.
7개월 전 한국 뉴스에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린 노스밴쿠버의 치킨집이다. 요즘은 증거를 모으기 더 쉬워지고, 언론과 여론을 껴서 부조리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 업주들은, 자기들이 처음 이민 왔을 때 박혀있던 구시대적 관념과 사회관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도 이렇게 안 합니다, 이 사람들아.
https://www.youtube.com/watch?v=zuTP1GibK8c
시골로 갈수록 사정은 더 심각하다. 애초에 일자리가 한정되고, 교통제한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탈출조차 불가능하다. 주인장 가족의 노예가 되는 건 일상다반사. 집 앞 눈을 쓸어주고, 출근 2시간 전부터 미리 나와서 업장 청소, 주인장 자식 학교 데려다 주기, 담배 심부름 등등.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봤다. 이들이 왜 도망가지 못하는가? 대부분의 경우, 시골로 갈 정도로 절박한 사람들은 점수가 더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 작은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다면 캐나다 이민은 꿈도 못 꾸는 것이다. 물론 캐나다 이민을 접고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자녀교육을 위해 캐나다에 온 사람들은, 희생정신이 대단하다. 존경심이 들 정도로. 아래 기사는 로컬 뉴스에 다뤄진 부끄러운 우리 자화상이다.
https://www.cbc.ca/news/canada/british-columbia/store-owner-cash-for-sex-1.6267230
https://www.cbc.ca/news/canada/manitoba/immigration-wages-consultants-1.4179163
그나마 희소식이 있다면, 이제 타 유럽국가들처럼 워킹홀리데이 오픈 퍼밋이 최대 2년으로 늘어난다. 그럼 입국 후 이력서를 돌리고, 일을 실제로 해 봐서 잘 맞는 곳을 고른 후, Express Entry에 쓸 최소 경력 1년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빠듯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업장 입장에서는 새 직원이 적응할 수 있는지 여유롭게 볼 수 있어서 좋고, 새 이민자 입장에서는 LMIA가 급하게 필요한 일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나는 돌고 돌아서 나에게 맞는 업장을 찾았고, 정말 개처럼 일했다. 정말 환상적인 직장이 없는 것처럼, 나도 완벽한 직원은 아니다. 하지만 "어딜 네가 감히!"라는 소리를 매일 들으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못살게 구는 곳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EE를 위해서 최소 1년 이상 일할 곳을 찾아야 하니까, 신중하게 업장을 찾아다녔고 고마운 사람도 많이 만났다. 경력을 채우는 중, 코비드로 EE를 안 뽑아서 앞날이 캄캄했었는데, 잘 참고 이겨내니 CRS score 상위 1% 점수대로 LMIA 생활을 졸업할 수 있었다. 본인 점수가 궁금한 사람들은 아래 점수 계산기와 커트라인 Round of Invitation을 체크해 보자.
점수 계산기
https://www.cic.gc.ca/english/immigrate/skilled/crs-tool.asp
Round of Invitation
https://www.cic.gc.ca/english/immigrate/skilled/crs-tool.asp
또한, 본인이나 아는 사람이 LMIA로 일 하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주저 없이 신고하자. 어떻게 신고하는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고, 상담 시 원한다면 한국어 통역을 붙여준다. 위급상황엔 주저 없이 911을 이용할 것.
https://www.canada.ca/en/employment-social-development/services/foreign-workers/report-abus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