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의식의 방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는 내가 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집을 가지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아담한 2층집이었는데, 1층은 우리가 살았고 2층은 세를 주었다. 세든 사람들은 중년의 부부였다.
그 남편은 아줌마들을 모아서 불법으로 춤을 가르치는 춤선생이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쿵작 쿵작 띠리리 디띠디
하는 음악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옥상에 커다란 평상과 새장이 있어서 새들 구경을 하러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2층을 거쳐가다 보면 자지러지게 웃고 떠드는 아줌마들을 볼 수 있었다. 어쩌다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쩐지 내가 뭔가를 잘 못 한 것 같고 부끄러웠다. 이상한 건 그들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앞 집 담벼락이 온통 장미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집은 단층집이었는데 집 건물은 작고 아담했지만 정원이 아주 넓었다. 봄날의 꽃이 만발한 그 집에는 나보다 두세 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가 혼자서 놀고 있었다. 나는 겨우 눈만 빼꼼 내민 채 숨죽이며 그 아이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과 하는 대화를 엿들어보니 그 아이는 무슨 장애가 있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요양을 하는 모양이었다. 커다랗게 흙을 쌓아놓고 흙장난을 자주 하던 그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통통한 몸집에 매번 미소 짓는 표정을 하고 있던 아이였다.
이듬해 가을, 놀랍게도 우리는 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 지은 2층집을 놔두고 왜 그 집으로 이사를 갔는지 부모님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 두 분 다 돌아가셨는데 난 그 이유가 매우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그 집으로 이사한 후부터 우리의 삶이 매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공간은 마치 생명체처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했을 때는 그 아름답던 장미넝쿨도 예쁜 꽃들도 온 데 간데없었다. 마치 디즈니 만화에서 마녀가 지배하기 시작하면 빛과 색채가 사라지고 온통 가시덩굴이 자라나는 흉악한 땅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그 집이 그랬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거기가 맞나 싶었다.
넓은 거실에 겨울에도 따뜻했던 2층집에 비해 춥고 오래된 그 집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내부가 오래된 나무로 되어 있어서 벌레도 많았고 찬바람도 쌩쌩 다 들어왔다. 화장실은 바깥 창고 옆에 있어서 무서움을 많이 탔던 나는 밤마다 화내는 언니를 억지로 데리고 같이 가야 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그 집에서의 삶은 내게 어떤 문신처럼 진하게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꿈속에서는 아직도 내가 그 집에서 살고 있다. 꿈에서는 그게 너무나 당연하고 꿈을 깨고 나면 그게 너무나 이상하다. 그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꿈을 꾸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내 영혼의 일부는 아직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