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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Feb 14. 2022

불면증

                                   

나는 어릴 적부터 불면증에 시달려 왔다. 어린애가 무슨 불면증? 하며 의아해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건 나도 인정하기 싫은 내 취약한 부분의 하나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것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이따금 불면증이 심하게 나를 고통스럽게 할 때는 정말 넌덜머리가 나서 머리를 흔들곤 한다.      

 언제부터 이 불면증으로 고통받아 왔는지 곰곰 기억을 되살려보면 어렴풋이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무렵부터가 아닐까 하고 짐작이 된다.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던져놓고마루턱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루 저쪽 끝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나는 엄마와 다른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날따라 약간 억양이 높아져서 호들갑스럽게 떠들고 있는 옆집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골목길 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집의 아저씨가 사기꾼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심상치 않은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아줌마와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허우대는 멀쩡하고 그럴 듯한데 사기꾼이래요 그러고보니 직장에 출퇴근하는 것 같지도 않잖아요”  “낮에도 집에서 빈들거릴 때가 많더라고요” 내가 몸을 기울여 엄마와 아주머니의 말에 신경쓰는 것처럼 여겨지자 아줌마와 엄마는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나머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부터 뭔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져서 그날 오후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 아저씨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같은 반 단짝친구의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그 아이와 나는 매일같이 등하교 때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꼭 잡고 학교도 같이 다니고 놀기도 같이 놀고 숙제도 같이 하는 매우 친한 친구였는데 그 애의 아버지가 사기꾼이라니!! 나는 다음 날부터 학교에 같이 가자고 찾아온 친구에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같이 등교하는 것을 피했고 골목길 끝에서 그 아저씨를 보기만해도 가슴이 콩다콩닥 뛰어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가 골목길을 돌아서 나가 다른 길로 돌아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아이와는 그 이후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져서 그 서먹한 사이는 그 아이 집이 이사를 가서 다른 학교로 전학가고 난 뒤 아예 끊어져 버렸다.      

 그 무렵부터였을까? 나는 밤에 잠을 잘 잘 수 없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면 까만 어둠 속에서 천장에서 무거운 무엇인가가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공포로 몸을 떨었다. 비몽사몽이라고 해야 하나? 길을 가는데 길 가운데 커다란 구멍들이 여기저기 뚫려 있어서 그 구멍들을 피해서 걸어가느라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고생하는 꿈을 매일 꾸었다. 꿈인지 상상인지 모를 상태를 매일 경험하면서 나는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밤이 공포스러워 졌다, 똑같은 꿈은 매일 이어졌고 그런 상태가 아마도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기간에는 그런대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에는 다시 잠 못 들어 고생하는 날이 셀 수 없이 많아졌다, 거의 새벽까지 뒤척거리다가 가까스로 4시나 5시쯤 되어 잠깐 잠이 드는 날이 수도 없었다. 특히나 낮에 무언가 새로운 일이 생겼을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내일 누구를 만난다던가 걱정거리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최악의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식구들에게 이런 일들에 대해 얘기하면 “넌 원래 너무 예민하잖아 그냥 생각 같은 것 하지 말고 편안히 넘어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기 일쑤였다. 나도 나의 예민함에 대해서는 두 말 없이 인정하고 있는 터여서 “그래, 할 수 없지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니”하며 체념한지 오래여서 수십 년의 세월을 나의 불면증이라는 괴물에 당하면서 사는 신세였다.     

 그동안 수도 없이 신경안정제도 처방 받아서 일상생활에 너무 지장이 있다 싶을 때 복용해 보기도 했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신경안정제도 별 무소용이었다.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잠을 자고 못 자고는 하나님의 자비에 달린 듯했다.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난 뒤 잠깐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는 일들은 나의 생활에서 다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낮에 낮잠을 자는 타입도 아니니 나는 거의 일생을 수면부족에 시달려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나는 버스 안에서 혹은 지하철 안에서도 잠을 자지 못한다. 여행을 가서 바쁜 스케줄에 아무리 힘들어도 이동 중에 잠을 못 잔다.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친구나 동료들을 보면 부러움 때문에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해외로 나갈 때도 십 수 시간의 비행 중에 영화를 몇 편 보고 음악을 듣고 눈만 감고 몸을 뒤척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곤 한다.     

 결혼 후 남편의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잠을 잘 자나 하며 부러워했던 일들은 이젠 이야깃거리도 못 된다. 남편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뭐라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금새 꿈나라로 저 멀리 가버리곤 한다. 베게에 머리를 대고 딱 1분이 나의 남편의 수면 패턴이다. 나는 고른 숨을 쉬며 잠에 빠진 남편 옆에서 뒤척거리며 잠을 청하다 이렇게 하다간 그의 잠까지 깨울지도 모르거니와 내가 잠이 들 가능성도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서 정 안되겠다 싶으면 거실로 나가 소파에 누워 다시 잠을 자려 애를 쓰지만 번번이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다. 나는 불면증이라는 형벌을 달고 태어난 사람일 것이라는 쓰디쓴 결론에 도달해 버릴 때도 있지만 어쩌랴 그렇게 태어난 것을!!     

 그런데 어떤 때는 나의 불면증이 고마울 때도 있다. 바닷가로 여행을 가서 호텔 창문으로 보이는 밤바다를 응시하며 날을 새울 때, 거기에 둥그렇게 보름달이라도 떠있는 날이면 나는 잠 자는 것을 포기하고 몇 시간이고 그것을 쳐다본다. 그냥 그 순간이 좋다. 바다의 수면 위로 두둥실 보름달이 뜨면 바다 위에는 환하게 달빛이 어리고 보름달이 떠 있는 지점에서부터 수면은 하얗게 부서진 물결로 흔들리며 어른거린다. 나는 그 장면이 좋다. 몇 시간이고 그렇게 쳐다보다가 몸이 너무 지친 것 같다 싶으면 잠자리에 든다. 그럴 때는 단 몇 시간이라도 단꿈을 꾸면서 잘 자기도 하고 자고 일어난 뒤에도 가뿐하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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