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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Apr 08. 2022

수니온 곶

에게 해의 신화가 탄생한 곳

  수니온 곶은 아티카 반도의 남쪽 끝에 있다. 아티카 지역은 아테네, 에레우시스, 마라톤 등 그리스의 심장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이곳엔 옛날부터 그리스인들의 영혼과 정신을 지배했던 신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실제로 그곳에 가보면 이곳이 왜 신화를 품을 수밖에 없는 곳인지 단박에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육지의 툭 튀어나온 맨 끝, 곶이라고 지칭하는 바위투성이의 절벽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바쳐진 신전이 허물어진 모습으로 쓸쓸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녁이 되면 포세이돈 신전 뒤에 드리우는 노을이 붉게 붉게 타올라 자연의 조화 앞에서 모든 인간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그리스의 3대 일몰명소라고 하는 명성을 제쳐두고라도 이곳의 노을은 특별하게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하다. 특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까 머리를 갸웃거려 보지만 우리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아무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말해 주지 못한다. 포세이돈 신전은 총 34개의 기둥 중 지금은 15개의 도리아식 기둥과 약간의 벽으로만 남아 있지만 B.C. 444~440년에 지어져 완성되었을 때는 그 어떤 신전보다도 당당하고 웅장해서 사람들이 그 앞에서 압도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규모도 상당히 크고 신전 기둥들도 우람했을 뿐 아니라 높이도 다른 신전들보다 더 커 보인다. 신전의 정면 프리즈에는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와의 싸움 장면과 아테네인들이 살라미스해전에서 페르시아에 승리하는 장면들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바다로 나간 선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제사가 주민들에 의해 자주 거행되었고 그곳에 제단을 쌓아올렸다가 신전을 세웠다고 하는데 B.C. 5세기 말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것이 파괴되자 다시 그리스의 참주정치로 유명한 페리클레스 시대에 오늘날 우리 눈앞에 서 있는 이 포세이돈 신전이 세워졌다.      


  수니온 곶 하면 빠트릴 수 없는 신화가 있다. 바로 이 포세이돈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에게 해의 이름과 관련된 신화이다. 그리스의 앞 바다는 에게 해라고 불리는데 크게 보면 동지중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지중해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본토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남쪽 크레타 섬에 이르기까지의 바다는 에게 해라고 부른다. 그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된 데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있다.      


  고대 그리스 최초의 문명인 미노아 문명을 탄생시키고 부흥시켰던 크레타 섬의 미노스왕은 자기의 아들인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의 마라톤 들판에서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가 보낸 황소에게 죽게 되자 그에 대한 보복을 결심한다. 그 당시 그리스 바다 전역에 대한 제해권을 쥐고 천하무적이었던 강력한 자신의 함대를 거느리고 아테네를 굴복시킨 후 자신의 왕비인 파시파에가 황소와 수간하여 낳은 괴물인 伴人伴友(머리는 소의 모습이고 몸은 인간의 모습)의 미노타우로스에게 먹이로 주기위해  매년(9년?)마다 아테네에게 7명의 처녀 총각을 인신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 미노스 왕은 천재적 발명가인 다이달로스에게 이 괴물을 가두어둘 미궁(Labyrinthos)을 만들 것을 명령했고 그 괴물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크노소스 궁전 안에 깊숙이 가두었다. 미노스 왕의 무리한 요구에 지쳐가는 아테네인들을 보다 못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자신이 공물을 자처하여 크레타 섬에 숨어들게 되고 미노타우로스가 갇혀있는 미궁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 미궁은 한번 들어가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 공주는 테세우스를 도와주기 위해 그에게 실타래를 건네주고 그 실타래의 실을 풀면서 미궁에 들어갔다가 미노타우로스를 용감하게 죽이고 다시 그 실을 감으면서 미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공주를 데리고 아테네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중간 지점인 낙소스 섬에 들르게 된 테세우스는 꿈에 나타난 아테나 여신의 지시에 따라 아리아드네가 잠든 틈을 타서 아리아드네를 버려두고(그 후에 아리아드네는 낙소스 섬의 수호신인 디오게네스에게 발견되어 그의 아내가 되고 죽은 후에는 제우스의 배려로 북쪽왕관자리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아테네로 귀환한다. 그러는 중에 아버지인 아이게우스 왕에게 성공하면 하얀 돛을 달고 실패하게 되면 검은 돛을 달고 돌아가겠다고 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그대로 검은 돛을 달고 아테네 앞 바다에 도착하게 된다. 이제나 저제나 테세우스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던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은 수니온 곶의 절벽 위에 서서 멀리서 검은 돛을 단 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테세우스가 죽은 것으로 짐작하고 절망한 나머지 그대로 거기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만다. 그때부터 아이게우스가 떨어져 죽은 그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 아이가이 해로 불리어지게 되었으며 오늘날 에게 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아테네에서 수니온 곶까지 가려면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아테네 시내의 신타그마 광장 옆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게 된다. 그 버스를 타면 91번 국도를 두 시간 가량 달려 수니온 곶에 도착하는데 가는 도중에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아폴로 코스트를 지나가다 보면 그 바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로 반하게 된다. 이 해안은 안소니 퍼킨스가 주연했던 <페드라>라는 비극적 영화의 무대가 되었고 세기의 커플이었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클린 케네디가 이 해안을 달리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눈앞에 그냥 무심하게 펼쳐진 바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파랗다 못해 짙푸르러 검은  색으로 보일 정도로 진한 색이 눈을 사로잡는다. 넋이 빠져서 바다로 한없이 걸어 나가서 그 속에 풍덩 잠기는 상상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그 바다는 나에게 매혹적이었다. 중간 중간에 바위들로 둘러싸인 에메랄드 색의 작은 라군(lagoon)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독한 아름다움으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두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이 보였으므로 나는 가는 동안 한 순간도 바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니온 곶까지 가는 내내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 바다는 돌아오는 길엔 다시 또 가슴 떨리는 붉은 빛의 황혼으로 나를 유혹하고 놓아주지 않았다.         

  

  수니온 곶에 도착하기 전 해안가 멀리서부터 절벽 위에 선채 시야에 들어왔던 포세이돈 신전은 실제로 가서 보니 정말로 오랜 세월의 풍파가 느껴질 정도로 많이 파괴되고 부서지고 허물어진 모습이었으면서도 왠지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이 느껴졌다.  절벽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강하던지 머리칼은 사방으로 흩날려서 눈을 뜨기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그런 바람을 수천 년 견디었을 포세이돈 신전은 오랜 세월의 역사를 품고 말없이 장엄하게 서 있었다. 옛날에는 터키 서쪽해안으로 향하는 배들은 모두 여기서 출항을 했다고 한다. 거기서부터 옛날에는 한 달쯤 걸리던 힘들고 고된 여정을 장장 1000km나 해야 했으니 항해를 앞두고 선원들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은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원하는 제사를 바로 이곳에서 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무슨 일엔가 마음이 뒤집혀 심술이라도 한번 부리는 날이면 선원들의 목숨은 그야말로 훅 불면 꺼지는 바람 앞의 촛불에 불과할 따름이었을 테니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땅 위에서 사는 날 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날들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 했으므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절벽에 서서 주위의 바다와 지형을 둘러보면 그 옛날 이곳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가졌던 의미가 주는 분위기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앞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고 바람은 유난히 거칠고 사나운 데다가 절벽 아래의 물살 또한 몹시도 거칠어서 항해를 앞둔 사람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그 무거운 마음을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신화와 역사의 장소이지만 현대의 그리스인들에게나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는 그지없는 풍광과 신전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뭇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이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신전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전을 짓는 안목에 대해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육지의 끝, 곶이라는 장소의 쓸쓸함과 바위 절벽이라는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가 자아내는 상승효과를 노려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바치는 신전을 짓는 장소로 택했다는 것은 풍랑을 일으켜 뱃사람들을 죽이곤 했던 진노의 신 포세이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최적의 장소였을 것 같다.      

       

  수니온 곶의 바로 앞 바다에는 마크로니시(Makronisi) 라고 불리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바로 우리에게 영화로도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메넬라오스가 파리스와 도망갔던 자기 처 Helene를 다시 트로이에서부터 데리고 돌아오다가 잠시 이 섬에 들렀다는 신화가 있다. 그래서 그 섬을 헬레네 섬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그리스의 이름 있는 곳은 어느 곳이나 신화와 전설이 없는 곳이 없지만 수니온 곶이 위치한 이 지역은 유독 신화나 실제 역사의 스토리가 갈피갈피 배어있는 듯 했다. 이 섬은 또한 <기차는 8시에 떠나네>와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메인 테마곡인 <조르바의 춤>, 영화 <페드라>의 삽입곡 등을 작곡했던 세계적인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군부독재기간 동안 투옥되고 고문당했던 섬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치열한 내전을 치른 고난의 그리스 현대사 속에서 그리스 민중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노래들을 작곡했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리스 국민들에게 삶의 등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으로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이 섬에서의 기억을 아직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악몽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 섬은 그러한 악명을 뒤로하고 지금은 무인도로 쓸쓸히 수니온 곶 앞바다에 떠 있다.     


  또 이곳에서 약 500m쯤 떨어진 곳에는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도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신전 터의 흔적들만 남아 있다. 그 외에도 근처에 있는 제단에서는 메넬라오스 함대가 트로이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수니온 곶 근처를 돌다가 갑자기 아폴론 신이 쏜 화살을 맞고 죽은 배의 키잡이 프론티스(Phrontis)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른 후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머리를 조아렸다는 이야기도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서 전해지고 있다.     


  신전 기둥 아래쪽에는 1810~1811년에 그리스를 여행하였던 영국의 낭만파 계관시인 바이런(Byron)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바이런은 1810년에서 1811년까지 2년간을 그리스에 머물면서 수니온 곶을 여러 번 찾아왔다가 이 포세이돈 신전을 보고 그 아름다움과 역사성, 신화에 얽힌 이야기에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신전기둥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터키의 오랜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그리스의 독립전쟁에 자진해서 참여하였다가 전쟁 중에 말라리아에 걸려 3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가 그리스와 수니온 곶에 유난히 매료된 것은 일찍 죽게 될 그의 팔자소관이었는지 얄궂은 운명의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젊디젊은 나이에 뭇 사람들의 가슴을 흔드는 매혹적인 시들을 발표하고 인생을 꽃피울 나이에 죽은 그의 삶은 천재에 어울리는 비극적 운명이었던 것 같다.


  이곳은 저녁 무렵 일몰 때의 풍경이 일품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부러 저녁 시간에 때맞춰 이곳을 찾는다. 우리도 일몰을 보기 위해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 유명하다는 석양을 볼 수 있었다. 과연 그 석양은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은 황홀한 광경이었고 장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제껏 내가 본 일몰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한 것이었다. 아니, 최고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그 아름다운 석양은 주위의 모든 것들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며 오래도록 타올랐다. 하늘 전체가 벌겋게, 장엄하게 물들어 가는 광경은 수니온 곶의 일몰에 대한 사람들의 찬사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조용히 웅변하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 보아도 질릴 것 같지 않은 그 멋진 일몰은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장엄하고 찬란하게 타올랐으므로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에 관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우리 앞에 던져놓는 듯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날의 일몰은 그날따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유난히도 길게길게 오래도록 이어져서 우리가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쉽게 발길을 돌려 버스에 오른 후 해가 진 뒤에도 서쪽 하늘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어서 버스에 앉아서도 고개를 돌려 계속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신화 속 아이게우스 왕의 영혼이 그렇게 오래도록 절절하게 안타까운 마음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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