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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Oct 15. 2023

프랑크푸르트 4.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전날, 아테네에서 돌아온 그 다음 날엔 그동안 벼르고 있기만 했던 강 건너 슈테델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목적지가 가까운 곳이라 한가로운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호텔에서 불과 4~5분 거리의 마인 강변에선 시민들이 아닌 관광객들인 듯한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약간 피곤한 듯 벤치위에 앉아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앉아 무언가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주섬주섬 간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사람들을 눈여겨 보다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이상한 광경도 보았는데 바로 강속에서 헤엄치며 먹이를 찾아야할 오리들이 몇 마리씩 짝을 지어 머리를 처박고 잔디틈을 뒤지며 먹이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도 닭들이 모이를 줍고 돌아다니는 모양새였다. 오리들도 닭처럼 저렇게 먹이를 찾기도 하나 거기에 대해선 나는 아는 바 없지만 내가 갖고있는 상식을 뒤엎는 광경인 것 같아서 너무 신기해 보였다. 아마도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이라든가 던져주는 음식에 이미 단단히 길들여진 것 같았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한국에서 흔히 보았던 오리보다 등치가 한 배 반은 되는듯이 커서 오리가 아니고 거위처럼 보였다. 재미있는 애들이었다.

  저번처럼 아이제르너 슈텍 다리를 건너자 바로 눈앞에 슈테델 미술관의 건물이 보였다. 건물이 그리 크게 보이진 않았으나 신고전주의 양식의 깔끔한 모습이 안정감 있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곳 남쪽 마인강변은 무제움스 우퍼(Museumsufer )(박물관강변)이라고도 불린다. 베를린에 있는 무제움스인젤(Museumsinsel)(박물관섬)에 다섯 개의 중요한 박물관들이 모여 있듯이 여기에도 슈테델 미술관을 비롯해 영화박물관 통신박물관 등등이 이쪽 강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하루 종일 다리가 허락하는 만큼 돌아다니면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여기에는 무려 15개의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있는데 우리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것은 그중 통신박물관(Communication Museum)으로서 들어가는 입구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전시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로비에서 한 무리의 양떼들을 볼 수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구식 전화통이 얼굴이고 네 개의 발은 수신기, 몸통은 까만 색의 전화줄을 꼬으고 뭉쳐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인지 “예술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비유가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통신박물관의 취지에 딱 맞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영화박물관과 이콘박물관과 실용박물관에도 관심이 갔지만 시간이 없어 못 보고 온것이 아쉽다.

  슈테델미술관은 14세기부터 현대까지 총 2700점의 회화와 600점의 조각을 소장하고 있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컬렉션 중의 하나이다. 렘브란트, 모네, 르노와르, 뒤러 등의 중세 독일과 네덜란드의 회화, 14~18세기 이탈리아 회화, 현대 입체파와 인상파, 표현주의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나에게 가장 특별했던 작품은 빌헬름 티쉬바인이 그린 <캄파냐의 괴테>였다. 괴테의 <파우스트> 를 읽으면서 문장속에 있는 그 통찰과 서정성에 매료되었던 젊은 시절이 떠오르는 듯 했다. 괴테는 흉내낼 수 없어서 슬프고 깊은 가르침과 생에 대한 이해와 관조 때문에 배워야 하는 영원한 스승이다. 가까이 가서 설명을 더 자세히 읽으니 괴테의 발 두 개가 모두 왼쪽 발로 그려져 있다는 내용이 있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그렇게 큰 대작을 그리면서 집중력의 한계가 왔던 것인지 모르겠다. 화룡점정이 아니라 옥의 티가 되어버린 것을 그가 나중에라도 깨달았을까. 애교있는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때마침 스테델미술관에서 하고 있었던 특별전

 <Herausragend Das Relief>

(현대작가 걸작선)에 전시된 그림 위주로 봤는데도 워낙 작품들이 많아서 가장 마지막 전시실과 나머지 상설전시 작품들은 휙 눈으로만 보고 나왔는데도 4시간 넘게 있다가 미술관을 나올 수 있었다. 인상에 남는 작품은 고흐의 초기 작품인 <두에넨의 농가> (1885년) 였는데 고흐 특유의 붓 터치가 안 느껴지는 것이었지만 시골 농가의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이 실물 그대로인 듯 재현되어 있었다. 고흐의 작업에서 대상을 미화하고 예쁘게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되 그에 대한 진한 애정이 담겨있는 그림이었다.

  키르히너(Kirchner)의  <두명의 영국 댄서>와 <누워있는 여인>은 처음에 색채의 현란함과 인물 구도를 보면서 앙리 마티스의 작품으로 오해했다. 순간적 동작을 포착해서 표현내고자 하는 그의 강렬한 욕망이 엿보였다. 키르히너의 또 다른 그림<뮐러의 머리와 꽃>(1928) 역시 마티스의 그림으로 오해했었다. 왜 자꾸 그의 그림이 마티스와 혼동되는지 모르겠다. 빨간색을 많이 써서 그럴까? 꽃이라는 소재가 겹쳐서 그럴까? 모를 일이다. 어쨋든 내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었다.

  샤갈(Chagall) 의 그림도 빠지지 않고 있었다. 그의 그림에선 언제나처럼 몽환적인 배경을 뒤로하고 사람들이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며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꿈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의 그림은 언제나 옳다. 배경에 등장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둥근 돔 지붕과 십자가는 그의 전 생애를 지배하는 등불이었을까? 읽던 편지를 손에 들고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날아가는 그림 속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가기에 바쁜 것 같았다.

  피카소의 조각 하나는 여자의 두상이고 그림 두 점은 모두 남자의 두상을 주제로 했는데 조각 작품

<Female Head  >(1932)에는 역시나 그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두상 중 하나인 <Portrait of Fernande Olivier>(1908) 는 초기 작품인데 화풍이 몽상적이어서 리오넬 파이닝거(Lyonel Feininger) 와 댦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 내가 마티스의 작품으로 오해했던 키르히너를 뒤로 하고 다른 전시실에 갔더니 거기에 진짜 마티스 작품이 있었다. 하나는 청동으로 된 부조로서 <등>(Back)(1909)이라는 작품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꽃과 접시>(1913)라는 정물화였는데 초기 작품으로서 온통 푸른 색의 색조가 인상적이었다. 부조 작품에서는 실제보다 큰 몸매를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 선을 단순화 시키고자 노력했던 그의 첫번 째 시도가 보이고 정물화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3차원의 세계가 아닌 일차원적 평면으로 대상을 치환한 작업이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었다. 사기접시는 파란 달처럼 높이 떠 있다.

  조각 작품 중에서 가장 눈에 뜨였던 것은 Konstantin Brancusi 의 < The Kiss>(1907/08) 였다.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꼭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 키스가 그처럼 달콤하고 사랑이 그처럼 영원하면 좋겠다.

  특별전 말고 상설 전시 작품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외 작품들은 독일과 네덜란드, 이태리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았다. 어떤 작품에서는 레이스의 무늬 하나 하나를 극사실적으로 그려놓아서 내 발걸음을 오래동안 멈추게 만들었다 특히 정말 웃으면서 보았던 것은 전시실 하나가 온통 모조품으로 채워진 것이었는데 작품을 사들일 때 작가의 유명세만 믿고 가짜를 진짜로 착각하고 큰 돈 주고 산 것들을 따로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는 일어나기가 희박한 일이었겠지만 저런 일도 있을 수 있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벨라스케스의

  <어린 왕녀의 초상화>였다.


  그외에도 로댕의 작품이라든지 모네, 세잔, 르노와르, 뒤러, 렘브란트, 장 드 부페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독하게 마음 먹고 자기들의 보물을 몽땅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소산 같았다. 여기에 전시된 작품들이 그 작가들의 대표작들은 아니었을지라도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여러 작품들을 한꺼번에 보면서 각 작가들의 화풍과 스타일, 연대적 변천사 등을 보면서 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기회로 삼을 수 있으므로 들인 돈과 시간 정력이 아깝지 않을 터이다.


  여기 슈테델 미술관의 특색 중 하나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미술 수업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명화들을 직접 보면서 설명을 듣고 흉내내서 그려본다면 훨씬 생생한 수업이 될 것이고 그림에 관심있는 학생에겐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명화들을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직접 가까이에서 보면서 자랄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체력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을 듯 해서 미술관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4년 전에 식사를 하면서 프랑크푸르트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다시 들르겠노라고 생각했던 식당을 어렵사리 찾아 들어가서 작센하우젠( Sachsenhausen) 에 와서 안 마시고 가면 서러울 사과와인(Apfelwein)을 곁들여 식사를 했는데 튀겨서  나온 돼지다리요리 (Schweinehaxen)은 원래 2인용이었는지 다 먹기엔 무리였지만 어쨋든 맛있었다.


   밥도 먹고 몸이 좀 회복되자 다시 다리를 건너서 뢰머광장으로 갔다. 거기서 내가 눈여겨 보아 두었던 가게로  가서 독일식 목조주택 미니어처를 하나 샀다. 언제부터 죽 사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식 목조주택 (Fachwerk Haus)은 벽 사이사이에 들어간 나무 지지대가 몹시 아름다우며 보기보다 튼튼해서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는 것으로 알고있다. 모양 자체가 아름다워서 언제봐도 그리움을 자아낸다. 보고 있으면 중세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전차가 다니는 길울 건너서 파울 교회( Paulskirche)로 갔다. 이 교회는 이 도시에 살 때 수백 번 지나치면서도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오늘 비로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가 보고자 했던 나의 의도는 그러나 처음 입구에서부터 좌절되었다. 무슨 행사가 있어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는 거였다. 묘하게 나와 맞지 않는 인연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교회 건물을 겉으로만 보며 벽에 붙어있는 설명들을 꼼꼼히 읽어봤다. 벽에는 존 에프 케네디의 얼굴이 부조로 붙어 있었고 그가 1963년 6월에 독일과 전 세계를 향해서 선언했던 말을 새겨 놓았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대서양 세대에 대해서 우리의 적들에게 과거의 이상과 비젼, 목적지향성과 단호함을 양도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다른 쪽 벽에는 독일 초대 대통형이었던 테오도어 헤이스(Theodor Heiss)의 부조가 있었다 “위대하며 우리 시의 진실한 친구이며 학문의 친구“였던 그를 기리고 있었다. 1848년에 최초의 국민의회가 열렸던 곳으로서 지금은 교회의 기능은 없어지고 행사장으로 쓰이며 프랑크푸르트 출판 평화상과 괴테의 상 시상식이 거행되고 있다. 교회 앞에는 높다랗게 독일혁명 기념탑<Denkmal der Deutschen Revolution>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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