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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땅구 02화

땅구

1. 축복과 저주(02)

by 유봉

띠~띠~

날카로운 경적음과 동시에 선정이 소리쳤다.

“단구야 위험해!”

끼이익~

빨간색 씨티백 오토바이가 급제동을 하며 아이 앞에 멈춰섰다. 가까스로 충돌은 피했지만 놀란 운전자가 상기된 목소리로 아이를 나무랐다.

“얌마 너 앞에 안보고 다녀!”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는 발걸음을 멈췄지만 여전히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다행이 아이가 그리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어디가 잘 못 된 것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서 계속 중얼대었다. 아이가 들은척도 하지 않자 황당한 것은 운전자였다.

“야! 너 안들려?”

샛노란 염색머리를 나풀거리는 청년은 헬멧도 없이 인도를 질주한 자신의 잘못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타박했다. 그리고는 씹던 껌을 바닥에 내뱉으며 오토바이에서 내려섰다. 그 모습이 적잖이 불량스럽게 보였다. 부산스레 달려온 선정이 아이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20대 청년을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아줌마. 애가 이렇게 위험하게 다니는데 뭐하는 거에요!”

역시나 불량스런 말투였다.

“죄송합니다.”

선정의 거듭된 사과에 잔뜩 짜증이 나 있던 청년도 더는 화를 내지 못하였다. 자세히 보니 아이의 상태도 온전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해봤자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자 청년은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 와중에도 선정의 굽신거림은 계속 되었다.

“아 됐어요. 길이나 비켜요.”

청년이 툴툴거리며 시동을 거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갑작스레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핸들을 잡고 있는 청년의 팔뚝을 가차없이 물어버렸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년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아이의 머리를 밀쳐냈다. 선정도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다.

“단구야. 안 돼!”

그녀는 아이를 떼어놓기 위해 뒤에서 끌어안아 당겼다. 동시에 청년이 있는 힘껏 팔을 뿌리치자 아이가 떨어져 나갔다.

아침마당에 벌어진 한바탕 소동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런 씨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팔뚝을 부여잡은 청년이 거칠게 욕지기를 해대었다. 하지만 아이가 더 가관이었다. 엄마에게 붙들린 채로 청년을 매섭게 노려보는 아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발버둥을 쳐댔다.

“너 왜 이래? 응?”

선정은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했다. 처음으로 목격한 아이의 공격적인 행동에 놀란 심장이 요동을 쳤다.

‘거짓말이 아니었어.’

지난 일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단구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일주일도 안되어 같은 반 아이의 귀를 물어 뜯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이 피가 살짝 베어 나오는 정도의 상처로 그쳤고, 그 후로 쓰러진 단구에게 네 명의 아이가 달려들어 폭행을 가했기에 단구의 피해정도가 훨씬 심각하였다. 그렇지만 담임은 양측 부모간에 화해를 권고했다. 가만히 있는 아이를 단구가 먼저 공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선정은 그 말을 지금까지도 믿을 수 없었다. 그저 상대 아이들 중 누군가의 부모가 돈봉투를 쥐어줬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아이를 안아주는 것 밖에는.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작고 못생겼어? 엄마도 내가 괴물 같아?”

품에 안긴 단구의 질문은 그녀를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학교에 가면 친구가 생길거라고 그렇게 들떠 있던 아이가 맞딱뜨린 현실이 놀림과 괴롭힘 이었을거라 생각하니 그녀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 사건이 있고나서 단구는 등교를 거부했다. 선정은 고민 끝에 아이의 휴학을 결정했다. 그렇게 새장밖으로 첫 날개짓을 한 아기새는 얼마가지 못해 다시 새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일년이라는 시간을 새장 속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어미새의 보살핌으로 아기새는 평화를 되찾았으나 문제는 아기새가 스스로의 세상을 새장 안으로 규정시켜 버린 것이었다.

“나 안 갈래. 친구 필요없어!”

단구는 학교에 가는 것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정은 단호했다. 더이상 학업이 뒤쳐지게 되면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거란 생각에 아이를 설득했다. 새 옷과 새 신발, 이미 새 것이던 가방까지 다른 것으로 바꿔주며 말이다. 그렇게 단구는 엄마의 등에 떠밀려 1학년으로 재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잘 지내라며 간식까지 챙겨 주는 어미의 지극 정성은 단 이틀만에 물거품이 돼 버리고 말았다.

또 다시 단구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동료에게 일을 맡기고 학교로 달려 간 선정은 믿기 힘든 말을 전해 들었다. 단구가 가만히 있는 아이들을 밀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욕까지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단구가 무서워 옆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선정은 난감하기만 하였다.

“아이가 집중을 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꽤나 심각해 보이는데 병원치료를 받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선정은 담임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반에서 제일 키가 작은 아이 보다 반 뼘은 더 작은 체구를 가진 것이 단구였다. 그런 아이가 어떻게 친구들을 무섭게 한다는 말인가? 선정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엄마를 끔찍이 아껴주는 착한 아이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벌레같은 새끼!”

단구의 입에서 터져나온 욕설에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기껏해야 어른 키의 반만한 체구의 아이가 20대 청년을 향해 내뱉은 말은 당돌함을 한참 넘어서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는 정말로 한판 붙어보자는 식의 기세를 뿜어대고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당하는 이만큼 황당함을 느낄 사람은 없었다.

“뭐?”

청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선명한 이빨 자국과 함께 핏물이 고인 상처를 한번 쓰윽 살핀 청년은 기가 찬 표정으로 다시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선정이 나섰다.

“김단구. 너 정말 혼날래!”

억눌려 있던 감정이 터져 나온 듯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이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었을까. 한마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함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다. 그리고 차츰차츰 슬픔으로 물들어 갔다. 하지만 엄마보다 더 큰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는 단구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이런 병신새끼!”

단구는 더 큰소리로 외쳤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패악질을 부린다면 어느 부모가 있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정말 내 손으로 키운 아이가 맞는건가? 내가 알던 그 착한 아이가 맞는건가? 선정의 혼란스런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지도 몰랐다. 아무리 상대가 어린아이라고 해도 이런 심한 모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뜩이나 첫인상 만으로도 충분히 불량스러운 상대였다. 선정이 흘끗 보니 청년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줌마. 이 새끼 왜 이래? 정신 이상한 애야?”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는 곧바로 발길질이 날아올 듯한 위압감이 전해졌다. 청년이 지척에 이르자 선정이 얼른 단구를 품에 안으며 보호했다.

“죄송합니다. 아픈 아이에요. 제가 대신…”

그녀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또 다시 단구가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병신 장애인 새끼”

선정은 재빨리 단구의 입을 틀어 막았다. 단구는 계속 말을 하려 했지만 읍읍 소리만 전해질 뿐이었다.

“이런 싸가지없는 새끼.”

청년이 위력을 행사하려는 듯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모습에 선정은 낮은 비명을 지르며 단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얼른 등을 돌려 청년의 손길이 닿지 못하도록 했다. 어느새 더욱 몰려든 구경꾼들이 놀란 표정으로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지금의 그림은 동네 불량배 하나가 가엾은 모자를 핍박하는 상황이었다. 으슥한 골목이라면 모른 척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청년은 흉포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구경꾼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사람들은 아이에게 손찌검을 가하려는 청년을 보며 하나 둘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리를 좁히며 다가들었다. 사람들의 노골적인 압박에 청년은 아이를 혼내려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지 허공에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선정이 움찔하자 모여든 사람 중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그만하쇼!”

청년이 발끈했다.

“뭘 그만해요. 피해자는 난데. 저 좃만한 새끼가…”

그때였다. 상황이 급반전을 맞이했다.

“으아악~”

단구가 머리를 부여 잡으며 괴로운 듯 비명을 질러댔다. 그 고통이 절로 느껴지는 소리가 장난이나 꾀병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린아이가 이런 신들린 연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말 신들린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선정은 제 품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는 단구를 보며 물었다.

“단구야 왜 그래?”

괴로움에 몸부림 치던 아이는 결국 바닥에 모로 누웠다. 그리고 몸을 잔뜩 웅크리며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으아아~”

아이의 처절한 비명에 선정은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어디가 아픈건데? 응? 말 좀 해봐 단구야!”

사람들은 청년이 무슨 짓을 했을거라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청년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아이와 엄마와 함께 청년을 완전히 둘러쌓다. 그 중 몇몇은 옆 사람과 말을 주고 받으며 청년을 범인으로 확정지었다. 그러자 당황한 청년이 억움함을 호소했다.

“나 아무짓도 안 했어요. 다들 봤잖아요.”

또 다시 아이의 괴성이 거리에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이제서야 아이가 걱정되는 듯 시선을 집중했다.

선정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그녀는 울며불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사람들 모두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굴렀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갔고 결국 거리 한복판이 사람들로 인해 막혀버리는 지경이 되었다. 그럴수록 아이의 비명소리는 더욱 더 커져만 갔다. 일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깐만요. 비켜주세요.”

이제 막 상황을 인지한 듯한 남자가 인파를 헤치며 다가섰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어깨에 맨 두터운 서류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무릎을 꿇었다. 전형적인 비즈니스맨 스타일의 남자는 약간 퉁퉁하고 앳된 얼굴이었지만 앞머리가 많이 벗겨져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쳐진 눈매가 선하고 친숙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가 아이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원래 아픈 아이에요?”

“그게…”

선정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대었다. 그렇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녀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남자는 단구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물었다.

“꼬마야. 내 말 들리니?”

단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지쳐버린 건지 더는 괴성을 질러대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신음과 간헐적인 비명은 계속되었다. 남자가 단구를 바로 눕히려 시도했지만 그럴수록 단구는 몸을 웅크렸다. 천적을 만난 고슴도치 처럼 말이다.

“처음 이런거에요?”

남자가 다시 선정을 향해 물었다.

“예? 아니..”

직접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이런 상황을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그때는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란 걸 알 지 못했다. 선생들의 말로는 쓰러진 단구를 양호실로 옮겼더니 멀쩡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후로 병원에서도 쓰러진 원인에 대한 특별한 소견을 내지 못했다. 당시의 의사 말로는 아이들은 원치 않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종종 이런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꾀병이라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단구의 상태가 어떻게 꾀병이라는 말인가.

“어머니. 침착하세요.”

선정의 대답이 시원치 않자 남자가 이번에는 그녀를 똑바로 보며 진정시켰다. 남자의 복장 때문일까 딱히 의사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의 서글서글한 눈매에 선정은 약간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남자가 말했다.

“아이가 먹는 약 있어요?”

잠시 생각하던 선정이 이번에는 빠르게 대답했다.

“영양제 말고는 없어요.”

“그럼 약 때문은 아니군요.”

남자가 여기저기 살피는 사이에도 단구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갔다. 혈색이 창백해진 상태로 식은땀을 줄줄 흘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 아니라는 듯 단구는 머리를 쿵쿵 땅에 찌으며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안 돼! 단구야. 그러지마. 제발 하지마.”

선정은 식겁하여 단구의 머리를 손으로 떠받쳤다. 그 상태로 그녀는 엉엉 울며 눈물을 뿌려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는 안되겠어요. 병원으로 가요.”

남자가 아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선정에게 가방을 부탁한 그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고 인파를 벗어난 남자가 아이를 품으로 꼭 끌어안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품에 안긴 단구는 기운이 다해 축 늘어져 있었고 그 뒤를 반쯤 넋이 나간 선정이 눈물을 훔치며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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