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복과 저주(03)
“목소리가 들린다고요?”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써 내려가던 그의 오른손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평생동안 골방에 박혀서 책만 읽었을 것 같은 고루한 인상을 가진 의사는 길게 패인 이마의 주름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가 이런 표정 변화를 보인것은 진료를 시작한지 십분만에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해 진료보다는 상담에 가까웠다. 아이의 엄마가 두서없이 말하는 것들을 그가 정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조금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정서적 불안으로 인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네. 맞아요.”
침울한 목소리였다. 한 시간 전에 벌어진 소동으로 인해 선정은 심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직도 두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얼굴에는 혼란이 가시지 않았다. 의사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애써 눈을 크게 떠 보이며 거짓이 아님을 피력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그 자신감 없는 얼굴에 드러났다. 의사도 그것을 느꼈는지 처음으로 단구를 향해 질문을 했다.
“엄마 말이 진짜니?”
단구는 진료실 구석 창가에 앉아 있었다. 진료실 안이 꽤나 넓었고 책상이 창가에서 먼 곳에 배치되어 있었기에 의사와는 7,8미터쯤 떨어진 자리였다. 진료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곳이 제 자리라는 듯 찾아가 앉은 단구였다. 선정이 두 번씩이나 단구를 들어다 책상 앞에 앉혀 놓았지만 단구는 잠시를 못 참고 또르르 제자리로 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선정이 먼저 의사와 상담을 진행했고 그 사이 단구는 블라인드를 통째로 들추고서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지금은 어른들의 대화에는 관심없다는 듯 유리창에 코를 바짝 대고서 바깥 세상에 빠져 있었다.
단구가 대답이 없자 선정이 나섰다.
“단구야. 이리 와.”
역시나 반응이 없자 선정은 목소리를 높였다.
“김단구!”
창문 너머 세상에 심취한 단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휴 쟤가 정말.”
민망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선정을 의사가 제지하며 물었다.
“항상 저렇게 혼자 있나요?”
의사는 블라인드 뒤로 숨은 단구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동그란 금테안경이 콧잔등 위를 미끄러져 내리자 거추장스럽다는 듯 벗어버렸다. 그것은 그저 예민해 보이는 얼굴을 커버하기 위한 악세서리에 불과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신경쇠약에 걸린 듯 깡마른 그의 맨 얼굴은 안경을 썼을 때 와는 완전히 다르게 날카롭고 차가워 보였다. 마치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몇날몇일을 고립된 병사처럼 잔뜩 날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누구라도 그가 안경을 벗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 같았지만 선정에게는 그 모습이 왠지 더욱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선정은 의사의 사연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격도 밝아 보이고 사람을 딱히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도 않는군요.”
의사가 말을 꺼내자 어정쩡한 자세로 있던 선정이 바르게 고쳐 앉으며 말했다.
“원래는 유별날 정도로 밝은 아이에요. 장난도 많이 치고요. 처음 학교에 간다고 했을때는 친구들 사귈 생각에 엄청 들떠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사람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아요.”
의사는 선정과의 상담을 기록한 노트를 집어들었다.
김단구, 남아, 9세, 초진
신체 발달 장애(호르몬 결핍증)
활발한 성격
대인관계 기피(8세 전후)
극단적 행동장애(공격성 표출)
발작성 쇼크(극도의 불안증세)
상황을 벗어나자 멀쩡해짐(공황장애?)
환청?
붉은색이 감도는 마호가니 원목 책상에 상체를 바짝 기대 앉은 의사는 잠깐의 시간을 노트에 집중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아이는 분명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증상들은 별다른 의심없이 하나의 병명으로 귀결되었다. 몇가지 테스트만 거친다면 진단을 내리는 것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의학이란 암덩어리를 찾아내 제거하는 그런 명료한 학문이 아니었다.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분석이 제대로 이루어 져야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했기에 조금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엄마에 대한 내제적 판단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정신적 문제를 분석해 보면 98프로 이상이 어른들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중 가장 높은 확률로 부모의 학대나 정신병력이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를 부인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아이들의 문제에 접근할 때에는 조금 더 세밀한 관찰과 부모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일은 주로 소아정신과 전문의 또는 심리상담사 혹은 아동범죄 수사관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1999년도의 대한민국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찾아볼 수 없는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언제나 어느 분야에서나 선구자는 있게 마련이었다. 그 자는 연일 신문과 매스컴 인터뷰를 통해 정신의학과 아동심리학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며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에게 꼭 진료를 받아야겠다며 한달 전부터 예약한 여인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삽심대의 여인은 놀란 가슴을 애써 짓누르며 조심스런 말투로 상황을 전달해 왔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고 있는 아이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유유자적한 아이와는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 아이는 분명 혼자만의 비밀을 품고 있을 것이고 그 비밀을 풀어내는 것은 이제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 앞에 선 보호자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통로가 되어줄지 벽이 되어 가로막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에서도 오늘같은 일이 벌어졌나요?”
의사는 노트를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게… ”
선정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표정에서 심한 내적 갈등을 숨길 수 없었지만 의사는 개의치 않고 다시 물었다.
“친구들을 공격한 건가요?”
공격이라는 무겁고 무서운 표현은 망치가 되어 선정의 가슴을 두들겼다. 두 번이나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인정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녀의 대답이 개운치 않았다.
“그런 것 같아요.”
“아이는 뭐라고 하던가요?”
선정은 가여움의 눈빛으로 자신의 아이를 바라 보았다. 멋모르는 아이는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분명 다른 아이들이 먼저 놀리고 괴롭혔다고 했어요.”
선정은 단구가 어떤 놀림을 받았는지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다만 그 씁쓸한 표정에서 참고 넘길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단구가 먼저 싸움을 일으킨 건 맞지만 결과적으로는 여러명의 아이들이 달려들어서 단구를 일방적으로 때린 거에요. 그치만…”
그녀가 또 말끝을 흐리자 의사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학교의 입장은 달랐군요?”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모습에 연민을 가질 법도 했지만 그는 상대의 감정에 전혀 동조해 주지 않았다.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의 몸속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생겨나게 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어떤 면에서는 더욱 효과적이었다. 상대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하여 객관적 사실을 이끌어내는 일 말이다. 그는 어쩌면 정신과 전문의 보다는 사립 탐정이 더 어울릴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단구를 무서워 한다네요. 맞은 건 우리 아이인데…”
선정의 씁쓸한 한숨이 주변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려 했지만 의사는 그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군요.”
선정은 숨을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단구가 종종 혼잣말을 했대요. 가끔씩 혼자 낄낄대고 웃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단구를 멀리했는데 단구가 끊임없이 아이들을 귀찮게 했대요. 그러다 하루는 덩치가 큰 아이한테 단구가 갑자기 달려들었다고 해요. 그리고는 귀를 마구 물었다는데… 그 모습에 몇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몇 명의 아이들이 단구를 말리는 과정에서 폭행을 한 거라는게 학교측 얘기에요.”
“평소에는 그런 모습을 안보였나요?”
의사의 표정이 다시금 심각해졌다.
“집에서는 말썽 한번 안부리는 아이에요. 아마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을 거에요. 원래는 사람을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보시다시피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한뼘이나 작아서 누구와 싸운다는건 잘 상상이 안됐어요.”
의사는 선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실관계는 단정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아들의 말을 믿고 있었던 듯 했다. 적어도 오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많이 혼란스럽겠군요.”
“지금도 잘 안 믿겨져요. 아까 본 게 정말 내 아이가 맞는지.”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자 선정의 눈시울이 금새 다시 붉어졌다. 의사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블라인드 사이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단구는 흥미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머쓱한 상황에서도 그는 머릿속으로 선정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이내 그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집에서도 혼잣말을 하나요?”
선정이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가끔이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음… 혼잣말을 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이죠. 다만,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게 걸리네요. 아이가 환청을 듣는다고 하셨는데 그것과 대화를 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의사는 단구의 증상을 환청으로 규정해 버렸다. 그 때문에 선정의 표정은 더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말인데 그 목소리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선정은 말을 꺼내는 것을 주저했다. 하지만 눈빛으로 종용하는 의사를 보며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저도 잘 알지는 못해요. 그저 아이가 몇 번 얘기한 것 밖에는 없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그게… 목소리가 들려서 시끄럽다고…”
누가 듣기라도 할까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그녀의 태도가 이상했지만 의사는 신경쓰지 않는 척 했다.
“그게 다인가요?”
“네. 자세히 묻지는 않았어요.”
의사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그녀의 인상은 조용한 시골에서 살다 이제 막 서울에 올라와 모든것이 조심스러운 아낙에 비유하면 적절할 듯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투나 행동으로 보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은 낮아 보였다. 보통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의존성과 애착을 강하게 나타낸다. 그녀의 사소한 행동에서도 자녀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엿볼 수 있었다. 분명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인이었다. 그런 엄마라면 아이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가 걱정되어 애가 타는 와중에도 아이의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선정이었다.
“역시, 정신분열증 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녀를 보며 의사는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알고 있었군요?”
선정은 대답없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시 뜬 그녀의 두 눈에는 절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의사는 그 나름대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혹,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았던 겁니까?”
이미 처음에 던진 질문이었지만 의사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니요. 단구와 같이 병원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선정이 똑같이 대답을 하자 의사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럼…”
의사의 말을 자르며 선정이 물었다.
“선생님. 정말 우리 단구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가요?”
의사는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제발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선정의 가련한 눈빛에 가슴 한 곳이 저미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이 그의 일이자 의무였다. 깊은 한숨을 내쉰 그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환청과 망상, 격발 되듯이 터져 나오는 공격성, 회피성 발작증상. 어머님 얘기만 들어본다면 정신분열증을 의심할 만 합니다.”
그는 굳이 의심 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희망의 줄을 던졌지만, 이미 절망의 늪에 깊숙이 빠져버린 선정은 그 줄을 잡을 여력도 없었다.
선정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갈 곳 잃은 원망이 솟구쳐 올랐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이렇게 힘든 시련이 계속될까 하는 생각에 억울하고 또 서럽기만 하였다. 그 성격만큼이나 감정표현이 조심스럽고 서투른 그녀라지만 결국 두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똑똑 떨어져 내렸다. 아이가 볼까 두 손으로 얼른 얼굴을 가리며 감정을 추스리려 애를 써대는 모습이 더욱 짠해 보이기만 했다. 의사가 묵묵히 기다려 주는 가운데 그녀의 혼란한 시간은 잠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오래가지 않았다. 음울한 기운에 사로잡혔던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크게 한번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죄송해요.”
의사는 위로를 하려는 듯 한층 부드러워진 태도로 말했다.
“아직 단정할 순 없습니다. 아이와도 대화를 해봐야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쳐낸 선정은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받았다.
“선생님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이시잖아요.”
불쑥 날아온 칭찬에 의사는 담백한 미소를 지었다. 절망적인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그녀의 첫걸음이 꽤나 마음에 든 것이다. 그녀는 이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고, 그는 그런 그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일어났다.
“그건 아닙니다.”
멋적게 대답하는 의사를 보며 선정은 담담하게 말했다.
“선생님 말씀이 맞을 거에요. 아이 아빠도 정신분열증을 앓았거든요.”
“아 그렇군요.”
의사는 이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 되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그녀의 행동은 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했다. 트라우마였다.
정신병 환자를 돌보다가 정신병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신질환은 환자보다는 가족이나 보호자의 고통이 더 큰 것이 사실이었다. 그녀 역시 정신질환자를 곁에 두고서 심신이 피폐해질데로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삶의 유일한 희망인 아이가 아빠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미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이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다는 사실은 그녀에겐 절망으로 다가왔을테다. 그렇기에 애써 외면한 것인지도 몰랐다. 암에 걸렸다는 걸 인지하는 것보다 그 사실을 선고받는 걸 더 두려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허나 아직은 어떤것도 단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그는 선정의 남편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그녀의 말 때문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돌려서 물었다.
“남편분께서는 치료가 되신 건가요?”
“죽었어요. 단구가 막 걷기 시작했을 때.”
그의 예상은 반만 들어 맞았다. 죽음이 그렇게 일찍 찾아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는 남편이 어떻게 죽게 되었을지도 예상하며 물었다.
“죄송하지만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예상이 빗나가지 않자 그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드셨겠군요.”
쓴웃음으로 대답하는 선정을 보며 그는 더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이제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어 볼 차례였다. 그는 아이 엄마에 대한 진단은 그 다음으로 미루었다. 책상 위에 놓인 안경을 집어 쓴 그는 부드러운 인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아이와 얘기를 해봐야겠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단구를 향했다.
“네. 근데 단구가 대답을 해 줄지 모르겠네요.”
“노력은 해 봐야죠.”
수심 가득한 선정의 얼굴을 보며 그가 말을 덧붙였다.
“일단은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정신분열증은 유전이 되는 병이 아닙니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으니 후천적으로 그 영향을 받았을리도 없고요. 그리고 보통의 경우 15세 전후로 발현이 됩니다. 단구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에요.”
선정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굳게 다문 입술에 힘을 주어 볼 뿐이었다.
접이식 철제 의자 세 개가 복도 한쪽으로 놓여 있었다. 색이 바랜 파란색 쿠션이 달린 구닥다리 의자였다. 그 가운데에 선정이 앉아 있었다.
선정은 긴 복도를 바라보았다. 두 개의 심리검사실과 치료실을 지나 세 개의 진료실이 보였다. 그 가운데 진료실에 단구가 있었다. 그녀는 단구의 면담을 지켜보려 했지만 의사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준 그녀는 보호자 대기실로 안내를 받았지만 그곳에는 몇 사람이 세상이 끝날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선정은 그 중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시 복도로 나온 그녀는 복도 끝 창고 앞에 놓인 의자를 보았고 조용히 자리를 옮긴 것이다.
선정의 손에 박카스 한 병이 들려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있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간호사가 챙겨 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위에 담긴, 심장에 담긴, 그리고 머릿속에 담긴 모든 것들은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번 다시 아무것도 채워넣을 수 없다 해도 말이다. 그녀는 고개를 젖혀 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두 눈을 감은 그녀는 많이도 지쳐 보였다.
단구를 세상과 잠시 분리시켜 놓으면 모든게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아이조차도 본인이 아프다는 걸 모르게 한다면 자연스레 치유 될 거란 헛된 바람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단구는 세상과 단절되어 갔다. 아이 스스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벌어진 소동을 복기해 보면 단구의 증상은 더 악화된 것처럼 보였다. 나 때문이야. 선정은 자신의 바보같은 생각을 후회했다. 그래서 단구에게 너무 미안하고 속상했다. 결국 또 그녀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엄마 울지마. 단구의 목소리가 선정을 위로했다. 그 고사리 같은 손이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어주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그 작고 밝은 아이가 그녀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선정은 눈을 떴다. 낡은 가디건 주머니를 뒤져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백문조
직접 만나고 나니 더욱 믿음이 가는 이름이었다.
과거 대한민국의 정신의학은 서양의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쳐진 것이 사실이었다. 백문조 교수가 한창 학부생이던 70년대 중반에는 제대로 된 교육과정조차 갖추지 못한 의과대학이 태반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과거의 단편일지도 몰랐다. 지금에야 심리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끝임 없이 연구가 이루어지며 수도 없이 많은 석박사들을 배출해 내는 중요한 학문이 되었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 당면한 과제였기에 정신의학이 발 붙일 자리가 많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극소수의 사람만이 대한민국 정신의학의 길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한명이 바로 백문조 교수였다.
묵묵히 걸어온 그의 외길인생이 일년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아동학대 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오르내리자 사회 각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러한 배경으로 국영방송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정 폭력이 아이들의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날카롭게 풀어낸 그의 논리와 학문적 깊이에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러자 방송사들의 출연요청이 쇄도했다. 그 이후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얼마전 방영된 정신의학과 그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인해 정신의학 분야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선정이 백문조 교수를 알게 된 것도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서울대 의과대학 시절 그가 어떻게 정신의학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 외과의사가 되길 바랐던 부모님과의 갈등, 독일 뮌스턴 대학원에서의 생활, 프로이트가 그의 학문에 미친 영향, 피아니스트와의 결혼, 의사로써 또 교수로써의 신념 등등, 그의 삶을 관통한 50분 짜리 영상은 한 남자의 인생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주로 엘리트 학자로써의 삶이 조명되었지만 선정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런것이 아니었다. 영상 말미에 등장한 20대 청년 그리고 백문조 교수의 인터뷰. 그것은 정신적으로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에 전하는 메시지였다.
“자녀를 양육하는 목적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똑같습니다. 바로 자녀를 독립시키는데에 있죠. 부모가 없이 살아가야 하는 날이 언젠가는 찾아옵니다. 그때를 위해 준비를 시키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의무이죠. 정신질환을 앓는 아이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결국 사회 관계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란 겁니다. 그러니 준비를 시켜야죠. 방법이 없는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 물론 이는 사회전체가 함께 나서서 도와주어야 할 일이긴 합니다만 그 전에 부모들이 해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교수의 인터뷰 내내 보여지는 영상은 빵을 굽는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조리복을 차려입고 밀가루 반죽을 하는 모습이 꽤나 진지했지만 자세히 보면 청년의 행동이 어딘지 모르게 어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년의 엄마가 언제라도 도와줄 수 있는 자리에서 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일은 청년 혼자서 해나가고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반죽을 오븐에 넣은 청년은 엄마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 해맑고 행복해 보였다. 작은 빵가게를 운영하는 이는 바로 자폐를 가진 청년이었다. 그리고 백문조 교수의 아들이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치료는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숨지 마세요. 아이들을 관계로부터 단절시키면 안됩니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거에요. 어떠한 관계라도 좋습니다. 아이 스스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입니다.”
영상 속 백문조 교수의 마지막 말이었다.
선정이 그를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영상 때문이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없다. 이를 악물고 살아보자. 선정은 명함을 꼼지락 거리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단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