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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땅구 04화

땅구

1. 축복과 저주(04)

by 유봉

“천천히 먹어.”

입 안 가득 짜장면을 밀어넣은 단구는 쉴 새 없이 입을 오물거리며 개구쟁이처럼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선정의 입가에 절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엄마는 안 먹어?”

“응. 먹을게.”

선정은 불어버린 짜장면 몇가닥을 들어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입맛이 별로 없는 그녀였지만 단구 앞에서는 먹는 척이라도 해야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엄마한테는 세상에 없을만큼 다정하고 듬직한 아이였다. 혹여나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때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들러붙어서 애교를 떨어대는데 선정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는 짓이 제 아빠를 쏙 빼닮아 선정은 그리움을 뒤로 한 채 살아갈 수 있었다. 단구는 엄마가 먹는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젓가락을 놀려댔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만복이라는 이름의 허름한 중국집이었다. 선정의 동네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이 자그마한 중국집은 단구가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중에 제일 맛있다는 짜장면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선정이 단구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 날이면 꼭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실상은 짜장면을 미끼로 단구의 외출을 유도한다는게 정확했다. 오늘도 그렇게 해서 죽어도 가기 싫다던 병원까지 데려간 것이었다. 병원에서의 일이야 어찌 되었든 석 달만에 먹는 짜장면에 행복한 단구는 어깨춤까지 추어댔다.

“으메 덥다 더워.”

곰 같은 덩치의 사내 하나가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맑은 육수를 뽑아대고 있는 그는 만복의 주방장이자 주인장인 고상국이었다. 사계절 내내 덥다는 말을 달고 사는 그는 반쯤 벗겨진 대머리도 임산부처럼 불뚝 나온 배도 가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유니폼처럼 늘상 입고 있는 반바지와 몸에 착 달라붙는 민소매 티셔츠는 보는 사람들의 시신경에 거부할 수 없는 부담감을 선사했다. 그래서 종종 누군가는 그의 복장을 지적하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그는 항상 “몸에 열이 많아서” 라며 얼렁뚱땅 웃어 넘겼다. 우락부락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참으로 넉살좋고 인간미 넘치는 사내였다.

“오랜만이네.”

선정을 알아본 성국이 반갑게 인사했다. 선정 역시 가볍게 인사를 건냈다.

“장사는 잘 되죠?”

그녀가 인사치레 던진 말에 성국은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파리만 날리는 거 안 보여?”

험상궂은 얼굴이었지만 누가 보아도 친근한 표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성국의 말대로 홀에는 선정과 단구 둘 뿐이었다. 열 개 남짓한 테이블은 손님이 다녀간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선정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단구를 위해 언제나 혼잡한 시간을 피해 방문하는 그녀였지만 그럴 때에도 두 세 테이블은 손님들이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호황이라 하는데 상국의 가게는 반대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상국이 울상을 지으며 앓는 소리를 해댔다.

“요 앞으로 전부 재개발 들어가서 지금 사람이 없어. 장사 못 해 먹겄어.”

그의 말처럼 가게 주변으로 들어서 있는 노후된 연립 주택의 주민들 태반이 거주지를 옮긴 상황이었다.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은지 일년 밖에 안 된 상국은 장사 이후 처음으로 직면한 위기에 속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위기 뒤에는 기회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선정은 꼭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곧 공사가 시작되면 상국의 가게는 인부들로 채워질 것이고 재개발이 완료되면 그의 실력으로 보아 이 곳은 문전성시를 이루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선정은 별다른 대꾸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녀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자 상국이 얼른 말을 돌렸다.

“아 근데 안 더운가?”

시원한 바람이 부는 10월이었지만 상국은 오뉴월 뙤약볕에 농사를 짓다 온 사람처럼 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네. 괜찮아요.”

선정은 그가 무얼 먹고 그리 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흥미로운 얼굴로 상국을 보며 생각했다.

‘요리할 때마다 저렇게 땀을 쏟아내는데 살이 안 빠지는게 신기하네.’

큭. 큭. 열심히 코를 박고 짜장면을 먹던 단구가 갑자기 기침을 해댔다. 사레가 들린 모양이었다. 선정이 놀라 얼른 물을 따라 건네주었다.

“아따 체하겄다. 너 진짜 맛있어서 그렇게 먹는거냐?”

상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만 단구는 그를 보며 베시시 웃어 보일 뿐이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저리도 맛있게 먹어준다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상국 역시 기분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많이 먹어라. 그래야 빨리 크지.”

그는 더이상 오붓한 시간을 갖는 모자를 방해하지 않았다. 돌아선 그는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근데 이 여편네는 오디갔어?”

카운터 앞에 선 그는 홀을 담당하는 복희가 보이지 않자 투덜투덜 대었다. 하지만 늘상 있는 일인 듯 찾으려는 시늉 따위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카운터 위에 놓인 리모컨을 집었다. 입구 옆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을 켠 그는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뉴스가 나오자 소리를 키웠다.


[씨랜드 수련원에서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범진보 단체인 민주혁명단은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고를 통해 드러난 공무원의 비리와 유착관계에 대해 정부가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항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삼풍백화점 사태와 똑같은 전처를 밟지 않을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조용하던 가게에 티비 소리가 퍼지자 단구가 관심을 보였다. 화면속에는 분노한 사람들의 시위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의 단구는 사람들이 모여서 큰소리를 외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마. 사람들이 왜 경찰이랑 싸우는 거야?”

단구의 말에 선정이 고개를 돌려 화면을 응시했다.

“경찰이 나쁜거야?”

뚱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 단구의 입가는 온통 짜장 범벅이었다. 그 모습에 선정은 또 한번 웃음이 터졌다. 그녀가 휴지를 뽑아 단구의 입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아니야. 사람들이 다칠까봐 경찰아저씨들이 지켜주는거야.”

“사람들이 막 욕도 하고 화를 내는데?”

“그래도 경찰은 사람들을 도와줘야 해.”

선정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자상하게 말해 주었다. 그래도 단구의 심퉁난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아니야. 욕하는 사람은 나쁜거야. 내가 경찰이 되면 다 혼내줄 거야.”

“우리 단구 정말 경찰 되려고?”

“응!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단구야.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선정이 무언가를 말해주려 했지만 TV속 앵커의 멘트가 그녀의 귀로 꽃혀 들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책 중 한명으로 지목되었던 인물이죠. 장성필 전 더시티호텔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비자금과 관련해 급물살을 탔던 수사가 다시 방향을 잃었습니다. 한편, 검찰은 마카오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일부 자금 세탁이 이루어진 정황을 포착하고 관련 정보 수집에 나섰으나 비자금 관련성을 찾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선정은 몸을 돌려 TV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젊은 여성 앵커가 딱딱하게 읽어 내려가는 뉴스 기사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선정에게는 순탄해져 가는 그녀의 인생에 또 한번 브레이크를 건 사건이었다.

장성필의 죽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 사건은 불과 3개월 전의 일이었다. 검찰의 더시티호텔 압수수색이 예정되어 있던 날,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8층 그의 집무실에서 목을 메단채로.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 검찰은 수사 압박에 못이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그의 호방한 성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죽임을 당했을 거라 의심했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시티 호텔과 한섬무역. 두 사업체를 4년만에 중견기업에 버금갈 정도로 키워놓은 신망받는 기업가의 죽음. 그것이 가져온 것은 혼돈이었다. 검찰은 비자금 연관성에 대해 어떤것도 밝혀내지 못하였고 정치권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는 야당과 수사 강행을 외쳐대는 여당의 입씨름으로 연일 시끄러웠다. 이 혼란을 틈타 물밑에서는 더시티호텔의 매각을 위한 움직임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쉰 선정은 호탕하게 웃는 장성필의 얼굴을 떠올렸다. 가끔 마주칠때면 힘내라며 한마디씩 건네주던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녀 역시 황망하게 떠난 그를 안타깝게 여겼지만 거기까지였다. 그와의 인연이 깊은 것도 아니었고 자주 볼 수 있던 얼굴도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은 장성필을 지워내고 몇일 전의 시위 현장을 재생하였다.


호텔 앞의 인도를 막고 앉아 있는 200여명의 사람들. 한 여름의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채 그보다 더 뜨거운 농성을 벌이는 이들은 더시티호텔의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부당한 해고를 성토하며 고용보장을 외쳐댔다. 하지만 새롭게 호텔의 주인이 된 일본 기업은 호텔 인수조건에 고용보장 사항은 없다며 전 고용주와 해결하라는 강짜를 부렸다. 그렇게 기나긴 싸움은 시작되었다.

4년차 직원이 된 선정은 시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동료에서 이제는 절친이 된 명하의 닦달에 못이겨 참여하긴 했지만 선정은 이런식의 싸움이 정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었다. 그녀에게 시위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나 가정을 내팽개친 무책임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그녀에게 오히려 반감만 불러 일으켰다. 뒷자리에 섞여 피켓을 들고 있는 선정은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다. 몇 번이나 자리를 뜨려했지만 그때마다 “다 됐어.” “몇일만 참자.” 라는 명하의 말에 다시 후끈한 보도블럭에 엉덩이를 붙이곤 하였다.

몇일 안에 끝이 날거라던 명하의 말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양측의 대립은 어느덧 7주차에 접어 들었다. 시위대의 규모가 반으로 줄어 들었고 분위기는 지리해져만 갔다. 그때까지도 명하에게 붙들려 있던 선정은 영혼이 완전히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이런식이라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 할 거라는 불안감이 사람들 사이에 전염되어 갔다. 그렇게 사람들의 노력이 흐지부지 되는 듯 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생각한 선정은 차라리 그대로 끝나 버리길 바랬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더시티호텔은 일본의 모리야마 기업에 매각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걸쳤는지에 대한 의문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문제가 심각한데요. 해고 노동자들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50일 넘게 평화 집회를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수위에 달한 듯 시위가 점점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시위대는 오늘 처음으로 두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진압과정에서 경찰관 한명도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장 리포터의 목소리와 함께 시위 현장이 비춰지자 선정은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씁쓸한 얼굴이 된 그녀를 보며 단구가 느닷없이 물었다.

“아빠 보고 싶어?”

선정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태연한 척 되물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단구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자 선정은 괜히 또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맥락없는 질문과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 예상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이어질까 걱정이 된 것이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다.

“왜? 엄마 얼굴에 뭐 묻었어?”

단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빨리 먹어.”

“알았어.”

두 사람의 대화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선정은 도통 입맛이 나질 않는지 짜장면을 비비적거릴 뿐이었다. 이런저런 산적한 문제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괴롭혔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벌컥 열리는 출입문과 동시에 울려퍼지는 우렁찬 목소리에 신경을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아빠!”

얼마나 성미가 급한지 소년은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아빠를 몇 번이나 불러댔다. 문앞에 서서 TV를 보고 있던 상국이 말했다.

“너 왜 벌써 와?”

“중간고사 라니까.”

상국을 귀엽게 흘겨보는 소년은 만석이었다. 상국의 금지옥엽인 만석은 중학생인 듯 감청색 교복에 책가방을 둘러메고 있었다. 퉁퉁한 몸매에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이 아빠와 판박이였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부자 지간임을 모르는 이가 없을 듯 했다. 잠시 머쓱한 표정을 보였던 상국이 이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시험은 잘 봤어?”

“아 몰라~ 아빠 나 이천원만.”

친구를 대하듯 하는 말투가 버릇 없어 보일 법도 했지만 상국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만석의 약을 올렸다.

“너네 엄마한테 달라고 해.”

만석은 샐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아~ 엄마가 아빠한테 받으래.”

“엄마 또 탱자네 가 있냐?”

“응.”

귀에 쏙 박히는 재밌는 이름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몇 집을 건너뛰어 자리한 부동산, 그곳에서 키우는 진돗개 이름이었다. 얼마전 새끼를 여섯마리나 출산한 탱자 때문에 근처의 상인들이 구경을 하느라 시끌시끌 하였다. 와중에 복희가 새끼 한마리를 말도 없이 가져와 키우겠다고 부산을 떨었다가 상국과 크게 싸운 것이다. 그 이후로 틈만 나면 복희는 부동산에 가서 강아지를 보듬곤 했다. 상국은 분명 복희가 말없는 시위를 하는 거라 생각했다. 한편으로 그의 입장에선 음식점에서 개를 키우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복희의 쇠고집으로 봤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을게 뻔했다. 그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빨리 줘~ 애들 기다려.”

만석의 재촉에 못이겨 상국이 카운터 금고를 열었다.

“이천원은 뭐하게?”

“애들이랑 떡볶이 먹으려고.”

“야 고만석. 너는 아빠가 중국집 하는데 딴데 가서 밥을 먹고 싶냐?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

상국이 과장스럽게 서운함을 표현하자 만석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애둘러 넘어가려 했다.

“어떻게 맨날 짜장면만 먹어?”

구석 자리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매일 먹을 수 있는데.”

단구였다. 쥐방울 만한 꼬마가 끼어들자 만석이 짐짓 인상을 써 보이며 두 눈을 부라렸다. 단구도 지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순식간에 작은 녀석들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만석은 고작 한주먹 거리도 안 돼 보이는 단구가 가소로워 혀를 빼죽 내보이며 약을 올렸다. 단구도 똑같이 혀를 길게 내밀었다. 그러자 검은색의 양념이 입가에 잔뜩 묻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선정이 야단을 쳤다.

“밥 먹다가 뭐하는 거야?”

선정이 단구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자 만석은 고개를 휙 돌리며 모른 채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단구는 자신이 이겼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편, 선정은 만석의 우람한 덩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얼 먹고 저렇게 튼실하게 자란 걸까. 성장이 더디기만한 단구와는 너무 비교가 되자 그녀는 또 괜히 단구에게 미안해졌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휴지 한장을 뽑아 단구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밥 먹을 때 그렇게 장난치는 거 아니야.”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단구는 짜장면을 잔뜩 떠 입안으로 우겨 넣었다.

“아저씨 짜장면은 최고야. 그치 엄마?”

선정은 뭐든 가리지 않고 잘먹는 단구가 고마웠다. 그녀는 단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 단구의 몸과 마음을 더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겠다 마음 먹었다.

“단구야 그럼 우리 조금 더 자주 올까?”

“응. 병원은 빼고.”

선정은 귀신같이 눈치가 빠른 단구에게 아무것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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