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복통-스페인 여행기10

<10>세비야의 행복한 고양이와 그림 그리는 우리들

by 평양이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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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비야의 행복한 고양이와 그림 그리는 우리들


우린 다음 목적지를 세비야로 정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 도시 그라나다가 너무 좋아 새 숙소를 구해 하루 더 있기로 결정했다.

계획이 없는 여행의 유일한 장점이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과, 감정으로 내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

동은 설탕물 라면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앞으로 숙소는 무조건 주방 이용이 가능한 곳으로 추렸다.


이튿날 동과 나는 새 숙소로 장을 봐서 들어갔다.

식재료가 너무 싸서 해산물 한 무더기를 사고, 술까지 샀는데 한국 돈으로 만 원도 안 나왔다.

치킨스톡, 술, 해산물, 스페인 고춧가루, 면을 사서 해산물 파스타를 해먹었다.

배가 고픈 나머지 후딱후딱 만들었던 게 문제였을까?

소금 소태에 치킨스톡은 녹아있지도 않았고,

먹다가 덩어리를 발견해서 무안했다.


후에 동이 말하길


다동은 배가 고프면 사람이 2배속이 된다.
걸음도 말도 빨라져서 무섭다.
해산물 볶은지 10초 만에 다 익었나 뒤적뒤적하고,
다 익었네 다 됐다, 빨리 먹자 한다.
앞으로 요리는 내가 해야겠다.

라고 동의 다이어리에 적어놨다고 한다.


그렇게 여행 내내 요리는 동이 하고 나는 보조가 되었다.

짜디짠 파스타를 먹고 밤이 되고, 서늘해졌을 즈음 우리는 하겐다즈를 먹으러 뛰어갔다.

신이 난 동은 발박수를 두 번이나 치고 나는 기분이 좋아서 달리기를 했다.

타국에서 맞이하는 시원한 여름밤,

가벼운 옷차림에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고, 낯설지만 아름다운 동네를 가볍게 뛰던

그 밤은 회상하면 지금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여행에서 입을 옷에 대해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린 옷을 입고 나면 영락없는 커플룩이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신혼여행룩으로 맞춰 입고, 안 가보기 뭐 해서 알함브라 궁전에 가봤다.

사실 아침 6시쯤 현장에서 알함브라 취소 표가 풀린다고 해서 줄 서서 기다려볼까 했는데,

우리에겐 무리였다.

애초에 우린 그렇게 꼼꼼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계획을 세우고, 티켓을 사 왔겠지…

알 함브라궁전의 무료입장 구간을 보다가 우린 세비야로 향했다.


멀고도 먼 세비야에 우린 다 저녁때야 도착했고, 잊을 수 없는 ‘이자벨’의 집으로 가게 된다.

세비야에서 영 잊을 수없는 이자벨과 쵸키를 만난다.

이자벨은 세비야 에어비앤비 숙소의 호스트다. 스페인에 있는 엄마 같다.

금발에 호탕한 성격을 가진 이자벨은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아침을 차려주셨고,

한국의 할머니처럼 계속 먹이고, 또 먹을 것을 해주셨다.

그리고 바보 같은 동과 내가 실수로 다음 도시의 숙소를 잘못 잡아 갈팡질팡할 때 이자벨은

흔쾌히 그 집에 더 머무르게 해줬다. 동과 나는 이 호탕하고, 뜨거운 친절에 어쩔 줄 몰랐다.


이자벨의 집은 아름다운 아파트인데 집안 인테리어는 굉장히 엔틱한 가구와 소품들로 가득했다.

집안에는 화려한 식당과 커다란 테라스가 있었다.

이자벨의 집은 말 그대로 우리가 상상한 유럽의 아름다운 집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집의 주인 ‘쵸키’.

사랑해 마지않는 이 고양이는 샴고양이로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부빗부빗을 해주고,

우리한테 온갖 인사란 인사를 다 해줬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시 세비야. 사람들이 왜 세비야를 스페인 최고의 도시로 꼽는지 알 것 같았다.

도시엔 강이 흐르고, 화려한 타일들이 웅장한 광장을 채운다.


아침이 되면 동과 나는 햇살이 비치는 넓은 테라스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런 우리 사이를 쵸키가 왔다 갔다 하며 메운다.

이 행복이 너무 좋다.

내리쬐는 햇살에 사랑하는 이들과 그림을 그리고,

적막을 사랑하는 고양이가 종종 공간을 채우는 이 시간을 영영 보내고 싶다.


사실 한국에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하고 이 아침이 그리워서 힘들 때가 많다.

너무 행복한 기억은 때론 날 힘들게 한다.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까지 평화롭고 행복한 날이 있을까? 이 기억에는 이런 물음이 늘 뒤따른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따뜻한 날을 없을 것 같아 행복한 만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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