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을 편지

2. S에게

by 평양이디엠

S에게


나는 지금 너를 기다리며 카페 창가에 앉아 편지를 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너를 만나 모든 기억을 공유한 것 같은데 우리가 만난 지 아직 3년밖에 안되었어.

제일 친한 친구, 제일 친한 친구 무리라고 너를 소개하지만

우리가 만난 햇수를 말해주면 주변에서 다들 놀란다.

사람을 알아가는데 햇수, 횟수로 따지는 게 맞는 걸까? 시간보다는 우리에 집중해본다.

용인할 수 있는 울타리 범위가 비슷하고, 가치관도 비슷해, 취향도 비슷하고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도 좋아하고,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너를 따라 나는 슈퍼 소닉 단체관람도 가게 되었어.

너와 져니 덕분에 나는 강박증에서 벗어났어. 항상 계획표를 짜서 하루를 보내고, 목표치를 만들어서 나를 좀먹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는 날에도 보람과 행복을 느껴


정말 신기하게 나는 너랑 보내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깝지 않아,

솔솔 침대에 누워 뮤지컬 렌트를 틀어놓고 따라 부를 때, 나는 그때 행복을 느껴

행궁동 길을 걸으며 우리는 렌트의 모린이 되기도 하고, 조앤이 되기도 해, 그러다가 위키드의 엘파바가 되기도 하고, 글린다가 되지

그러다가 쓰릴미의 나와 너가 되고 그렇게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다가

우리의 20세기 옥상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너는 책을 읽고, 나는 그림을 그리지

해가 완전히 진 다음에는 하이볼을 한잔 마시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

우리 휴학 생활을 돌아보면 이렇게 별거 없이 흘러간 것 같아.

굵직 굵직한 사건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했지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시간은 너, 나, 져니와 함께 보냈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너무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은 나날은 아니었지만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야. 작년 여름은 너무 행복해서 우리 앞으로의 생에 그만큼 편안한 날이 또 올까 싶어


지금은 우리 둘 다 졸업을 앞두고 있고, 학교로 돌아가 삶의 반경이 달라졌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이상하게 우리 셋한테 인위적인 것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걱정은 없다.

우리는 바쁜 이 시기가 지난 후에 다시 휘적휘적 슬리퍼를 신고 여름밤을 헤매다 또 하이볼을 마시고 헤어질 것을 알아.

그날을 또 기약하며 우린 자주 보자

야 S,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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