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위에서 나는 안도한다.
나는 오늘 수많은 연쇄살인마들 중
에드 캠퍼의 영상을 골랐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보고 싶은 살인마가 달라진다.
에드는 늘 담담하다. 평온해 보인다.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도,
저토록 침착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를 내 안으로 끌어들여
유추하고, 감각하고, 곱씹는다.
그를 유추하는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된다.
같은 영상을 반복해서 본다.
에드가 말하는 걸, 그의 눈빛을, 호흡을,
무한 재생한다.
나는 그를 알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에게 익숙해지고 싶은 걸까?
아니지.
그냥, 위로받고 싶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내가 되고 싶을 때, 진짜의 나를 마주하고 싶을 때,
세상의 어두운 구석으로 향한다.
그곳이 나보다 더 어둡다는 걸 확인하며
나는 이쪽에 있는 나를 안도한다.
내가 에드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고 싶을 때,
오늘 하루를 가식적으로 견딜 때,
살인마들은 나를 위로한다.
그들은 때로 나보다 더 어두운 존재로,
때로는 나와 같은 그림자로,
이렇게 말해준다.
"행복해 보이는 부부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내 손 가방 안에는 잘린 사람의 목이 들어있죠.
놀라운 건 그 부부가 저를 보며 반갑게 인사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도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쳐요.
내 손에 뭐가 들었는지, 그들은 모를 거라는 겁니다."
에드는 이 말을 너무나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드도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자아의 균열.
나는 물었다.
내가 에드와 다른 점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