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나는 창녀다.
밖은 북적이고, 미인촌의 형광등은 서서히 밝아졌다.
술 마신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거리가 내 숨통을 서서히 조여왔다.
-끼익
낡은 빨간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이 언니.
언니는 눈에 안대를 끼고, 가방끈을 꼭 쥔 채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마담언니가 일하던 손을 탁 놓고 소리쳤다.
“야, 순이야. 지금 몇 시야? 이 시간에 들어오면 어떡하냐! 한창 바쁠 때잖아!
그리고 그놈하고 정리하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몇 번을!!”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마담언니는 팔짱을 낀 채 계속 쏘아붙였다.
“이번 달에 갚아야 할 사채가 얼만지나 알아? 그놈 병원비에 돈 다 쏟아붓고,
이제는 뭐, 네 몸 하나로는 안 되니까 또 나한테 손벌리는 거야?
차라리 곱게 연애를 하던가. 맞아가면서 그놈 하나 못 버리냐?
아이구 내 팔자야... 이럴려고 내가 이 골목에서 늙었나 싶다... 아이고 아부지...”
언니는 그대로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손님을 막 보낸 뒤, 슬리퍼를 끌고 순이 언니 방 문 앞에 섰다.
“언니, 나 좀 들어갈게.”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어, 공주 왔어?”
언니는 거울 앞에 앉아 안대를 벗고 있었다.
눈가에 멍이 시퍼렇게 퍼져 있었다.
“또 그놈이지? 언니 얼굴 이렇게 만든 거, 또 그놈이 맞지?”
나는 화를 꾹 참고 말했다.
언니는 거울로 눈가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쓰읍... 아프네...”
그러고는 마치 괜찮다는 듯 억지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과 겹쳐져 더욱 슬펐다.
“언니... 제발 그놈하고 헤어져요!”
“쉿! 공주야, 마담언니 듣는다.”
“듣거나 말거나요! 언니 그놈한테 언제까지 맞기만 할 거냐고요!!”
언니는 고개를 떨군 채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에서 담배와 성냥이 나왔다.
턱, 불을 붙이고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공주야, 그 사람... 술만 안 마시면 참 착해.
내 손에 물도 안 묻히게 하던 사람이야. 예전엔 그랬어...”
“그럼 뭐해요! 술을 맨날 마시는데!!
그리고 언니, 제발 그놈한테 돈 좀 그만 줘요.
이러다 언니 진짜 죽어요.”
언니는 담배를 쥔 손을 창밖으로 휘저으며 말했다.
“아냐, 이번이 마지막이래. 이번엔 진짜래.”
“언니... 그 말 벌써 몇 번째 하는지 알아요?
그놈이 왜 또 돈이 필요하대요? 도박했대요?”
언니는 잠시 침묵하다,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아니... 걔, 군대 때 선임이었나 뭐 그런 사람한테 돈 빌린 게 있대.
그 사람 지금 양복점 한다고, 걔 데리고 같이 일 시켜준다면서
보증금만 내면 된다더래.
한 20만 원만 있으면 된다는데...
공주야, 20만 원이면, 뭐... 언니가 한 달 바짝 일하면 되지 않겠니.”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언니, 걔 그 돈으로 또 술 마시고 도박할 거잖아요.
언니는 그걸 몰라요? 알면서 왜 또 줘요...”
언니는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그 얼굴에는 체념과 미련, 욕망과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
“그이... 나 없으면 안 된대.
어제도 내가 문 안 열어주니까,
골목에서 무릎 꿇고 울면서 바지끄랑이 잡더라.
나한테 ‘순이야, 순이야’ 하고 울던 그 목소리가...
그거 들으면 나는 그냥... 무너져버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언니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이만큼 나한테 잘 해주는 남자 없어.
밤에 말이야, 나를 때리면서도... 그 뒤에서...
공주야, 너 그 느낌 몰라. 맞으면서도 미칠 것처럼 흥분되는 그 감정...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살아있는 사람 같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나 미쳤지. 알아.
근데... 나 그이 없으면 못 살아.
때려도 좋아. 돈도 괜찮아. 벌면 되니까...
그이만 곁에 있으면 돼. 공주야, 나 어떡하니...”
그 순간, 마담언니의 목소리가 골목까지 울려 퍼졌다.
“예~! 공주야! 손님 너 찾는다!! 빨리 안 나와!”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언니의 방을 나섰다.
문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들은 언니의 울음소리는,
마치 무너진 땅속에서 흘러나온 울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