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티 마트.

습기.

by 서온

"다행이네요."


그는 환호했지만, 동시에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

입술을 몇 번 매만졌다.


나는 그 머뭇거림의 결을 읽었다.


"제 방에서... 맥주 한잔 하실래요?"


나는 눈을 피하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비어 있는 방보다,

누군가 있는 방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침묵을 잠시 유지하고, 말했다.

"...네"


그 남자와 걸으며 스친 로컬슈퍼가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 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조금만 걸어가면 슈퍼 하나가 있어요. 맥주 사올게요."


그 말과 동시에

무거운 캐리어와 가방을 그의 앞에 툭

-

내려놓았다.

"잠시 부탁 할게요."


"저! 같이.."


그가 무슨말을 하려는지 나는 알고있었지만,

하지만, 뻔한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를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혼자 걸어가는 인도 거리,

달궈진 아스팔트,

낯선 냄새,

그리고 그 익숙한 이름의 슈퍼,

'샨티 마트'

하얀 간판에 바랜 파란 글씨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샨티.. 왠지 연우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맥주 2캔과 땅콩 그림이 그려진 칩1봉지.

'이거면 되겠다.'

그리고 바로 옆에, 매그넷이 보였다.

순간 연우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그넷을 집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점원 아저씨 에게.

이거.. 무슨 뜻이에요? 여기, 이 글자.


점원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Ah-this?" It says 'Shanti'.

S-H-A-N-T-I. Peace."


그는 손가락으로 그 단어를 짚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


"Shanti means peace."

샨티..

"I see."


나는 연우를 뒤로 한채.

계산을 하고, 슈퍼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라가 호텔 입구에 그가 보였다.

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는 손을 흔들었다.


왜 손을 흔드는거지..?

저 남자는 뭐가 저렇게 해맑을까..?

뭐가 저렇게 좋아서 웃을까..?


그 남자와 나는 내 호텔방에 들어갔다.


호텔방 문을 열자

다행히 에어컨이 있었고,

방은 생각보다 낡지 않았다.

티비 아래 책상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에어컨을 켰다.


찬 바람이 흐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방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 톤과 다크 우드로 꾸며진 공간에

호텔 시트 특유의 차가운 촉감이 남아 있는

흰 이불.

침대 위엔 크림색 린넨 쿠션 두개

벽 한켠에는 인도 전통 패턴의 천 하나가

액자처럼 걸려있다.


조명은 노란색 전구가 아닌, 약간

푸르스름한 간접등.


전체적으로 묘하게 익숙한 듯한,

향신료와 오래된 나무 가구 냄새가 섞인 공간 이다.


방에 들어온 남자는 맥주를

받자마자

목이 탓는지, 탁-

캔을 열었다. 벌컥벌컥-

캬아- 작게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거리곤,

창가 쪽 의자에 앉았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말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둘 사이에 흐르는 정적.

티비는 꺼져 있었지만, 틀고 싶지 않았다.

에어컨 소리만 미약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어떤 신호도 없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걸어갔다.


그는 고개를 들었고,

나는 맥주를 내려놓고, 아무 전조도,

말도 없이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는 왠지 놀라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처음 본 그 남자와 섹스 했다.

신기했다. 그 순간, 나는 진짜

연우를 잊고 있었다는게.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연우가 내옆에서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그 때 그 '라가 호텔' 에 그 남자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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