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이해가 아니다. 예술은 질문이다.
<살인마 잭의 집> (The House That Jack Built, 2018)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장르: 심리 스릴러, 철학적 호러, 예술 영화
주제: 예술과 악, 인간의 본성, 창작과 파괴의 경계
"한 명의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살인을 예술작품으로 여기는 이야기."
간략한 줄거리: 주인공 잭이 12년 동안 저지른
5개의 살인을 이야기 형식으로 고백 한다.
근데 그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다.
나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틀고
끄고를 반복했다.
단순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인 줄
알았고, 잔혹한 장면이 나올 거라는 예상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우울함과 무료함이 내 안에
고여 있던 날.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를 틀었다.
그리고 그날, 살인마 잭의 집은
나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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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의 강박 vs 나의 다이어트 강박
잭은 극단적인 강박을 가진 인물이다.
물건의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참지
못하고,
동일한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불안이 가라앉는다.
그의 강박은 결국 살인을 통해
극복 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있다"는
착각이,
그는 쾌감과 해방을 느꼈다.
나의 강박은 '말아야 해.'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매일 거울 앞에서 내 몸을 검사하고,
하루에 몇 번씩 음식과 숫자, 체중과
음식의 조합들을 떠올린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불안은
몸에서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나는 먹는 걸 조이고,
움직이고, 또 조인다.
그러다 폭식으로 터진다.
그 폭식은 마치 마약처럼, 잠깐의 자유를
내게 준다.
잭의 강박과 나의 강박은 닮았다.
우리의 공통점은 "불안" 이다.
불안을 덜 느끼기 위해 반복했고,
반복 속에서 더 망가졌다.
잭은 타인을 죽였고,
나는 나를 죽였다.
잭은 살인을 예술이라 불렀고,
나는 폭식을 해방이라 불렀다.
나는 죽이는 방식이 달았을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묻게 된다.
나는 정말 잭과 다른가?
퇴근 후 치킨과 맥주로 위를 죽이고,
아이들에게 쏟아낸 말폭력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은 사람들,
우리는 진짜 그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가?
어떤 이는 술로,
어떤 이는 다이어트로,
어떤 이는 욕설로,
누군가의 침묵으로
자신과 타인을 서서히 죽인다.
그 차이는 다만,
법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나는 타인을 죽이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천천히 죽이고 있다.
살인과 나를 죽이는 행동.
결국 그것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는,
잭이다.
다소 충격적였지만, 감독의 의도와
잭의 마음을 보게 된다면, 이것 또 한
예술이 될 수 있다.
감독의 의도를 보게되면, 단순한 연쇄 살인범,
잔인함이 묻히게 되고, 하나의 예술 전시품 처럼
느껴지고 보게 된다.
"무슨 숫자를 좋아하세요?"
"12"
"아주 좋은 숫자네요."
아이의 엄마는 도망간다.
잭은 숫자를 센다.
1 2 3 4 5 6...7 8 9 10 12...
탕!
아이의 엄마는 총에 맞고 쓰러진다.
전형적인 연쇄살인마의 수법 이다. 살인자체를
즐긴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잭은 예술을 했다.
감독은 끊임없이 화면 너머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불편함과 잔인함, 그리고 거부하고
싶은 진실을.
왜 그는 우리에게 이런것을 보여주고 말하고 싶은것일까?
살인의 경계와 잭이 가진 비정상적인 사고.
감독은 아마 자신을 잭에게 투영한것이 아닐까?
자신도 자신의 생각이 정상이 아닌걸 분명히 알지만,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지 않았을까?
왜 나는 이런 추악함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보여주고 말하고 싶은걸까?
예술은 너무 앞서간다. 앞서가서 무시 받고 멸시를 당한다.
그리고 나중에 아주 한참뒤에 고흐 처럼 죽고 나서
작품이 뜨기도 하고, 히스 레저 처럼 엄청난 작품을
뒤로 한채 죽기도 한다.
예술이란 한 사람의 고통으로 탄생 된 것이다.
그 고통을 우리는 매일 같이 흰벽에 걸린
액자 그림 속안을 뚫어지게 쳐다 본다.
한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했던 그 작품을,
혹은 한사람의 목숨을 바쳤던 그 작품을.
이건 영화가 아니다. 이건, 누군가의 고통이자 욕망이자
-
한 사람의 몸을 찢어 만든 예술
작품이다.
잭의 강박은, 결국 예술 작품으로
탄생했다.
사람을 죽이고, 사진 촬영까지
마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냉동창고로 향했고,
죽은 여자의 시체를 어깨에 메고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 그는 본능적으로
지나가던 여자를 치고-
그녀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이윽고 이 사진은 잭의 마음에 들게 되었다.
시체들을 보면 전혀 생생하지 않다.
마치 감독이 의도한것 처럼. 정말 미술 전시품 처럼,
조형에 가깝게 연출이 되어있다.
미국영화계 미술팀은 정말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다.
진짜 사람보다 더 사람처럼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시체를 이렇게 하나의 조형물처럼 표현 했다면,
이건 감독이 얼마나 예술을 깊게 보는지 알 수 있다.
잭이 그나마 '사랑'의 감정을 조금 이라도 느꼈던 여자.
진짜 명장면이였다.
수화기 넘어로 잭과 이 여자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거기 누구시죠?"
"누군지 다 알면서."
"난 절대로 너 안떠나. 이제 어떡할래?
한잔해도 될것 같지 않아?"
"좋아."
이 대사는 정말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농담같은 것인데, 감정없은 사이코 패스인 잭은
이걸 했다. 싸이코패스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감동받는지를.
그래서 저 여자에게 저렇게 말한것일까?
아니면 정말 사랑했을까?
'사랑' 이라는 감정으로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처절하게 망가지고, 무너지고, 그럼에도
또 사랑하고.. 버려지고..
이 여자는 소리친다.
살려달라고, 그리고 잭도 같이 소리친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그 누구도 도움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감독은 잭을 통해 말한다.
희망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희망은, 오히려 더 깊은 절망을
약속한다.
잭은 죽이기 전에도, 살려달라는
소리를 흉내냈다. 마치 보는 사람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듯이.
우리는 그 순간, 사랑이 진심인지
아니면 잔혹한 연출인지 끝내
모른다.
사랑이라는 '환상' 으로 우리는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로든 죽음을 감히 당한다.
잭의 두 번째 살인.
이번 사건은 잭의 강박적 성향이 여실히 드러난 살인이었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 위해 경찰을 사칭하다가,
곧 보험회사 직원으로 말을 바꿨다.
그 모습은 어딘가 어설펐고, 불안정했다.
“잠깐만 안에서 얘기하면 안 될까요?”
“안 돼요. 배지를 못 봤잖아요.”
“브라보, 브라보. 훌륭해요.
바로 저희가 바라는 시민의 반응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잭의 표정과 말투는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변했다.
참을성 없는 짜증이 그의 눈빛에서 번졌다.
여자를 살해한 후, 시신을 트렁크에 실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탁자 아래, 액자 가장자리, 커튼 끝자락...
그의 머릿속은 피가 튄 흔적들로 가득 찼다.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잭은 몇 번이나 다시 그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경찰이 나타났다.
당황한 잭은 트렁크에 있던 시신을 숲속 어딘가에
급히 던져버렸다.
경찰은 죽은 여자의 집 안을 둘러보느라
그 사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잭은 도망치듯 차에 올라탔고,
트렁크 손잡이에 시신을 밧줄로 묶은 채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몰랐다.
피가 도로 위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는 걸.
그 피는 마치
잭의 죄를 가리키는 화살표처럼
길 위에 붉게 흔적을 남겼다.
집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잭.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도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이 울듯 비를 쏟아냈다.
이 장면에서 나는, 감독의 의도가 톡톡히 보였다.
"늬들이 말하는 그 신은 존재하는가?"
"늬들이 십자가를 보며, 매일 같이 빌고, 속죄하고,
단죄하는 행위가 과연 의미가 있는가?"
를 말하는거 같았다.
잭의 마지막.
경찰에게 발각되기 직전-
끝내 열리지 않던 그 문이 열렸다.
그 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잭에게 있어,
'살인' 이라는 절정 너머의 어딘가로
도달하게 만드는 문이었다
이미 살인에 아무런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던 잭.
그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인간의 조각.
마지막 한 줄기, 인간으로 붙잡아 두는
밧줄.
그 문은 어쩌면 그 밧줄의
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그 문이 열리고 말았다.
잭은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그 문을 열고 나선 순간,
그는 인간의 껍질마저 벗어던진
존재가 되었다.
그 순간, 처음 부터 잭의 살인을 지켜보았던,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그래서 나를막으러 오셨나?"
"아무것도 막을 생각이 없네,
질문이 하나 있을 뿐이야."
"무슨 질문이지?"
"집을 짓는 일은 어떻게 된 건가?"
여기서 할아버지는 잭에게 이렇게
권했다.
자신만의 집을 지으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것을 하라고.
사람들은 늘 나를 과대평가 한다.
내가 할 수 없는것, 내가 가질 수 없는것을
늘 갈망하고 갖지못하고 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실패자라고 칭한다.
잭의 꿈은, 멋지고 훌륭하고 유능한
건축가가 꿈이였지만, 자신의 능력 밖이라는것을
잭은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루고 도피하기
위해서 살인을 선택 했던것이다.
우리가, 나 자신의 진 모습을 마주하는게
두려워서 중독에 빠지는것 처럼 말이다.
행복해 지고 싶다고?
뭐 가 되면 행복하고.. 돈이 얼마나 모이면
행복할거야.
날씬해지면 사랑받겠지.. 그러니까
혹독하게 빠르게 다이어트 해야되.
모든것은 다 틀렸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그릇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 평생 잭 처럼.
나를 망치는 길인지 알면서도 계속
하게 되는것이다.
그게 바로 '중독' 이고,
감독의 숨은 의미는 이런게 아니였을까?
잭은 단지 자신의 중독을 살인으로
표현한거 뿐이야.
당신들이 도박에 빠지고 게임, 술, 마약, 음식
에 빠지는것 처럼.
그게 잭 처럼 살인으로
했으면 살인자가 되는 것이고.
잭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집을 지었다.
지금까지 죽인 사람들로 집을 지었다.
잭은 그제서야 자신의 집을 만족했다.
그리고 잭은 그 할아버지와 같이
강으로 떨어졌다.
진실을 인정했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기에, 그 너머를 봐야 했다.
잭이 갈 수 없는 곳.
그곳이 '천국'
잭은 이 천국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영화에서 단 한번도 흘린적 없는
잭이 눈물을 흘렸다는것은.
진실을 피하지 않고
마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잭이 보는 그리고 감독이
그린 이 천국을 보았을때,
눈물을 흘렸다.
천국이라는것은 본디, 하얗고,
아기천사들이 날라다니고,
하얀 구름이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감독이 그린 이 천국은
평온 그 자체다.
어쩌면 잭에게 나에게 모든 인간들이
가질 수 없는, 갖더라도 너무 잠깐만
가질 수 있는 것이 '평온' 이 아닐까.
그리고 잭이 마주한 지옥은,
우리가 생각한 그 지옥과
일치 했다.
여기서 나는 감독에게 또 한번
놀랬다.
천국은 그토록 다르게 해석했는데,
지옥만큼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거와 똑같이 해석해서 보였다는게,
놀랍고 또 감탄했다.
누구보다 정직한 사람. 누구보다
현실을 이토록 처절하게 진실되게
나에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여기서 할아버지가 말했다.
"당신의 자리는 이곳이 아니네,
두층 더 올라가야 그곳이 당신의 자리야."
그럼에도 신은, 잭에게 기회를 준다는
이 복선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할아버지는 잭에게 이런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당신이 사회가 주는 법으로 죄값을
받고 평생을 살아."
하지만 잭은 이마저도 거부 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살인마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은것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여기서 감독은 말할것이다.
"인간은 어리석다, 어리석기 때문에
인간이다."
"아무도 그 다리를 건너지 못했네,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서 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도 한번도 보지 못했네,
모두들 저 다리를 건너고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시도 했지만, 다 실패했지."
다른게 있을거다, 이걸 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 질것이다. 돈을 이만큼 가지면,
내 삶이 아름다워 지겠지?
내가 좀 더 예뻐지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다른길, 빠른길은 이세상에 없다.
그저 오늘을 사는것 만이 구원이고,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살인마 잭의 집"은 나의 인생 영화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사이코패스와 살인을
다룬 잔인한 영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인생을 통틀어 본 영화 중 가장 깊고,
가장 정직했다.
이건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하나의 작품이며,
하나의 고백이며,
하나의 전시 영상이다.
나는 그 속에서 인간의 슬픔을 보았고,
구원을 향한 마지막 발버둥을 보았으며,
결국 ‘평온’이라는 단 한 장면의 천국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