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늘 먹는 사람이었을까.

폭식과 마른 사람의 뇌를 비교하며.

by 서온

어릴 적 부터 나는 늘 "먹는 사람" 이었다.

음식을 좋아했기 때문일까?

아니, 지금은 안다. 그건 감정을 버티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걸.


폭식증 회복의 길을 걷는 지금, 나는 음식과

감정을 바라보는 뇌의 언어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같은 음식을 대하면서도, 사람마다 뇌의

회로는 전혀 다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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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 마른 사람의 뇌: "그냥 먹고 싶으면 먹는다."


마른 사람들은 식후에도 간식을 먹고 싶으면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하지만 그 양은 늘 일정하다.

케이크 두입 정도, 음료는 반 컵 정도.

심지어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면서 조금씩

마시기도 한다.

그들에겐 '먹는 사람'이라는 자아 구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먹고


입맛이 없으면 하루, 많게는 이틀 까지

음식을 먹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감정이 올라오면 먹자가 아니라 쉬자,

눕자가 먼저 떠오른다.


그들의 뇌는 '먹는다는 행위'를 자극이

아닌 부수적 활동으로 인식한다.

먹는 건 삶의 중심이 아니다. 그저 지나가는

장면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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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증의 뇌: "감정을 먹는다"


반면 폭식증을 가진 사람의 뇌는,

슬프면 먹고

기쁘면 더 먹고

불안하면 '먹고 난 후에 생각하자'는

회로가 작동된다.


식사 직후, 포만감이 채 오르기도 전에

무언가가 더 먹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건 배고픔이 아니라 뇌의 자극

요청이다.


폭식증의 뇌는 이렇게 말한다.


->"배불러야 안심이 돼."

"일단 먹고 생각하자."


그리고 우리는 착각한다.

그건 감정의 불을 끄기 위한 무조건적

응급처치일 뿐이다.

회복은 안정에서 오는 게 아니라.

불안한 감정을 '먹지 않고도' 버티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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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자의 뇌는 다르게 반응한다.


회복자의 뇌는 다르게 말한다.


>"배고픔과 감정은 다른거야."

"움직인 다음에도 먹고 싶으면, 그때 먹자."

"지금 이 간식은 감정 때문이야? 아니면

진짜 맛보고 싶어서야?"


이건 의지가 아니라 연습의 결과다.

수십 번, 수백 번 감정을 분리해보고

한 입 더 먹기 전에 잠깐 멈춰본 사람만이

조금씩 그 회로를 다시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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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위한 작은 방법들


1. 포만감 4~5까지는 '기본 멈춤' 훈련

-> 식후 바로 간식이 땡기면 참지 않는다.

단,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예시)아이스크림 1개, 과자 한줌 정도.

-> 몸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연습.


2. "일단 뭐라도 하고 먹자" 원칙

-> 심심하거나 허기 느낌이 올라올 땐 일단 움직인다.

-> 정리, 산책, 글쓰기, 물 마시기, 운동.

-> 먹지 않고 견딘 몸의 기억을 새로 써주는 것부터 시작.


3. 감정일기와 포만감일기 쓰기

->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건 음식인가, 감정인가.

-> 감정 점수, 포만감 점수, 먹고 난 후의 느낌까지 기록.

예시) 포만감 7, 기분 10 먹고 난 후 느낌: 만족했다.

이런식으로 아주 간단하게라도 적어보자.


4. 사회적 루틴은 "참지 말고 조절"

-> 사람들과 식후 카페 루트? 그냥 같이 먹자.

-> 대신 양을 조절하고, 스스로 의식적으로 포만감을

느껴야 한다. 어려우면 평상시 디저트, 음료 먹는 양보다

적게 먹는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5. 모태마름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기

-> 그들은 그냥 '안 먹는 사람'이 아니라

'먹는 회로 자체가 일반 사람하고 다른' 사람 일 뿐.

-> 우리는 다르다. 먹는 걸로 살았고, 이젠

다르게 살기로 한 사람이다.


마무리: 먹는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이제 나는 "먹느 사람" 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나는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감정을 먹는 게 아니라,

감정과 함께 머무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그런 하루들이 쌓일수록,

나는 조금씩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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