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습기.

by 서온

내 혈관을 타고, 몸속에 피가 돈다.

그 여자가 그렇게 내 안을 해 집고 다닌다.

아무리 그 여자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려 해도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그 여자가

숨 쉬고 있다.

그토록 혐오했던 그 여자의


행동들이 내 무의식을

장악했다.

벗어나고 싶다.

이 끔찍한 곳에서.


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찬물 샤워까지 마쳤다.

허기가 져서 노릇하게 빵을

굽고, 그 위에 계란프라이를

올려서 먹기 위해,


팬을 꺼내, 오일을 두르고,

계란 하나를 툭- 깼다.

노른자를 본다. 한 사람의

탄생이다.


태어나서부터, 원치 않던 원하던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보다 먼저 태어난 부모라는

것들에게서 세상을 배워나간다.


그것들로 무의식은 생성되고,

그 무의식으로 자아가 생긴다.

나는 살인마도, 범죄자도,

의사도, 교사도, 정치인도,

사회부적응자도, 우울증, 조울증 환자도

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잘못한 게

없어. 이렇게 사는 건 내 탓이 아니야.

과연 잘못한 게 없을까,

과연 내 탓이 아닐까.


연우가 말했다.

"모든 건 너의 선택이야."


그 여자의 고통들이

그렇게 내 몸속에

흐르고 있다.

결국 그 여자도 피해자였겠지.

그 여자도 어린 시절이

지옥이었을까, 아팠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고 해서

니 상처가 없어지지 않아."

"그래도 해봤어, 이렇게라도

그 여자를 이해해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 같으니까."


"그래서 좀 나아졌어?"

"아니."

이해할 수 록 상처는 더 깊어진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 앞치마를

허리에 동여맸다.


부지직-

허리끈이 찢어졌다.

그래서 바늘로 꿰맸다.

꿰매 고난 자리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꿰매봤자, 티가 나네.


그렇게 꿰맨 앞치마를

다시 입고, 요리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냥 살자, 그냥 오늘을 살자.

그래도 내가 한 음식은 맛있으니까.


그걸로 된 거니까.

연우가 내 음식을 천천히 먹으며

말했다.

"맛있다."


밥을 먹고 나니, 속이 쓰리다.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엄마.

지금도 그녀는 위장약을

달고 살겠지.


머리가 아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두통이 생겨서 늘 가방 속에

두통약을 넣어 다녔고,


집안 곳곳에는 두통약이

있었다.

그렇게 그 여자는

두통약과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나도..인데.


연우가 말했다.

"시간은 있어, 아직 있어."

"모르겠어, 더 발버둥 쳐야겠지?

더 힘들어야겠지?"


"발버둥 치다 어느새

세상이 끝이나도 괜찮아.

그래도 벗어나려고, 다르게

살아보려고, 노력이란 걸 했으니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야."


저 작고 하얀 물체가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짖어댄다.


무엇을 그렇게

지키고 싶어, 저렇게

지저 댈까.

너는 좋겠다.

그냥 살아가서, 삶에

이름을 붙이지 않으려 해서.


다음에 네가

내 주인으로 태어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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