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렸을 때,
아빠는 내 등에 붙은 따개비들을
수시로 떼어내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아프지 않아서 울지 않은 걸까?
잘은 모르겠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저 어린것이 다 큰
성인도 참아내기 힘든 걸 참아냈다고,
아빠 자신이었으면 대성통곡을 하고도 남았을 거라고,
그런데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참아내는 거 보면, 이 애는
커서 뭐라도 될 애라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며,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아빠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 등에 붙은 따개비를 생각하며,
"저 어린것도 저 고통을 참아내는데,
나도 이 악물고 일어나서 힘내야지!"
하며, 매일 다짐했다고 했다.
근데 왜, 나는 기억이 나질 않을까.
아빠 말로는 하루 떼어내면
다음날 또 따개비가 한가득
등에 붙어 있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아플 정도면
기억을 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 아빠는 자살을 했다.
술을 마실 때면 내 머리를
쓰다듬고, 눈시울이 붉어지시면서
나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너 만큼 아빠가 독하지
못해서."
아빠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등이 가려웠다.
등을 긁으면 아빠 말대로
따개비가 떨어져야
하는 게 맞지만,
따개비 따위 전혀 떨어지지 않았고,
따개비 대신 옅은 피와
살점만이 손톱 끝에 아슬하게
붙어있었다.
"독하다 독해, 지 아비가 저 집에서
죽었는데도 이사도 안 가고 저기서
사는 거 보면..."
사람들도 우리 아빠도
나를 보며 독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빠는 많은 약들을
달고 사셨다.
늘, 집에 들어오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가짜 다리를 풀고,
잘린 다리를 주물렀다.
그러면서 나를 보며
웃으시며 말했다.
"우리 딸, 아빠가 해놓은 밥 먹었어?"
우리 아빠는 너무 따뜻하고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아빠가 불쌍하면서도 너무 좋았다.
나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아빠는 종종 엄마에 대한
유무를 얘기해 주셨다.
"엄마는 너를 버린 게 아니란다,
잠시 긴 여행을 갔어. 금방 돌아온다고 했어."
우리 아빠는 나보다 더
바보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나 때문에
엄마가 도망갔다고 했다.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해서,
내가 몸을 배배 꼬아서,
나는 아빠에게
하루에도 열 번은 넘게
소리쳤다.
"아빠 정신 차려! 아빠 엄마는 우리를
버린 거야!"
그럴 때마다 아빠는,
"왜 우리 딸~ 배고파? 기다려, 금방
밥 해줄게."
목발을 짚고, 불편한 몸을 일으켜
아빠는 부엌에 가서 휘파람까지
부르며 밥을 차리신다.
"멍청이, 미저리!"
아빠는, 뒤돌아 보며 말했다.
"나도 사랑해, 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