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를 '연기하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자각했

던 순간은 언제야?

by 서온

그날은 날씨가 어땠지? 어두웠나? 아니면 이른 저녁이였나? 아마 학교 마치고 방안에 혼자 있었을때가 분명했다. 집에는 엄마가 없었을게 분명하다. 할머니는 거실에 있었겠지? 무튼 집에 엄마가 없는것만은 확실했을것이다. 집에 엄마가 있었다면,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테니까. 내 방에는 책상 옆에 크지 않은 진한 브라운색 테두리 거울이 있었다. 나는 자주 그 거울을 보면서 혼자말을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난다. 그날의 기분따라 말을 했었으니까, 대부분 기분이 좋은날에는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외로웠다. 누군가가 내말을 온전히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게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했을거였다. 그런데 그날은 마치 배우가 카메라를 보며 연기를 하듯, 어떤 대사가 술술 나왔다. 약간 독백 느낌? 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나왔다. 나도 눈물이 흐르고 나서 눈물이 흘렀다는걸 알게 되었을 정도로, 당황했다. 순간 나는 이게 뭐지? 라는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눈물을 닦고 한동안 멍해져 있었다. 그러자 베란다 넘어로 담배 연기가 스물스물 기어 들어왔다. 분명히 베란다 문은 굳게 닫혀있는데, 담배 연기는 닫힌 문틈 사이로 잘만 들어왔다. 할머니 였을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담배 없이 못사니까. 나는 조용히 베란다 문을 소리 없이 열고 할머니의 담배 피는 모습을 감상하듯이 보았다. 마치 그리운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한듯한 표정으로 먼산을 허공을 응시 했다. 누굴 생각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뻔할것이다. 지난 남자 생각을 하겠지, 이런 예상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자주 저런 표정을 지으면 물어봤었다. 그때 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나 좋다고 따라다니던 남자~"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계속 된다. 자기 좋다고 죽겠다고 했던 남자 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마치 자신의 자랑거리처럼 줄줄이 늘어져 놓는다. 나는 그 후로 이야기 듣는게 지쳐서 할머니에게 더히상 무슨 생각하냐고 묻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남자 이야기를 할때만 짓는 할머니의 표정을 너무 잘 안다. 마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할머니가 아닌 한 여자로 돌아간 듯한 표정. 분명히 주름살이 끼고, 건조한 피부 이지만, 눈빛 만큼은 그 순간 나보다 더 빛났고, 맑았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할머니에게는 그때 그 시절 이였으리라. 남자에게 사랑 받았던 시절.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의 눈빛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런 표정은 넋을 놓고 보게 된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는 싫지만, 할머니의 표정만은 다시 보고 싶단 생각은 가끔 들었다. 근데, 그 표정을 보기 위해서 할머니의 지루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 표정이 나에게 큰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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