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장소 : 유성구 작은 도서관 기행 (7)
관심도, 투자도 반려되는 도시 외곽에서 다정한 빛의 전구를 반짝이는 일. 불편함을 느낄 필요 없는 누군가들에게는 관심도 끌리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이 도서관이 관찰한 마을 틈새에서 발견된 사람들은 이 관심이 절실했을 것이다. 섬세한 시선이 이들을 뭍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처럼 귀한 마음이 지속되고, 이내 곳곳에 번져 곧 외면할 수 없이 산란하는 빛이 된다면. 요령껏 피할 수 없고, 함부로 넘겨짚을 수도 없는 이면 아닌 정면의 삶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어은동의 골목골목을 걸었다. 이곳은 올 때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궁동과 분위기가 상반된다는 것을 체감한다. 다섯 걸음마다 재미있고,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궁동과 달리 어은동은 큼직큼직 걷는 보폭 중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이 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덧붙이지 않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궁동은 대학생의 삶을 느낄 수 있다면 어은동은 주민의 삶이 느껴진다. 잠시 왔다 떠나는 사람들이 아닌 뿌리내려 가꿔가는 사람들 말이다.
어은책마을도서관은 그런 골목 사이에 위치한다. 입구를 한눈에 찾기 어려웠다. 가까스로 찾은 통로는 마치 비밀의 정원(?)을 보는 거 같았다.
도서관의 내부는 기다란 직사각형이었다. 거실 같은 공간 가운데에는 넓고 길쭉한 책상이 있었다. 각 벽면이 파여 업무실, 응접실, 화장실 등을 이룬다. 마치 두더지의 집을 연상시켰다. 나를 맞아 주신 선생님은 따뜻하게 물을 데우고 내 앞에는 맥심과 보이차 포, 그리고 컵을 두셨다. 부담 없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내어 주시는 마음이 따뜻했다.
교회 차원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일을 탐색하던 도중 아이디어가 떠올라 2017년 이 도서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처음 목표부터 책을 읽는 공간보다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커서인지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도서관보다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한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흥미로운 점은 정말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일을 고민한다는 점이다.
어은동에는 외국인이 많이 산다. 주변의 대학교에 포스터 닥터 과정을 공부하러 왔다가 취직을 해서-보통 남성- 정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해 주셨다. 주변 초등학교에는 한 반에 한두 명이 외국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빠들은 사회생활 중에 한국어를 습득한다. 하지만 엄마들은 타국어를 익힐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외국인 여성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길 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한국어 수업을 들을 것을 제안했다. 혹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느냐고. 우리 도서관에서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이고, 주변의 친구들도 함께 하게 되어 이제는 어엿한 하나의 학급이 되었다.
올해에는 그 한국어 교실 친구들과 책을 썼다. 자녀들이 그린 그림, 자신의 모국어, 그리고 한국어로 구성된 책이었다. 이슬람, 인도, 파키스탄, 에티오피아의 언어로 한국에서의 삶을 적었다. 스무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에 한 페이지 당 한 줄씩의 짧은 이야기였지만 그 울림은 컸다. 모국어의 폰트가 없어 인쇄소에 직접 따라가 읊고 해석하며 자신의 책을 만들었다. 만들어진 책을 함께 읽고, 주변에 알리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연고 없는 타국에서, 별안간 다정함을 건넨 이방인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삶에 애착이 가도록 힘쓴 그 마음들을 나는 다 헤아릴 수 없다.
선생님은 동네 아이들과 함께 주변에 거주하시는 독거노인분들을 찾아뵙는다. 또박또박 소리 내어 책 읽는 방법을 연습하고, 나누어드릴 반찬을 함께 만든다. 어르신 댁에 방문해서는 음식을 나누고 연습한 대로 목소리를 울린다. 처음에 부끄럼을 타던 아이들은 점차 용기를 얻고, 이제는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큰 아쉬움을 느낀다. 어르신들의 시선에서 아이들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색채처럼 느껴질 거 같았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알록달록한 감정에 선생님께, 아이들에게 감사하다고-,고맙다고- 한다 하셨다.
“선생님께서 능력이 너무 좋으시네요.” 이렇게 말씀드리자,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이라고 하셨다. 부족한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사업을 따내고, 사람을 모으고, 무엇보다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은 선생님이 아니시냐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이런 공간에 지역민들이 모여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은책마을도서관의 사명은 ‘지역 밀착’이다. 우리 마을에 있는 공동의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들을 뭉쳐 끈끈해져 가는 것. 관심도, 투자도 반려되는 도시 외곽에서 다정한 빛의 전구를 반짝이는 일. 불편함을 느낄 필요 없는 누군가들에게는 관심도 끌리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이 도서관이 관찰한 마을 틈새에서 발견된 사람들은 이 관심이 절실했을 것이다. 섬세한 시선이 이들을 뭍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처럼 귀한 마음이 지속되고, 이내 곳곳에 번져 곧 외면할 수없이 산란하는 빛이 된다면. 요령껏 피할 수 없고, 함부로 넘겨짚을 수도 없는 이면 아닌 정면의 삶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